고대근동의SexAndSex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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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제3시대> :: <신학정보: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1> 사회적 신분과 성적 역할 (송민원)]새 창으로 열기
현대적 개념의 소아성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고대 그리스의 Sex & Sexuality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요, 하나는 그리스 남성의 나이에 따른 사회적 위치(status) 변화, 그리고 각 사회적 위치에 부여된 성적 역할입니다.1 고대 그리스의 남자 아이는 대략 12세부터 18세까지 “소년”으로 분류되고, 그 이후 18세부터 30세까지는 “미혼 성인”입니다. 보통 서른에 결혼을 해서 “기혼 남성”으로서 그리스 시민사회의 당당한 한 주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주체”로서의 자유시민은 성적 역할에서도 주체적입니다. 그리고 여성이나 소년은 비주체적인 사회적 신분으로, 성적 역할에서도 수동적입니다. 이것을 Kenneth Dover는 “에라테스(ἐραστής)”와 “에로메노스(ἐρώμενος)”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에라테스는 우리말로 “사랑을 주는 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고, 에로메노스는 수동형으로 “사랑을 받는 자” 정도 될 수 있겠습니다(K. J. Dover, 1978). 성 관계에서 에라테스는 “삽입하는 자”, 에로메노스는 “받아들이는 자”로 이해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남자아이에게 에로메노스로부터 에라테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은 사회의 주체가 되기 위한 교육의 과정입니다. 십대 소년은 에로메노스의 수동적 역할을 충실히 배움으로써, 그 이후 에라테스의 주체적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수동적 에로메노스 단계를 거친 십대 소년은 이십대가 되면 에라테스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어, 그 자신의 에로메노스를 갖게 됩니다.2 이십대 청년의 이 동성 간의 관계는 그 자신이 30대가 되어 결혼하게 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소년과 청년시절의 동성 관계는 “진정한 남자”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듯 고대 그리스 세계의 동성 간의 성적 관계는 지금 이 시대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웹진 <제3시대> :: <신학정보: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2> 계급(Class)과 성적 역할 (송민원)]새 창으로 열기

바로 이 지점에서 그리스와 로마는 크게 갈라집니다. 교육 차원에서 (서로 나이 차이가 있는) 동성간의 성적 관계를 장려하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의 남자아이들은 자신의 몸이 침범당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습니다. 또한 노예나 외국인과의 성관계를 바람직하지 않게 보던 그리스의 관습과는 다르게, 로마의 자유시민에게는 노예나 외국인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동성간의 관계를 보자면, 로마 자유시민 남성이 성행위에 있어서 수동적인 입장을 보이는 경우만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는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자유시민 여성의 경우 노예와 마찬가지로 수동적인 성적 역할만을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아내에 대한 강간이나 불륜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여성의 몸을 사회적으로 보호한다기 보다는 남자의 “재산/소유물”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죠. 미혼 여성의 경우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고, 기혼인 경우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웹진 <제3시대> :: <신학정보: 고대근동의 Sex & Sexuality 3> "그들도 우리처럼" (송민원)]새 창으로 열기

그러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 다른 고대근동지역의 문화와는 다른 이집트만의 독특한 Sex & Sexuality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선 죽은 사람들의 성생활까지 염려하던 고대 이집트인의 내세관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죽은 후에 현세의 삶과 비슷한 삶이 내세에도 계속된다는 믿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근동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제사 때 조상들에게 바치는 먹거리들은 내세에서도 사람들이 먹고 마셔야 한다는 믿음을 반영하죠. 하지만 죽은 후에도 성생활까지 계속된다는 내세관은, 제가 아는 한 이집트가 유일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장사지낼 때 이 부분까지 아주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남성의 성기 모양이나 여성의 가슴 모양을 흉내낸 부속물을 미이라에 부착시키기도 했고, 무덤 안에 요즘의 섹스토이 같은 다산의 상징물들을 넣어놓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이집트 문헌에서 혼외정사를 법적인 차원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혼인예식이나 결혼생활 전반에 관한 법률적 문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집트에서 결혼이란 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문제로 보여집니다. 결혼이란 두 남녀가 한 집에 같이 살게 되면서 시작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떠나면 그 관계는 종료됩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법적인 문제가 아니므로, 혼외정사 역시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후대의 신왕국 시대에 오면 혼외관계에 관한 법률적 문제를 다루는 파피루스들이 발견되긴 합니다만, 대부분 강간이라든가 강도 등 법률적 문제들과 연관된 경우들입니다
인간계로 내려오면, 중왕국 시대의 문헌 “네페르카레와 사세네트 이야기”에서 네페르카레 왕은 그의 장군들 중 한명과 밤에 몰래 성적 관계를 갖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엄청난 스캔들로 여긴 것을 보면 이 시대에 동성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 언급한 “부정적 고백문”에서도 “나는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웹진 <제3시대> :: <신학정보: 고대 근동의 Sex & Sexuality 4> "결혼은 미친 짓이다" (송민원)]새 창으로 열기

‘아윌룸’이 동등한 사회적 신분의 다른 ‘아윌룸’과 동성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경우, 즉 아윌룸이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동성이든 이성이든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언급이 없다는 것이 곧 그런 사회적 관계를 용인하거나, 심지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판단할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슘마 알루에 나타난 동성관계에 대한 표현들이 대부분 부정적이긴 하지만 법적 처벌의 대상으로까지 취급되지는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슘마 알루가 법률문서가 아니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 더 많은 자료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관심은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인 결혼관계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결혼은 두 개인 사이의 관계를 한참 벗어나, 양가의 모든 구성원들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세들까지 고려해야 하는, 게다가 혼인관계가 중단되거나 파탄나는 각종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회의 “노예”들을 생산하기 위해 무조건 아이만 열심히 낳으라는 어느 나라의 미혼 대통령과는 다르게, 이 고대인들은 결혼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복지까지 걱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웹진 <제3시대> :: <신학정보 : 고대 근동의 Sex & Sexuality 5> "알았다, 임신했다, 낳았다" (송민원)]새 창으로 열기
혹자는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문헌적으로는, 즉 성경은 주변의 어느 문화하고도 다르다고. 기독교 변증가들의 간절한 믿음과 소망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가나안 문화의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인 우가릿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리아 북부의 라-샴라(Ras-Shamra) 지역에서 발견된 고대 우가릿의 문헌들은 성서연구와 고대 이스라엘 문화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필수적입니다. 사실 우가릿은 청동기시대가 막을 내린 기원전 1200년 경 멸망한 국가라, 고대 이스라엘이 국가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철기시대 초기(기원전 1000년 경)와는 200년 가량 차이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와 문학, 언어적 형태에 있어서 성서와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보입니다
앞의 글에서 살펴보았지만, 20세기까지의 학자들은 이 풍요와 다산을 성전 매춘(Temple Prostitution)이나 성혼(Sacred Marriage)과 연결시켰습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 고대근동문헌 자체 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헤로도투스 같은 고전문헌들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경건한” 학자들의 상상력을 지나치게 자극하여 탄생한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기껏해야 15금 정도 되는 메소포타미아 문화도, “정숙함”에 있어서 이 가나안 문화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여신들과 비교해봐도, 가나안의 여신들은 거의 성모 마리아 수준입니다.
이렇듯 이 가나안 지역은 힘들게 땀흘려 일을 하지 않고는 삶을 버텨내기가 힘든 지역이었고, 대를 잇기 위해서는 시동생이든 시아버지든 가릴 처지가 못 되는 곳이었습니다. 후처를 들여서든 이방인 며느리를 친척에게 재가시키든, 자손을 낳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성서적 윤리관”입니다. 이런 윤리관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땅의 척박함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가나안 문화의 풍요와 다산에 대한 집착은 바로 그것이 결여되어 있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문화권 속에서 “성”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자손번식의 수단이라는 한 가지 기능만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자손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는 “죄악”이 됩니다.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피임은 수간이나 동성관계와 마찬가지로 죄악입니다. 생리기간의 여성에게 성서가 “불결”이라는 라벨을 붙인 이유 역시, 가임기간이 아닌 여성과의 성행위로 자손을 번식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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