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너세란그리고격투장

마지막으로 [b]

Nyxity/WrittenArchives
        나,도너,세란 그리고 격투장


 창살을 통해 부서진 햇빛이 먼지와 함께 내 경기화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흰 타올을 뒤집어 쓰고 잠시 멍하게 있었나 보다. 경기장에서  들리
는 관객들의 환호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신발끈을 바짝 조였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메케한 피비린내와 콘크리트의 먼지냄새가 같이  내 
코로 들어왔다. 경기자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스피커에선 분위기와 달
리 전원고향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숙이고 있었던 상체를 일으켰다. 
 틀림없었다. 
 이건 므라벤스키가 지휘한 전원고향곡이었다.
 므라벤스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선율이 내 머리를  어김없이  뒤흔들었
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난 그 광경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물안개가 
새벽에 피어 오르는 뜰에서 난 세란이와 함께 걷고  있었다.벌써  5월말의 
여름이 코앞에 있는 계절이었으나 아직 새벽은 제법 쌀쌀했다. 눈앞에  펼
쳐진 호수는 내가 처음 여기왔을때의 감격을 아직도 기억하게 해줬다.
 농장에서 나온지 1년이 지난 그때의  일을, 그때의 장면을 지금와서 이렇
게 생생하게 기억할 줄  몰랐다. 호수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던 들
꽃하나하나까지  난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난 상체를 일으키고  창밖
을 바라봤다. 저녁노을이 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대기실의 삭막한 분위기를 비웃는 듯 나는  5년전의
기억속을 해 메이고 있었다.
 
 나는 호숫가를 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메일 새벽에 달리는 것이 고통스러
웠으나 이젠 제법 익숙해진 듯 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새벽에  물안개가 피어오른 이곳을  달린다
는 것은 정말 상쾌한 일이었다.  하루 일가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
다.
 목표지점까지 오자 관리자들이 스톱워치를 들고있는것이 보였다.  다행이 
그들의 기준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다. 실수를 관리자들은 용서하지 않았다.
그 관리자들을 보자 나는 목장에서의 관리자들이 떠올랐다.
 목장에서 끌려 나갔을 때 그때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언어도 없었
다. 다만  다른 사람들처럼 관리자에게 끌려 나가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
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리자를 만나고 이런 훈련을 받으며 나는 많은  지
식을 얻을수 있었다. 
 나는 '도너(donor)'라는  것을 알았다.  본래  장기제공이외의 사용은 불
법이었으나  암묵적으로 식용으로 사용되었고 나처럼 돈많은  사람들에게
팔려 가는 일도 불법적으로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아  이렇
게 장기제공으로 쓰이지 않고 불법유통되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나는 정말 더욱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
은 나에게 주로 육체적인 훈련을 강요했다.
 관리자들은 내가 장거리달리기를 끝내자 나를 이번엔 다른  대로  안내했
다.
 눈과 머리가 검은 한 동양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나이는 한 35쯤
되어보였다. 
 "이 도너입니다."
 관리자가 말했다.
 "체격은 괜챦군요."
 그 남자가 나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럼 승낙하시는 겁니까?"
 "그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훈련은 전적으로 제가 합니다.  최소한  3년은 
걸릴겁니다. 그동안 저의 훈련방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해주셔
야합니다."
 "알겠습니다."
 그 대화이후 나는 1년동안 관리자들을 보지 못했다.그리고 매년마다 한번
씩만  보로 왔으며 그때외에는 관리자들을 볼 수 없었다.
 그 남자는 관리자들이 떠나자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네 이름은 뭔가?"
 "BNS 모델넘버 L250입니다."
 "나이는?"
 "19이라고 합니다."
 "자네 이름을 진섭으로 지어주지.자넨 이제부터 진섭이야."
 "지인솝?"
 "진섭이야. 자네들 서양사람들한테 발음은 힘든가? 이건 한국식이름이야.
 "
 "한국?"
 그 남자는 나의 의문들을 듣더니 미소를 지었다.
 나는 놀랐다. 인간들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준 적이 없었다. 나는 뭔가 가
슴에 뜨거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차알게될거야."
 미소를 머금은 그가 내게 말해줬다.
 그는 이름이 백호선이라고  했다. 내게 동양무술을 가르킬 의무를   받았
다고 한다. 그의 짐과 가족은 내일  이곳에 오며 내가 사는 집에 같이 살겠
다고 했다.
 그날은 그와 하루종일 이야기하며 지냈다.나는 사람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즐거운 것인줄 몰랐다.
 다음날에 그의 짐이  도착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족도 왔다.  그의 부인
은 그와 키가 거의 같았으며  머리가 아주 짧았다. 그의 딸은 한 12살쯤 돼
 보였다.
 나는 그의 부인과 인사를 했다. 그의  딸은 내게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나는 당황해 하며 그의  딸과 인사를 했다. 그녀의 이름은 세란이라
고 했다. 세란은 매일매일  학교에  나갔다. 
이 근처로 전학 왔다고  한다. 나는 저녁을 먹고나면 세란이와 얘기를 하면
서 많은 지식을 그녀에게서 배웠다.
 하루의 일과를 달리기로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모든게 새로웠다.
 그렇게 고생스러웠던 훈련들이 정말 즐거운 것으로 바뀌었다.
 세란이는 날 잘 따랐다. 맨날 내 어깨에 올라타곤 호숫가를 달렸었다.
 세란이는 정말 아는게 많았다.그녀를 통해 한국을  알수있었으며  수학도 
배웠다.세란이는 나의 좋은 가정교사였다.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같이 호숫가에 나가서 낚시를 했다. 백사범이 나와 
같이 낚시를 하면  그의 부인이 요리준비를 했고 세란이는 언제나 우리들이
 낚시하는 것을 방해했다.
 처음먹오본 '매운탕'을 난 눈물을 흘리며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매운음식
은 그때 처음 먹어봤다. '김치' 보다 더 매운 음식이 있는줄 난 몰랐었다.
 7월말이 되자, 내가 벽돌을 깰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세란이는 학교를  안 
가게 됐다. '방학'이라고 했다.
 훈련이 없을 때 나는 세란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그와  함께  나의 
지식은 점점 늘어났다.
 그렇게 일년을 보냈다. 사범의 가족들과 크리스마스의 준비를 한참하고있
을때 관리자들이 나타났다.
 관리자들이 나를 보자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관리자들이 사범과  얘기를 
하다가 관리자들은 나를 차에  태웠다. 나는 당황하며 사범을 쳐다봤다.안
심하라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차를 타고 나는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 관리자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입
구에 다다랐을  때 세란이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세란이와 눈이 마주쳤다.
세란이는 놀라며 우리차를 쫓아왔다. 뭐라고 소리지르는지는 듣지  못했지
만 눈물을 흘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는 어느세 시가지로 들어왔다.  처음으로 보는 시가지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남았다.나는 들뜬  마음으로 창밖의 경치를 보면서 한편으론 어디
로 끌려가는지 모르는 두려운  마음이  날 억눌렀다.
 그들이 날 끌고간 곳은 병원이었다. 나는 내가 그때만큼  도너라는  것을 
실감한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끌려가면서 식은 땀이 흘러 내렸다. 목과
턱사이에 땀이 고여 떨어지는 불쾌한 느낌이 멀리서 일어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나는 불안에 떠는 눈동자로 관리자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언제나처
럼 무표정했다.
 내몸을 깨끗이 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의사가 
마취주사를 놓았다. 점점  몸이 무거워지
는 듯한 느낌과 함께 시야는 점점 어두워 졌다.
 
 의식을 되찾자 관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관리자들은 나의  반응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신경수술을 했다고  했다.
 그 이상은 그들이 말하지 않았다. 그 이상을 난 알고싶지도 않았다. 나의
 몸은 다른  도너들의 목숨을 빼앗고 개조된 것이다. 도너인 내가 도너의
 목숨을 제공 받았다는 사실이 날 우울하게 했다.

 백사범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세란이가 달려오며 나에게  안겼다.어깨위로 
그녀를 들어 올리며 집안으로 들어가자 백사범과 그의 부인이  날  반겨줬
다.
 세란이가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었다. 
 포장을 뜯으니 사진이었다. 
 "와, 멋진 사진인데. 내방에 걸어놓으면 참 좋겠다."내말은 듣자 온 가족
들이 웃었다.
 "진섭이오빠 그건 사진이  아니라 레코드라는 거야.지금은 생산되지   않
지만 이것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나는 그 말을 듣
고  사진 같은 것에서 검은 판을  꺼냈다.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
고  보니 거실에 전축이 생겼다. 
 세란이는 내손에서 그 판을 가져가더니 판을 틀었다. 조용한 음악이 거실
을 채웠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야.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므라벤스키
가지휘한 판이지."
 세란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와 백사범의 가족은 음악을 들었다.
 그 이후 하루의 훈련이  끝나면  그 판을 틀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  우리
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 습관은  세란이가 죽어서 이 곡을 안듣게될때
가지 계속되었다.
 그로부터 3년동안은 정말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것같았다. 그
때 까지만해도 나는 생명이 사라질때 마다 슬퍼했고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을때 그 일은 일어났다. 내가 그 일을 알아차렸던 것은 
숨이 답답해서잠에서 깨어났을 때이다. 
검은 연기가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뜨거웠다. 불이 난 것 같았다.  연
기를 많이  들이마셔서인지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백사
범이  들어왔다. 백사범은 날 끌고  백사범방으로 갔다. 그 방에는 그의  
부인과 세란이가 불안에 떨며 있었다.
 2층에서 자는 우리는  불길이 점점 강해지자 탈출할 가능성이  점점 희박
해져 갔다. 백사범은 창문을 깨고  이불을 밖에 몇개 던졌다. 그리고 아래
를 내려다 보더니 우리들을 향해 뒤돌아 봤다. 약간 망설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아직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식은 있지만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백사범은 나를 안더니 창가에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는 그의 부
인과 세란이를 보면서 말했다.
 "꼭 다시 올께. 그때까지만 견뎌."
 그의 부인과 세란이도 거의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백사범은 그의 부인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나를 대리고 뛰어내렸다. 이불위에 떨
어진 나와 백사범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 우리가  뛰어내렸던 창문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아침에 의식을 되찾았을때 내가 살던 집에는 숯들만이 남아있었다. 그리
고 나무에 목을 멘 백사범을 발견했다.
 그후 관리자가 오더니 나를 데리고 갔다. 뒤 창문으로 집이 있었던  자리
를 나는 안보이게 될 때까지 쳐다봤다.
 난 그후 관리자들의 손에 훈련을  받았다. 내가 계속 훈련을 받았던 것은 
격투장의 선수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돈많고 할일없는 사람들은 도너들을
 빼돌리고 어느 하나가 죽을때까지 죽음의 승부를 시키며 열광을 했다.
 난 그 죽음의 승부를 위해 훈련받은 것이다.
 
 스피커에선 아직도 전원고향곡이 흘러나왔다. 관리자가 들어오며  경기시
간이 됐음을 알려왔다. 나는 격투장으로 향했다.
 격투장에 들어서자 광기의  흥분에 쌓인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격
투장엔 청소도 안해서인지 말라  비틀어진 피자국이 남아있었다.이러한 광
경이 너무나도 지금은 익숙해져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상대도 들어왔다. 남을 죽이기 위해서만 교육되어선지 그는 거의 짐
승에 가까운 눈빛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난 심호흡을 했다. 내안에는 신경을 제공한 도너와  백사범의 목숨이  들
어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난 어제도 도너를 죽였고 오늘도 죽인다. 그리고 내일도 죽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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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8-20 4:42 p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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