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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b]

씨네21 메트릭스 삼부작 특집기사중 DJUNA가 쓴 글. SF팬덤이 느꼈던 바를 거의 정확히 집어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다.

출처 : [매트릭스3부작 메가토크 듀나가 말한다 ]새 창으로 열기

포스트모던 게임, 길을 잃다

SF영화로서의 <매트릭스>, 그리고 속편들의 쇠락 요인

듀나 djuna01@hanmail.net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만큼 21세기 영화판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 작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많은 <매트릭스> 팬들은 기존 SF 장르 독자들이 영화에 보내는 덤덤하거나 냉소적인 반응에 울화통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다.내 개인 홈페이지의 게시판에서도 여러 번 있었던 일이다. 사실 장르 독자들의 이런 냉소엔 사람 속을 긁는 얄미운 면이 있긴 있다. 터줏대감의 심술이랄까.

SF팬들은 왜 <매트릭스>를 인정하지 않는가?

이들의 심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SF 문학계에서 사이버펑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 초반. <매트릭스>가 할리우드 장르 세계에 사이버펑크 장르를 본격적으로 이식한 것은 1999년. SF 문학계에서는 벌써 사이버펑크의 유행을 접고 그 다음을 모색하는 동안 영화계에서는 뒤늦게 한물간 유행을 재활용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 뒤늦음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80년대 사이버펑크 문학은 초보적인 퍼스널 컴퓨터들이 실생활에 막 잠입해 들어오고 상상력 풍부한 이론가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개념을 가지고 마구 사고 실험을 벌이던 때에 만들어졌다. 굉장히 생산성이 풍부한 시기이긴 했지만 당시에 만들어졌던 이 장르의 소설들은 충분히 비주얼화될 수도 없었고 대중에게 ‘감’을 제공해줄 수도 없었다. 사이버펑크물의 고전인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영화화한다고 생각해보자. 무척이나 시각적으로 밋밋한 작품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나왔던 90년대 말은 대중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개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고 할리우드 역시 디지털 특수효과를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던 때이다. 이 낡은 유행을 새 부대에 담아 리바이벌시킬 만한 풍토가 조성된 셈이었다. <매트릭스>는 뒤늦게 나온 작품이라기보다는 노련한 서퍼처럼 두 번째 파도를 교묘하게 탄 작품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당연히 기존 장르 독자들과 새로 생긴 <매트릭스> 팬들 사이엔 노골적인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생긴 <매트릭스> 팬들이 영화가 주는 신선함의 연타에 얻어맞고 있을 때, 장르 독자들은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SF 작품들을 적당히 짜깁기해 자기만의 스타일로 완성해낸 안전한 장르물을 보고 있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결코 같을 수는 없다.

사이버펑크를 빌려온 장르영화

좋다, 그렇다면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검토해보기로 하자.일단 가장 큰 덩어리는 ‘사이버펑크’라는 SF의 서브 장르이다. 윌리엄 깁슨, 브루스 스털링, 닐 스티븐슨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80년대 장르 전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 SF의 유행을 정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글로벌하고 쿨한 거리 문화의 분위기가 녹아 있는 하드SF라고 이해하면 대충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매트릭스>는 뒤늦게 만들어졌더라도 모범적인 사이버펑크물일까? 그 정도의 자격은 없는 것 같다.

이 장르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하드SF의 면이 상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교통정리 하나. <매트릭스>가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는 종종 사이버펑크의 필수조건으로 착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건 이 서브 장르의 첨단기술집착적인 하드SF의 부산물에 가깝다. 가상현실을 다룬다고 해서 무조건 사이버펑크라고 부를 수도 없고 사이버펑크라고 해서 늘 가상현실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매트릭스>는 사이버펑크영화라기보다는 사이버펑크 유행에서 흥미로운 소재와 쿨한 분위기를 빌려와 만든 좀더 전형적인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이 작품은 사이버펑크의 본류가 아니라 부산물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워쇼스키 형제가 사이버펑크 유행에서 직접적으로 소스를 끄집어와 <매트릭스>를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굉장히 강하고 실제로 애호가들은 <매트릭스> 안에서 <메가존 23>이나 <세븐 브리지>와 같은 작품들의 구체적인 영향을 발견한다. 이런 작품들이 사이버펑크 운동의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하고 사이버펑크 운동은 종종 동양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품고 있으므로 이 배배 꼬인 순환을 푸는 건 조금 복잡하다. 워쇼스키 형제는 사이버펑크의 영향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영향을 또 받았는데, 애초부터 그런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은 사이버펑크의 기본 성격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자, 슬슬 기존 장르 독자들의 냉소적인 반응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장르 독자들은 <매트릭스>라는 영화 자체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적어도 1편은) 재미있는 영화이고 작가 겸 감독이라는 사람들이 매체와 장르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평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스타일 면에서 굉장히 독창적이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이미지와 개념을, 홍콩 액션물에서 기술과 스타일을 빌려왔지만 워쇼스키 형제 이전에 어느 누가 그런 허풍을 상상이라도 해보았는가?

이 영화가 그뒤 할리우드와 전세계의 액션물에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물론 이들이 장르의 조각들을 긁어모아 만들어낸 <매트릭스>라는 유기체의 쿨한 패션이 세상에 끼친 중요성 역시 인정해야 하고.

넘치는 열광, 앙상한 철학적 분석

문제는 이런 영화의 신선함을 과대평가하는 대중과 주류 평론가들의 열광이다. 한번 <매트릭스>에 대한 분석들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에만 해도 벌써 두권이나 되는 <매트릭스> 관련 인문교양서들(<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이 나왔으니 아무거나 꺼내 읽어보시길 바란다. 대충 훑어보았다면 간단한 대답을 해보시길. 그 수많은 글들 중 과연 티끌만큼의 독창적 사고를 담고 있는 작품이 눈에 들어오는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매트릭스>에 대해 나온 모든 글들은 제목만 바꾸면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다른 SF 작품들에 그대로 들어맞으며 장르 독자들은 정말 그런 짓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런 책들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그 책들이 초보적인 현상을 반영한다는 데 있다. 즉 주류 학자들이 할리우드 SF영화를 텍스트로 삼아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거나 (낡았지만) 그럴싸한 사고 실험을 전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인식했다는 것 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데카르트식 인식론의 비유로 이해한다. 하지만 가상현실과 인식론에 대한 끝도 없는 비유와 분석은 사이버펑크 이전부터 존재했다가 사이버펑크가 유행하던 80년대에 거의 완벽하게 교통정리가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고 새 이론을 모색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에서 도교 사상과 불교와 같은 동양 문화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지만 아까도 말하지 않았는가. 대부분의 사이버펑크 작가들은 언제나 동양 문화에 매료되어 있었고 그건 그들이 버릇처럼 삽입하는 쿨한 설정의 일부였다. 많은 평론가들은 조셉 캠벨과 기독교 신화, 메시아 사상, 그리고 그들을 영화에 쑤셔넣는 원형적인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SF/판타지 장르에서 더이상 이건 분석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이 장르에 속해 있는 모든 작가들이 캠벨을 읽었고 어떻게 하면 그 책을 지금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치며 만들어내는 대서사시에 대입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50년대 미국 펄프 소설들을 프로이트 심리학에 맞추어 분석하는 것처럼 따분하다(당시 웬만한 펄프 작가들은 대부분 정신분석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고 그 요소들을 비평가들을 위해 일부러 삽입했었으니 결국 대부분의 그런 비평서들은 사지선다형 시험 정답지 같았다). 장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어도 이런 분석엔 레고 블록을 조립하는 것 정도의 지적 노동도 필요없다.

결국 이들은 수십년 동안 장르 안에서 끝도 없이 정리되어 거의 고등학교 전과서처럼 된 이야기를 신선한 척하며 또다시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아주 기초부터 말이다.

<매트릭스>의 유익함

물론 이런 비평들은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제대로 읽는 것도 아니다. 워쇼스키 형제들이 가상한 이상 관객은 분명 이런 장르 컨셉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매트릭스>의 진짜 가치는 진지하고 새로운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장르 도구들을 이용한 위트 넘치는 포스트모던한 게임이라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런 터줏대감들의 짜증은 <매트릭스>라는 시리즈의 유익함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이 순수한 SF가 아니라 할리우드 주류영화라는 데 있다. 만약 <매트릭스>가 쿨한 스타일로 치장한 SF 전과서라면 바로 거기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이 작품을 지금까지 축적된 SF적 사고들이 일반 관객과 만나는 통로쯤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SF는 늘 소수의 오락이었고 그 안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고실험과 토의들은 늘 팬덤 안에 갇혀 있었다.

SF 애호가들은 특별한 과학적 도약이 있을 때마다 3류 장르물의 조건반사적 비명소리를 반복하는 매스컴과 대중을 비웃었지만(모두가 입을 모아 마치 싸구려 SF소설에 나오는 복제인간들처럼 아무런 생각없이 “아악, 과학자들이 신의 섭리를 위반하려고 한다!”를 외쳐댔던 복제양 돌리 때를 생각해보라) 정작 그들이 지금까지 생산한 철학적 결론들이 그 싸구려 비명소리에 묻혀 아무 쓸모없이 방치되는 것들을 끝도 없이 봐야만 했다. <매트릭스>는 짜깁기 영화이고 허세가 반인 작품이지만 적어도 장르가 생산해낸 다양한 사유들을 비교적 명쾌하게 요약해서 보여줄 줄은 알았다. 결과는 비교적 생산적이었다.

아까 나는 <매트릭스> 교양서들을 놀려댔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진부함을 빼면 그 책들도 참고서로 꽤 쓸 만하니 말이다. 적어도 SF 장르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생각이 없는 독자들에게 <매트릭스>와 이 책들은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세상 모든 장르와 책들을 탐구할 수는 없는 법이다.

스타일, <매트릭스>의 유일한 강점

<매트릭스> 시리즈의 쇠락은 바로 내가 위에 언급한 <매트릭스>의 기본 성격과 관련있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와 <매트릭스3 레볼루션>이 전편과 같은 매력을 갖춘 작품이 아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성공과 영향력에 도취된 워쇼스키 형제가 <매트릭스>가 얼마나 작고 경박하며 가벼운 영화인지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데 있었다.

발랄하고 유쾌한 장르 전과서였던 첫 번째 <매트릭스>와 달리 이 작품의 후속편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우주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 <…리로디드>의 장광설은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본다면 일종의 심심풀이 장르 게임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 하지만 <…레볼루션>의 심각한 액션과 결말에 도달하면 관객도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이 영화엔 그런 심각함과 현실의 무게를 지탱할 만한 독창적인 기반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어도 <…레볼루션>은 지금 가진 심심함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매트릭스>가 직접 창조해냈고 전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단 하나의 요소는 이 영화의 스타일이었다. 전편이 좋은 영화였던 건 스타일이 우선이고 다른 작품들에서 적당히 잘라 빌려온 설정들이 기본적으로 그 스타일에 핑계를 대주는 도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뒤집혀 설정들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자 시리즈는 풀어지기 시작했다. 엄청 공을 들였지만 밋밋하고 전형적인 로봇 전쟁으로 끝나버린 <…레볼루션>은 첫편의 쿨한 재미도, <…리로디드>의 경박한 철학적 유희도 제공해주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추가된 진지함이 영화의 등뼈인 스타일을 날려버렸고, 돈은 잔뜩 들였지만 이전만큼의 개성은 없는 기성품 SF의 이미지가 진지함과 결탁해버렸으니.

자신의 성공의 비밀을 이해하지 못한 채 부푼 자의식에 빠져, 있지도 않은 깊이와 무게에 깔려 질식해버리는 건 성공적인 시리즈 크리에이터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조지 루카스, 크리스 카터, 조스 위든이 이미 빠져버렸던 이 함정에 워쇼스키 형제들도 말려든 모양이다. 지나친 인기와 팬들의 과잉기대를 비난해야 하는 건지. 얄미운 터줏대감들은 순진한 팬들에게 자업자득이라고 놀려대겠지만 말이다.


See also

'무엇에 대한 비판, 무엇에 대한 상징.' 이런 것들은 보기보다 지겹다. 의미없는 작업이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의 장르가 SF이거나 판타지일 경우, 이것들은 불필요하게 남용된다. 비평가들에게 이 장르에 속한 작품들을 보여주어 보라. 그들이 가장 먼저하는 일은 작품과 현실세계의 접점을 찾는 일이다. 그 다음에 그들은 그 작품의 구체적인 요소를 그들이 아는 현실세계에 대한 비유나 상징으로 읽는다. 그 순간부터 작품 전체는 그 비유와 상징 안에 감금된다.
당연한 이야기 하나. SF와 판타지 장르의 세계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물론 그 장르에 속한 작가들이나 감독들이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이나 풍자를 목적으로 그 세계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온전하게 완성된다면 그 세계는 자기만의 독립성을 갖는다.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노골적인 풍자물일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그런 작품들을 제대로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그 세계를 존중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비유와 상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를 바탕으로 원고를 쓰는 것도 그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허구의 세계는 그 이상을 담고 있고 늘 그 이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5분이면 찾을 수 있는 '월 스트리트 점령' 비유를 넘어선 그 작품만의 무언가를, 단순히 비유와 상징으로 치환되지 않는 작품의 핵심을 먼저 찾는 것이 비평가들의 진짜 목표여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 시간이 나면 '월 스트리트 점령' 이야기도 하자. 어차피 그 이야기도 언젠가 할 필요가 있을 테니까.
SF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의뢰를 받으면, 장르 내부의 사람들은 그 작품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진부한지 설명할 의무감을 느낀다. 그것은 그 진부함 때문에 작품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진부함의 정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장르 내에서 그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분명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상상력의 재료들은 장르팬들에게 익숙하다. 예를 들어 SF의 무대가 되는 행성은 지구보다 중력이 작고 대기는 오히려 농밀한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외계 생물들의 덩치가 커지고 용처럼 생긴 큰 동물이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판도라에서도 그렇다. 만약 장르팬들에게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외계인을 그리라고 하면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모습을 고양이화하거나 곰인형화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비족도 그렇다. 외계인의 대부분은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하고 지구의 특정 문화를 과장해 확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비족의 문화도 그렇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나태한 부분은 지구인의 침공 목적을 판도라에 묻혀 있는 정체불명의 광물질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광물질을 언옵타늄(Unobtanium)이라는 친숙한 농담조의 별명으로 불러 알리바이를 만든다고 해도 아이디어의 게으름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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