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

마지막으로 [b]

Extracted from 여성혐오
1. 메르스갤 사태
2. 메갈리아와 일베
3. 메갈리아 1년
4. 넥슨김자연성우교체 사태 관련 메갈리아 논쟁
5. 기타

[edit]1. 메르스갤 사태

‘메갤러’들은 그 동안 들었던 혐오 단어를 하나씩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치남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남성들에게 성적 순결성을 요구했다. 스타벅스보다 성구매 비용이 더 비싸다며 낭비의 프레임을 덧씌었다. 또 남성들을 성기에 빗댔다. ‘가슴 작은 여자들을 한탄하는 남성들’의 반대지점에서 ‘성기가 작은 남성들을 한탄하는 여성들’로 돌변했다.
메갤러들은 분명 남성들을 자극했다. 남성들의 반발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화가 난 남성들은 쉽게 메갤을 공략할 수 없었다. 그들은 논리 모순에 빠졌다. 메갤을 ‘혐오 발언’ 이라고 비난할 경우 메갤이 비꼰 여성혐오적 발언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그냥 두게 될 경우 ‘메갤 사태’에 대해 할 말이 없음을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메겔 사태’는 남성들이 오랫동안 쉽게 내뱉었던 혐오발언을 처음으로 인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점잖고 품위있게 말해도 듣지 않았던 그들이 ‘쌍욕과 비하가 난무하는’ 메르스 갤러리에 처음으로 반응한 것이다.
만약 메갤러들의 발언이 ‘남성 혐오’라고 정의된다고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메갤의 글이 남성혐오로 정의되는 순간 메갤러들이 평생 들어왔던 그 발언이 ‘비로소’ 여성 혐오 발언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매갤러들이 치켜든 거울. 그 거울 속 내 모습이 추했다면 나는 잘 못 살아왔고 반성을 해야 한다. 반대로 그들이 치켜든 거울에 내 모습이 없다면 그 거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디씨에서 메르스 갤러리 같은 갤러리를 만들지 않는 것은, 디씨 어디서든 여성 혐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여행 갤러리에는 동남아 성매매에 대한 후기 및 정보가 꾸준히 올라오고, 또 다른 갤러리에서는 ‘내가 흑인녀랑 결혼하려는 이유.txt’라는 제목에 ‘아무도 뺏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ㅇㅇ’ 같은 여성과 인종 혐오적인 글이 제재 없이 올라간다. 남자가 디씨에서 하는 혐오가 갤러리의 성격을 바꾸지 않는 ‘일부’의 글이 되는 것은, 어느 사이트에서든 여성 혐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자들이 한 갤러리에 모여 남자들을 욕하면, 그것은 갤러리의 성격을 바꾼 문제가 된다.
어디서나 여성 혐오가 가능한 인터넷에서 “혐오를 분노로 대응”하는 현상은 멈추기 어렵다. 여자들은 현실에서는 강력 범죄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살고, 인터넷을 접속하면 어디서든 ‘일부’ 남자들의 여성 혐오에 노출된다. 디씨에서는 그들이 지금처럼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던 것처럼, 메르스 갤러리에 동조하던 사람들은 익명의 공간에서 소리라도 지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메르스 갤러리에서의 일이 혐오냐 아니냐 따지기 이전에 왜 그들이 분노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과 이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메르스 갤러리에 대한 비판은 결국 어느 쪽의 책임인지 따지는 싸움이 될 뿐 아무런 해결도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나와 다르게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공포와 혐오에 시달린다. 사람이라면, 이 정도만큼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혹시라도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혐오 발언을 하는 그 일부의 남자가 아니라면.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이 현상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가 몸의 전염병뿐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10년 넘게 인터넷과 한국 사회에 만연해온 여성혐오에 대해 한국 남성들은 관리하고 토론하고 말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방관하고 사실상 즐겼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혐오의 본원지 DC만이 아니다. 일베만큼 과격하지 않을 뿐 여성혐오 발화들을 흩뿌려온 다른 남초 사이트들 대부분이 새로 만들어진 남성혐오를 외면하고 있다.
남성혐오라는 새로운 현상을 두고 곳곳에서 논란과 토론이 벌어지자, 흥미롭게도 많은 사람이 여성혐오가 나쁜 만큼 남성혐오도 똑같이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곳에서 남성들이 여성혐오가 나쁜 것이라고 진지하게 단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다. 여성혐오가 왜 나쁜 것인지 말할 수 있었던 남성들이 왜 지금까지 간단히 방관, 일축, 무시로 일관해왔단 말인가. 남성혐오가 나와야만 비로소 여성혐오 발화의 쓰레기 같은 불쾌함을 말할 수 있다니 정말 우습지 않은가.

[메갈리안의<온라인 커뮤니티> 힘? 음란물과의 전쟁 자임]새 창으로 열기

메갈리안은 알려진대로 ‘메르스’ 관련 게시판에서 한 남성이 여성들과 갈등을 조장하는 글을 게시했다 분노한 여성들의 댓글이 기원이 돼 등장했다. 이후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에 대항하는 조직은 체계적으로 변모해왔다.

실제로 지난 7월 한 래퍼가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임산부를 비하하는 랩을 한 데 대해 논란이 일자 메갈리안은 대한산부인과협회의 성명을 이끌어냈다. 해당 방송사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 하여금 최고 징계인 과징금을 부과하게 했다.

몰카 근절 스티커를 제작해 소라넷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소라넷 폐쇄를 위한 청원으로 4만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남성잡지 맥심이 성범죄를 미화하는 사진과 문구를 싣자 미국 맥심 본사에 연락해 사과문을 얻어내고 해당 잡지의 전량 폐기를 이끌어낸 데도 메갈리안의 공이 컸다.

메갈리안의 각종 캠페인은 ‘배후없이’ 회원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다.

누군가가 캠페인을 발의하면 다른 회원이 자원하는 방식이다. 소라넷과의 전면전도 이렇게 진행됐다. 이들의 캠페인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이다.

여성들이 소라넷 내 몰카 사진이 올라오는 게시판에 직접 들어가 수만 건에 달하는 몰카를 찾아내고, 회원들을 속이는 게시글을 직접 올려 소라넷에 횡행하는 몰카 범죄 실태를 직접 조사ㆍ폭로하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최근 성범죄로 곤란을 겪는 여성들이 수사기관보다 오히려 메갈리안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여성들 사이에서는 파급력이 커졌다.

메갈리안은 향후 방향성에 대해 “온라인 여성혐오를 되받아치는 데 그치지 않고, 궁극적인 성차별 해소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건설적인 프로젝트와 서명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dit]2. 메갈리아와 일베

[서울대저널 - 메갈리아가 "여자 일베"라구?!]새 창으로 열기
그렇지만 혐오표현의 형태를 띤 메갈리아의 발화는 효과적인 만큼 위험하다. 폭력적인 언어는 의도와 맥락을 잃는 순간 고삐 풀린 말처럼 폭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유희문화는 대중페미니즘으로서 메갈리아의 가능성인 동시에 위험성이다. 메갈리아는 인터넷 특유의 유희적인 언어를 사용했기에 대중적 파급력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손희정 연구원은 “온라인의 쾌락을 좇는 문화가 서로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고방식을 넘어선 사회 체질 개선의 페미니즘을 지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나타냈다.

우려는 이내 현실이 됐다. 메갈리아는 여성차별, 여성비하 논란이 있었던 연예인이나 웹툰 작가, 인터넷 강사에 대해 집단적인 언어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욱이 유희를 추구하는 폭력적 언어가 본래의 목적을 잃고 다른 소수자를 향했을 때, 메갈리아는 그 스스로가 경험한 사회적 억압을 다른 소수자에게 가하는 가해자가 됐다. 메갈리아에서 게이들의 여성혐오를 비난하며 등장한 ‘똥꼬충’, ‘에이즈충’ 등의 단어와 혐오발언은 더 이상 ‘저항의 도구’가 아니다. 이전까지 메갈리아의 발화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남성을 향해 내는 ‘권력관계를 뒤집는 목소리’였다면, ‘에이즈충’ 등의 표현은 그 타겟이 사회적 소수자라는 점에서 미러링의 범주를 벗어난다.

메갈리아의 현재는 지금의 위험하고 배타적인 방식이 지속적인 대중페미니즘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메갈리아가 소수자를 향한 혐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억압에 대한 분노를 차별적 사회 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확장시킬 수 있어야한다. 손희정 연구원은 “‘억압의 교차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개인이 경험하는 억압은 젠더뿐 아니라 계급, 인종, 성적 지향과 신체적인 조건 등 다양한 결들이 중첩되어 구성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억압과 모순 사이에서 여성과 남성이 연대해야할 필요와 가능성이 생겨난다. 억압의 교차성과 불평등한 사회구조 전체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다른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손 연구원은 “메갈리아가 (다른 소수자 운동과) 함께 갈 수 있는 동료였으면 한다”는 기대를 밝혔다.

이성애, 정상, 보편. 페미니즘은 당연시되는 것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각이다. 메갈리아는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대중페미니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보편’에 도전하는 또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대중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메갈리안의 과제이자, 메갈리아를 지켜보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자기 모습 못보는 병'에 걸린 자들은 메갈의 정당성 뭐 이딴 걸 떠나서 대충 으헤헤 낄낄 대던거 못하니까 기분 나빠하고 있는 것임. 합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왠지 말해보라고 하면 다 개소리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서울대 라는 인간들이 그렇다...

— 선우 훈 (@standlaid) March 24, 2016

[[‘페미나치’ 서민 교수가 본 메갈 논쟁]새 창으로 열기 메갈리아, 세상을 바꿨다,]

반면 메갈은 기껏해야 ‘한남충’ 운운하는 글을 사이트에 올리는 게 고작이다. 이게 남성들에게 엄청난 위협이라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그건 그들의 판타지가 메갈로 인해 깨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의 여성들은 때리면 맞고 성추행을 당해도 찍 소리 못하는 순종적인 존재여야 하는데, 오히려 남혐을 하겠다고 달려드니 괘씸한 것이다.

정치적 지향이 다른 일베와 오유(오늘의 유머)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일베가 정치색을 배제하고 오직 여성만 욕했다면 지금처럼 지탄의 대상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남성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이 혐오감을 표출할수록 메갈은 점점 더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메갈이 거친 언어로 남성들을 욕하지 않았다면 여혐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남성들의 폭력을 그대로 미러링하자는 메갈의 전략은 매우 현명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이유 없이 가해지는 여혐에 속으로 분을 삭이는 게 고작이었지만, 메갈이 생기고 난 뒤에는 여혐에 대해 당당히 맞서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상황

남: 너 혹시 김치녀야?

여: 아니에요. 저, 더치페이도 열심히 하고, 남성 존경해요.

메갈 이후

남: 너, 김치녀야?

여: 뭐라고, 이 한남충아? 꺼져.

[“일베와 메갈리아 사태, SNS란 매체의 권력에서 비롯됐다” - 미디어스]새 창으로 열기
정희진은 “여혐(여성혐오)는 5천 년부터 있었던 개념”이라면서 “메갈리아 사태의 근본 원인은 SNS가 권력을 갖고 이를 쾌락적으로 이용하게 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Gender War(성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이 커졌다. 앞으로는 온라인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필요할 것”이라며 “SNS의 문제를 누가 어떻게 보고 개입해야 할까.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dit]3. 메갈리아 1년

[[커버스토리]새 창으로 열기페미니즘 전위 ‘메갈리아’ 1년…‘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 그녀들은 유죄인가 - 경향신문]
미러링은 ‘원본’에서 성별만 바꿔 그 ‘원본’이 얼마나 차별적·혐오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지 보여주는 방식이다. “순결한 처녀를 찾는 것이 솔찍헌 늑대의 심정”을 미러링하면 “순결한 총각을 찾는 것이 솔찍헌 여우의 심정”이 된다. 최파란씨(23·가명)는 “미러링을 보고 속이 시원했다. 해방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박수희씨(25·가명)는 “‘여혐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땐 듣지 않던 남성들이 ‘성기 크기’ 미러링으로 되갚아주니 그제서야 ‘혐오는 나쁘다’고 하는 게 우스웠다”고 말했다.

미러링은 표면적으로는 혐오와 폭력의 정서를 띤다. 이 때문에 미러링을 두고 목적은 좋은데 수단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만정치대 류진희 교수는 “한국 남성의 동남아 현지 자녀 코피노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흉내내는 건 또 다른 소수자 혐오 정서를 이용 및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최지현씨(24·가명)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교한 미러링을 기대하긴 어렵다. 미러링은 유일한 수단도 최종 수단도 아닌 문제제기를 하는 신호탄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재윤씨는 현재의 갈등을 학교폭력에 비유했다. “일진에게 매일 맞던 애가 ‘아이씨 그만 좀 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때리지도 않고, 위협하려는 시늉만 했죠. 그런데도 주변에서 ‘너 좀 조용히 해. 아무리 네가 맞았다고 해도 똑같이 때리면 어떡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게, 지금 상황인 거예요.”
논란과 우려 속에서 성과를 이어가던 메갈리아는 성소수자 혐오 논쟁으로 분화했다. 지난해 말쯤 메갈리아 내부에서 게이들이 성정체성을 숨기고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알려지며 ‘게이도 한남충’이란 비판이 일었다. ‘약자인 성소수자를 혐오할 순 없다’는 반론이 제기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메갈리안들은 또 다른 공간인 ‘워마드’와 ‘레디즘’ 등으로 옮겨갔다.

그렇다면 메갈리아 이후의 메갈리안은 무엇일까. 최지현씨는 “잿더미와 폐허 위에 코르셋을 벗은 여자들이 서 있다”며 “이들은 과거의 ‘코르셋’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갈리아 1년]새 창으로 열기<1> "나는 왜 메갈리안이 됐나" - 경향신문]

메갈리아는 등장부터 ‘미러링’을 표방했다. 미러링은 어떤 차별적·혐오적 표현에서 성별을 바꿔끼워, 원래의 표현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인식에 기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를 미러링하면 ‘수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가 된다. ‘남자 기 살려주는 조신한 개념녀’는 ‘여자 기 살려주는 조신한 개념남’이 된다. 모든 미러링엔 원본이 있다.

정우리씨는 미러링을 처음 접했을 때 “‘아 내가 왜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돌려주지 못했지’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메갈리아 이전까지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엄청나게 컸던 페미니스트였다. 정씨는 “도덕적 올바름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미러링은 사실 전혀 올바르지 않다. 누구도 그런 폭력 방식이 옳다고는 하지 않을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효과가 있다는 데에 동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러링의 형식으로 표현된 콘텐츠는 남성들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지만 여성들이 살면서 견뎌야 하는 불편함은 그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거대하다는 사실을 남성들은 알아야 한다”고도 밝혔다. “한두 번 좋게 말해서 남성들이 알아들었다면 여성들이 굳이 미러링이라는 번거로운 방식을 택할 리가 없었을 것”이란 뜻이다.
미러링을 통해 뒤집어진 ‘겉보기 혐오’ 발언이라도, 여성혐오와 ‘남성 혐오’는 다르다. ‘맘충’을 미러링한 ‘애비충’이 그 예다. 국지혜씨는 “남성들이 ‘맘충’을 언급할 때는 ‘우리 엄마는 빼고’가 전제돼 있는 반면 여성들의 ‘애비충’은 실제로 자신의 아빠를 지칭한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실제로 크고 작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안일에 무관심한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뜻이다. 윤수원씨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남성들의 생활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제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여성혐오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선 메갈리안을 ‘메퇘지(메갈리안+멧돼지)’ ‘메오후(메갈리안+파오후)’라고 비하하는 표현이 일찌감치 생겨났다. 현재 이는 ‘메갈리안’ 그 자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쓰이지만 페미니스트 혹은 뭔가 문제제기를 하는 여성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사용된다.

이제 ‘메갈리아’는 없다. 메갈리아가 여러 커뮤니티로 분화하기 전을 기억하는 ‘메갈리안’과 ‘메퇘지’ 소리를 듣는 여성들만이 남았다. 정우리씨는 “메갈리아에 있다 보면, 우리가 뭔가 하나의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메갈리아는 몇명이 여론조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로 구성돼 있고 실제로 굉장히 파급력이 있다”고 말했다.

최지윤씨는 “메갈리아는 여성 인권의 신장을 지향했고, 미러링 같은 좁은 수단으로 묶이기에는 그 목표가 굉장히 광활했다. ‘메갈리안’이라는 정체성 역시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큰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메르스갤러리 저장소3’ 운영자 김모씨는 “누군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 여성혐오자로부터 메갈리안 취급을 받는다. 메갈리안이 이제는 페미니즘을 말하고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1년]새 창으로 열기<2> '남성 메갈리안'의 시각 - 경향신문]

“미러링을 처음 봤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한국 남성들이 여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군대에서 참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하는 여성들 외모 평가부터 시작해서, ‘개저씨(개+아저씨)’나 할 법한 성희롱이 난무했다. 음악 방송 틀어놓고 ‘쟤는 잘하게 생겼다’ ‘먹고 싶다’ 같은 말 하면서 낄낄대는 거다. 학교도 다르지 않았다. 고려대 단톡방 사건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는 메갈리아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여성혐오적 견해를 견지한 남성들을 ‘덩치 큰 남자 아이들’에 빗댔다. 노씨는 “놀자고 하면서 여자애를 막 힘으로 끌어와서 결국 울려놓고 그걸 재미있어 하는 남자애들한테 ‘너는 재밌지만 여자애한텐 폭력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김호철씨(29·가명)는 “본인이 여성혐오를 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고, 스스로가 바뀌기 싫으니까 ‘여성혐오’란 표현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어떤 말을 미러링해서 똑같이 돌려주면, 그 미러링의 원본을 싫어하는 딱 그 정도로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더 싫어한다. 그게 바로 이중잣대”라고 지적했다.
이지훈씨 역시 “주변을 보니 남성들이 ‘여성혐오’란 단어를 굉장히 공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해를 시켜줘도 ‘아 그래도 이거 좀 싫은데’라며 불쾌해하더라”며 “뜻을 알았으면 된 거지, 굳이 그 표현 자체에 불쾌감을 느끼는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1년]새 창으로 열기<3> 메갈리아, 어디로 가나 - 경향신문]

‘녹색의 땅’이라 불리던 ‘본진’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메갈리안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

메갈리아에 관한 최초의 연구논문 저자 윤지영씨는 “메갈리아에서 ‘메갈에 소속감 갖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은 메갈리안들이 지금, 이 순간의 일상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며 “투쟁과 저항의공간을 완전히 분리해내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지속적으로 균열을 일으키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윤지영씨는 “메갈리안 운동의 지향점은 기존의 페미니즘 학계가 목적으로 하는 이성 질서로의 편입이 아니었다”며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구조적 폭력현상을 중단시키는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성향 따라 워마드·레디즘 등으로 분화 - 경향신문]새 창으로 열기


[① 메르스 사태로 탄생한 '페미니즘 전사' 메갈리아 : 포커스뉴스]새 창으로 열기
'메르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이는 한국 여성이 홍콩행 비행기에서 격리 조치를 거부해 아시아에 메르스를 퍼뜨렸다'는 루머였다. 메르스 갤러리 뿐만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 이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일부 남성들은 댓글과 게시글을 통해 한국 여성을 '김치녀'라 부르며 '국제적으로 민폐나 끼치는 존재'라 비난했다.

하지만 후에 루머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자, 메르스 갤러리의 분위기는 급반전 됐다.

여성을 비난하던 글에서 주어와 목적어만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꾼 비난 글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는 3일에 한번씩 패야 한다"는 "한남충(한국 남자)은 숨 쉴 때마다 패야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은 식으로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여성차별적 발언들이 반전된 형태로 재생산 됐다.

메르스 갤러리의 여성들이 '김치녀'라는 여성 혐오 프레임에 맞서기 위해 차용한 방식도 <이갈리아의 딸들>과 동일한 '반전해 그대로 보여주기', 즉 '미러링(Mirroring)'이었다. 거울(mirror)을 보듯이 남성과 여성을 고스란이 거꾸로 위치시키는 방식이다. 이들은 '김치녀'의 자리에 '한남충'을 집어 넣었다.

[② 메갈리안은 '여자 일베'다? : 포커스뉴스]새 창으로 열기

메갈리아에 관한 최초의 논문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남성혐오는 가능한가>의 저자 윤지영 한양대학교 교수는 "메갈리안을 여자 일베나 일베의 복사판으로 축소하기 전에 남성중심의 현실을 재구성하고 해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메갈리아에 남성혐오는 없다. 남근 질서와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만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혐오에는 두 가지 결이 있다. 하나는 사회 주류층이 소수자를 제도적으로 차별하고 그들을 향해 물리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메갈리아는 남성을 타자화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작동했던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억압해왔기 때문에 이와 싸우겠다는 의미다"고 강조했다.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 한국여성철학 - 한국여성철학회 : 전자저널 논문 - DBpia]새 창으로 열기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메갈리안은 여자 일베'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메갈리아에서 등장하는 가장 자극적이고 문제적인 단면을 집어내서 그것을 메갈리아의 전체 얼굴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메갈리안으로 낙인 찍는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단순화하고 축소한다. 이는 여성이 정치적으로 주체화되는 과정에 대한 역공과 반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메갈리안의 혐오표현이 '탈정치적 감정'이라는 비판이 있다.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만나 대화하고 정치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적을 구분하면서 그들을 배제시키고 미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갈리아의 언어는 '인터넷 언어를 차용한 여성의 주체화'이자 '여성의 정치세력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메갈리아는 계속해서 다양한 주체들로 분화하고 여러가지 운동을 하면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온건한 여성주의 콘텐츠를 표방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운영자 A씨는 "중요한 건 전체적인 틀이다. 소위 성차별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있다. 이 구조 안에서 여성들에게 여러 차별이나 폭력을 가하는 게 허용이 된다"면서 "메갈리안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 자체를 소거하고 접근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A씨는 "최근 'K팝스타 시즌5'의 준우승자인 안예은씨가 메갈리아 옹호발언을 했다가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일종의 매카시즘이다. 문제는 이러한 '젠더 매카시즘'이 부상하고 있음에도 제동을 걸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진보 세력이나 사회운동세력 역시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터져도 대응을 할 수가 없다. 이는 넥슨을 비판하는 논평을 냈다가 철회했던 정의당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논평 철회, 당원 탈당까지…정치권에도 '메갈리아' 충격 : 포커스뉴스]새 창으로 열기

[④ '일베' '오유' 남성 주도 커뮤니티 '공공의적'된 메갈리안 : 포커스뉴스]새 창으로 열기

기자와 통화했던 A·B씨 모두 '워마드 부동액 커피' 의혹을 언급하며 "남성혐오가 남성을 향한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했지만, 남성혐오가 여성혐오를 압도할만큼 강력했던 적도 없으며 메갈리아의 최근 관심사는 오히려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 스스로이다.

뿐만 아니라 메갈리아는 지난해 말 이후부터 워마드와 레디즘으로 갈라져 이전과 같은 '강력한 화력'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장악하지도 못하고 있다. 메갈리아와 워마드, 레디즘, 페이스북 페이지 등으로 잘게 나뉜 점조직으로 일베나 오유 같이 거대한 남초 커뮤니티와 대등하게 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dit]4. 넥슨김자연성우교체 사태 관련 메갈리아 논쟁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 : 여성 : 사회 : 뉴스 : 한겨레]새 창으로 열기
그러나 메갈리아의 전략은 그들이 의도(인지)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반적인 의미의 미러링이 아니었다. 일단, ‘메갈리아’의 뜻 자체가 노르웨이의 여성주의 작가 게르드 브란텐베르그의 가상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의 합성어다. 처음부터 이들은 그간 인터넷에서 남성의 세계와 언어를 지켜본 경험을 살려 그들 문화 속에 들어가, 나도 그 입장이 되어 보자는 게임에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남성들도 겪어봐라”가 아니라 “우리도 그래 보면 저들이 어떻게 나올까”의 의미가 강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목적은 대사회적 발언이나 구체적인 성차별의 피해여성 ‘구제’가 아니다. 지금 일부 메갈리안들의 미러링 언어는, 남자들 입장에서는 원래부터 자유롭게 했던 말들이다. 거듭 강조하면, 이제까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혐오를 돌려준다기보다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할 때 사회의 반응, 그 자체를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꽃뱀”에 대해 “좆뱀”, “김치녀”에 대해 “씹치남”, “맘충”에 대해 “한남충”(한국남자蟲) 등이 그것이다.
메갈리아 활동에 대해 “여자 일베”라는 입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있다”는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당연히 미러링은 성공하지 못했다. 성공할 필요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이것은 메갈리아의 잘못도 실패도 아니다. 미러링이 성공하려면 성차별 현실을 인정하고 서로의 경험과 언어,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갑’인 남성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이미 가부장제 사회가 아니다.
대다수 한국 남성들은 규범적으로는 혹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여성차별에 반대하고 양성은 평등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성차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사회 구조적 제도로서 성차별의 심각성과 광범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다. 여성문제는 언제나 ‘사소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운동의 방법 등을 문제 삼아 실제로는 방관하거나 불편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차별에도 반대하고, 메갈리아에도 반대한다’는 이중적 언설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일반인, 학계, 정치권, 시민사회 다 마찬가지다. 학문이 발전할 리 없다. 타자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어떻게 앎이 가능하겠는가.
남성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기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지적을 받거나 법적 처벌을 겪으면, ‘가해자의 피해의식’으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성이 받는 대부분의 상처는 남성과 남성의 계급 차이 때문이다. 어쨌든, 이마저도 여성의 감정노동을 구입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독점하는 사회. 이보다 끔찍한 공동체는 없다. 그래서일까. 여성이 술을 마시면 주로 울거나 신세한탄을 하는데, 남성은 일선 경찰의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인 주취 폭력을 행사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묻는다. 그것은 자기를 알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일지도 모른다.

노혜경씨의 메갈인증
여기에 대응하여 각종 게시판이나 담벼락에서 글쓰는 남성들이 구사하는 수법은 참으로 언제나 치사할 정도로 똑같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는...", "너는 아니지만 꼴페미들이....", 라는 식으로 주체를 규정지어주고, 즉 일단 분할해주고 말하거나.,

메갈들의 이러저러한 말은 나쁘다, 틀렸다, 라고, 딱 그 말만 놓고 보면 분명 문제인 말들을 가지고 온다.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호명하는 권력, 대화주제를 특정하는 권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구 자체가 메갈이 타도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년들아, 청년들아. 너희들이 맞써 싸워야 하는 건 메갈들이 말하는 내용을 몸소 실천하여 여성들을 괴롭힌 그 어른 남자들이지 메갈리안들이 아니야. 알고 보면 너희들이 피해자야. 어른 남자들이 몸소 실천해온 각종 성폭력과 성차별 때문에 너희들 또래 여성들은 결혼도 연애도 싫다잖니? 그런데 그걸, 너희 젊은 여자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어, 라고 백날 말해봐라. 니들도 더 나이들면 저따위 짓을 하고 살고 싶다는 소리로밖에 안들려.
일베 아니라도 인생도처에 쓰레기같은 남성들의 언행은 제지받지 않고 넘쳐난다. 하다못해 영화에서도, 가정폭력 현장의 남성들도, 지하철 안 어버이연합 영감님도, 즉, 남성하위문화에서 언제나 발견되는 폭력성을 한데 모아놓은 곳이 일베라고 한다면, 일베는 없어져도 단지 분산될 뿐이지만.

메갈은 그에 필적할 만한 여성사이트가 또 있나? 여성들은, 자리 깔아줘도 기껏해야 욕쟁이 할매가 하한선이기 쉽다. 나는 메갈이 욕을 하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싫지 않다. 미러링이 심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도, 들은 만큼 말하겠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하기 싫다. 나보고 하라면야,.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 마음에 든다.

그런거 저런거 다 제끼고,

메갈이 없었다면, 여성은 결곱고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저항의 언어에 머무르라는, 허용의 좁은 범주에 머무르고 말 일 아닌가?


['메갈' 린치하는 자들, 여혐은 왜 보고만 있었나 - 오마이뉴스]새 창으로 열기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메갈리아'라는 정체성은 그 주체성이 없다. 부여받은 정체성이다. 이 모호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있는 이들은 무엇이 페미니즘이고 무엇이 '메갈'인지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메갈로 '통칭'할 뿐이다. 그리고 이 통칭에 의해 누군가는 목소리를 잃었고 누군가는 '사이버 린치'를 당하고 있다.

일베는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을 취사선택 할 수 있다. 그러나 메갈도 그럴까? 티셔츠가 예뻐서 샀든, 메갈리아4 페이지의 펀딩 취지에 동의해서 샀든, 아니면 정말로 '메갈리아'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 샀든. 모든 이유들이 메갈로 등치되고 있다. 이 티를 입은 자들이 말하는 모든 언어는 '메갈'의 언어로 치환되고 있다.

이제 어떤 페미니즘적 언어도 '메갈'이 될 수 있다. 비난하는 자들은 손쉬운 낙인을 택했다. 이제 벗어나기 위한 해명은 '낙인 받은 자'들의 몫이다. 이제 누구라도 '메갈'이 될 수 있다. 과거 누구라도 '김치녀'가 될 수 있었듯. 혹은 어떤 성범죄 피해자라도 '꽃뱀'이 될 수 있었듯.

티셔츠 논란은 메갈리아를 '보편적인 남성 혐오의 공간'으로 정의하려는 일종의 레이블링(Labeling) 작업이었다. '모든 혐오에 반대 한다'는 미명 아래 행해진 일들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메갈리아' 콘텐츠에는 원본이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해왔던 그것들이다. 과거부터 수많은 여성들이 가만히 보고 넘겼어야 했던, 남자애들의 과격한 장난이라고 여기고 참아야 했던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일베'로 통칭하진 않았다. 여성을 집단화하며 놀려대는,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하고 유희로만 치부하는 각종의 이야기들이 유머 페이지에 올라왔지만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일베'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낄낄거리며 친구들을 태그 했다. 최근의 일도 아니다. 예부터 '여자를 남자의 부속품으로 대하는 것'이 남자다움의 미덕이라고 말해왔다. 약물을 먹여 강간을 한 뒤, 그것을 '정복'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이것을 '일베' 같은 것이라며 레이블링하며 비난하는 대신 '남성들의 문화'로 치부했다.

'메갈리아'가 아무리 언어적 폭력을 수단으로 삼았어도 누구도 낙인찍지 못했다. 대신 그 언어적 폭력을 사용한 대가로 '메갈'로 규정 당했다. 이 불공평한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지 않은가?


[메갈리아와 낙인찍기 | 슬로우뉴스]새 창으로 열기
하지만 이번 넥슨 성우 하차 논란은 특별한 공익적 맥락을 가진 전례와 연결고리가 없다. 일베를 배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베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며 지역 차별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저런 발언을 하거나 그에 동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베 회원이란 이유만으로 밥그릇을 자르는 건 인권 침해의 개연성이 있다.

일베의 ‘무엇이’, ‘왜’ 나쁜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메갈리아의 무엇이, 왜 잘못이며 나의 선입견은 없는지 자문해 본 후 연대할 지점과 비판할 지점을 가리는 성숙한 사고를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반사회적 혐오사이트 메갈리아’는 상대에게 오명을 씌워 토론이 불필요한 상태로 배제하려는 낙인찍기다. 그 낙인찍기의 세계에서 메갈리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을 싸잡는 대명사로 쓰인다.


경향신문 메갈리아 연속 기고
성차별 발언을 하는 연예인에게 퇴출 요구를 했던 페미니스트들이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우를 해고한 조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내가 하는 퇴출 요구는 정당하고 남이 하는 요구는 틀리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전자(성차별적 발언)는 퇴출 사유이고 후자(해고 조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마찬가지로, 성차별 발언은 퇴출 사유가 아니지만 메갈리아 지지 표현·행위는 퇴출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메갈리아 지지 웹툰 작가들을 색출해 불매운동을 벌이며 검열을 요구한다.

여기서 문제는 누가 일관성이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라 ‘성차별 발언이/메갈리아 지지 표명이 공론장에서 퇴출당해야 할 사유인가?’다.

지금도 논쟁의 대상인 ‘미러링’은 아주 새롭고 독창적인 전술이라기보다는 ‘풍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여성혐오에 대한 미러링을 하기 때문에 메갈리아는 일베와 동일한 존재’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우리 모두 ‘풍자’가 무엇인지는 다 안다. 미러링 전술을 비판하는 사람이라도 예컨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가 쓴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고 “이 책은 성차별주의자들에게 똑같이 보복하려는 ‘남성혐오’ 시도이므로 인권침해적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러링 전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풍자 성격의 미러링으로 시도되었지만 말 그대로 의미를 담은 것처럼 읽히는 글과 표현에 대한 평가가 문제다.
그런데도 마치 ‘메갈리아’가 단일하고 확고한 정치적 주체인 것처럼, 메갈리아 지지자들을 색출해 비난·공격하는 행위의 정치적 의미는 무엇일까? 메갈리안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메갈리아를 공격하는 행위의 정치적 의미 역시 명백하다. 한국 사회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성차별에 분노해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동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주관적인 동기가 무엇이든 메갈리안을 색출하고 메갈리아를 공격한다는 행위가 현재의 정치 지형에서 낳는 실천적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종북’은 실재하는 정치적 경향이 아니라, 일종의 허수아비이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차별에 분노하는 느슨한 커뮤니티인 ‘메갈리아’를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 호명하는 자체가 허수아비를 세워 공격하려는 시도다. 그들은 메갈리아 커뮤니티 이용자들만을 지목하지도 않고, 그곳의 인권침해·언어폭력 가해자들만을 지목하지도 않는다. 성차별과 성폭력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모든 이들에게 ‘메갈리아’라는 딱지를 붙인다. 지금 “내가 메갈이다”는 선언은 “내가 종북이다”와 마찬가지로, 불의에 저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우익과 지배계급의 협박을 거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나는 메갈리아의 대안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내가 메갈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베나 메갈이나.”를 말하는 사람들은 왜 이 차이를 무시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여성혐오자이자 성차별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단체들은 이런 류의 공격을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낀다. 유사 이래 모든 소수자 단체들은 도덕적인 완전무결함을 요구받아 왔기 때문이다. 도덕에 한 치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기득권층은 이를 빌미로 삼아 즉각 소수자 단체를 해체하려고 덤빈다. ‘내가 보기에 싫은 주장’을 하는 단체를 없애기 위해, “그 주장이 옳지 않다.”라는 낯부끄러운 말을 꺼내기보다는, 단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치졸한 수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득권층의 이 치졸한 수법은 메갈리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한점의 오차도 없을 만큼 똑 닮았다. 반 여성혐오는 ‘내가 보기에 싫은 주장’이어서 사라지기를 바라지만, “여성혐오를 계속 하고 싶다.”라는 낯부끄러운 말을 꺼낼 수는 없으니, 단체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셈이다. 비도덕성의 화신인 일간베스트라는 존재는 양념으로 사용된다. 특히 이런 추세는 넥슨 사태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상의 많은 여성혐오자들은 웹툰 작가, 가수, 지식인의 목소리를 사회에서 배제하기 위해, 그 주장의 당위를 살펴보는 대신 도덕성을 지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인정하지만…….”, “일베나 메갈이나.” 같은 치졸한 변명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라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성차별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가 되겠다.”는 선언, 왠지 이 글의 아래에서도 이어질 것 같지 않은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이는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이다.

모든 변화는 자기객관화에서 출발한다.

메갈리아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의 대부분은 ‘당해왔던 대로 보복하겠다는 건 똑같이 못된 짓 아니냐’라는 논지를 밑에 깔고 있다. 메갈리안들이 진심으로 당한 만큼 복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도 나로서는 그럴 만하지 않은가 싶긴 하지만, 그 이전에 이것은 메갈리아가 여성과 남성의 처지가 뒤바뀐 일종의 가상세계를 전제로만 성립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풍자를 현실과 등치하는 부당한 해석이다.
그러면 현실의 권력관계에 반하는 이러한 발화는 왜 나오는가? 왜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발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바로 그 현실적 권력관계가 이 말을 폭력이 아닌 ‘농담’이나 ‘음담패설’로, ‘정상적 질서’로 통용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문법과 합치하는 방향이 아니라 반대하는 방향으로 이 발화가 나왔을 때에야 그것이 얼마나 문제적인지를 사회가 온전히 인식하기 때문이다. 강간을 당했으니 강간으로 갚아주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적절한 비유는 논리적으로 백 마디를 설명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쉽게 문제를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정상적인’ ‘당연한’ ‘원래 그런’ 것으로 인식했던 현실이 성별만 바꿔놓으면 누가 봐도 우스꽝스럽고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만큼 성차별의 위력을 절감하는 순간이 있을까? ‘김치녀’라는 단어의 폭력성에 대한 수많은 여성들의 항변을 꿋꿋하게 무시하던 DC인사이드 운영진은 메갈리아가 생기자마자 비로소 ‘김치남’과 ‘김치녀’ 모두를 금지어로 지정했다. 이 유명한 사건은 그간 통용되어온 ‘표현의 자유’가 사실은 그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낙인찍기는 묵인하자는 말에 불과했음을 극도로 간명하고 명확하게 드러냈다. ‘표현의 자유’의 한계나 농담의 범위, 사회적 권력관계나 혐오범죄에 대한 어떤 논변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메갈리아가 많은 여성들의 ‘코르셋 벗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 것은 미러링이 이러한 사회적 이중기준의 모순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미러링’은 문제가 없고 전적으로 긍정적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모든 전략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미러링 역시 고유한 장점이 있는 만큼 벗어날 수 없는 한계와 위험성도 있다. 메갈리아가 보여주는 잘못된 측면들 중에는 원본이 명확하고 정반사된 미러링에도 어느 정도 수반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도 많다.
메갈리아에 올라오는 표현들 중에는 분명히 ‘미러링’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되기 힘든 것들도 섞여 있다. 그 자체로는 정당화될 수 있는 미러링 또한 자칫 진심으로 번질 위험이 있고 현실을 도식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와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러링을 현실과 등치하거나 나아가 미러링을 활용하는 사람들 전체를 악마화할 근거는 될 수 없다.
메갈리아는 남성에 대한 증오로 결집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집단 역할극을 통해 성차별을 풍자하는 사회 비판 집단이다. 그 풍자는 때로 부적절하거나 비도덕적일 수 있고, 제대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도 위험과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끊임없는 성찰과 비판 속에서 매우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 메갈리아가 이것을 전적으로 잘해온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미러링 자체를 사회적으로 배척하고 악마화하는 것은 정의 구현이 아니라 사회 풍자에 대한 불관용에 불과하다. 미러링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여성들에게서 자신의 경험을 고발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빼앗고 사회 전체의 비판과 표현을 위축시킬 것이며, 결국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진보를 방해하게 될 것이다. 메갈리아 마녀사냥이 메갈리안들만의 문제도 페미니스트들만의 문제도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타뉴스]새 창으로 열기메갈에는 없는 남성혐오 - 경향 ‘향이네’]

강간범, 몰카범, 염산테러범이 아닌 남성은 “가해집단 구성원”으로 싸잡히면 억울하지 않겠느냐고? 아니다. 남자들은 스스로 무고하다 여기며 억울해 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만연한 강간문화가 남성의 여성 강간을 조장하고 있으니, 남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당신은 강간문화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몰카범죄의 만연을 부정하고 몰카범을 “나 같은 일반인과는 다른 미친놈 한둘”로 여기는 당신의 태도가 몰카범죄를 조장하며, 한국 남성의 낮은 가사분담률이나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광고, 만화, 게임 등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당신의 태도가 우리 사회의 여성억압적 구조를 떠받친다.
여성혐오가 이렇게 디폴트인 것, 무의식적인 것, 자연화된 것인 데 비해 남성혐오는 전략적인 것, 의식적인 것, 인공적인 것이다. 아직 남성상위시대를 사는 우리가 남성혐오라는 전략을 채택하려면, 존재하지 않는 혐오를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 내야 한다. 디폴트인 여성혐오와 달리 남성혐오는 의식적으로 행해야 한다. 메갈리안들이 여성혐오를 미러링함으로써 남성혐오를 생산하고 행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전략적 남성혐오를 채택했다면, 그 부분에서는 실패한 것 같다. 여성혐오를 드러내고, 시스헤테로여성의 욕망을 큰 소리로 내뱉는 데는 성공했으나, 메갈은 남성혐오를 만들어내고 행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메갈은 남성혐오집단”이라는 비난이 더 쓰다. 남성혐오에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남성혐오”라는 비난을 받는 미러링과, 실제로 존재하는데도 “혐오 아닌데요?”라는 소리나 듣는 여성혐오를 비교하지 않기가 어렵다.


[시론:넥슨 여성운동 탄압사태, 눈치들 보지 마라 - 경향신문]새 창으로 열기
남성우위의 사회에서 남성을 혐오하는 발언은, 그럴 가능성은,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들이 ‘나치당원들을 찢어죽이자’고 아무리 악을 써봐야 그것이 주변 사람들을 선동시켜 나치당원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전화될 가능성만큼이나 없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신체적 약자일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남성혐오 발언들을 듣고 마음이 동하여 밖에서 남성들에게 폭행이나 강간을 시도할 수도 없으며, 사회에서 대부분의 인사권자들은 남성이다.

메갈리아’와 ‘일베’를 동급으로 보는 이유는 특정 표현에 동조해 줄 차별적인 사회구조가 존재하는지를 보지 않고, 혐오스러운 표현만을 보기 때문이다. “혐오에 혐오로 대응한다”고? 당연히도 그럴 것이 메갈리아는 미러링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미러링은 이에 호응할 여존남비적 사회구조가 있을 때만 혐오 표현이 될 뿐 지금은 기본적으로 풍자이며 해학이다. 상민들이 실제로는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왕을 모독하는 탈춤을 즐겼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앞의 혐오와 뒤의 혐오가 똑같다고 보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정확한 지적일 뿐 실체에는 무지한 표현이다.
혐오 표현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UDHR)에 “차별의 선동”으로 정확히 정의되어 있다. 왜 그렇게 좁게 정의했는가? 바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2mb18noma’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Fuck the Draft’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 효순이와 미선이를 깔아뭉갠 장갑차를 보고 ‘Fucking USA’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자유를 생각해보자. 메갈리아로 여성운동은 백배 강해졌다. 이제 눈치들 보지 마시라.

[메갈 논쟁, 코르셋을 벗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블로그]새 창으로 열기

그것이 ‘여성문제’가 된 건, 다른 문제에 비해 덜 심각해서가 아니었다. 다른 문제에 비해 더 심각하지만 누구도 그 문제가 심각하다고 감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여성문제’였고, 구별짓기된 언어 표현 그대로 ‘내 문제’가 아니라 ‘너희 문제’였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범죄였다. 가해자들은 스스로를 가해자이기보다 ‘보호자’로 지목하곤 했다. ‘딸 같아서 그랬다’는 박희태나, ‘여자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았으면 한다’던 유영철이나, 흔히 보는 가정폭력 가해자들의 언어엔 ‘내가 바로 보호자’라는 컨셉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문제의 책임은 여성에게 주어지고, 남성은 보호자라는 이름 속에 폭력의 죄와 책임이 감춰지기 쉬웠다.
이렇게 볼 때, 강남역 10번 출구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어난 저항의 국면에서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수면위로 등장한 건 우연이 아니다. 누군가는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말라며 화를 냈고, 누군가는 잠재적 가해자가 맞다며 성찰했으며, 여성학자 정희진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 잠재적 가해자란 없다’고 응답했다. 인종차별 문제를 두고 ‘잠재적 가해자 -백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구조의 모순은 개개인의 인성에 기댄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성차별을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기란 여전히 어려워서 ‘잠재적 가해자’와 같이 문제를 ‘개별화’시키는 언어들이 꾸준히 등장하는 중이다
심각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도 심각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타인의 경험에 대한 무감각의 연대 속에서 일어난다. 판단과 평가, 진단과 서열 매기기의 방식으로 타인을 만나는데 익숙한 이들에게는 더더욱 타인의 경험에 들어가 어떤 것을 ‘같이’ 느끼는 일이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그 타인이 ‘김치년’이거나, 남성을 한남충이라 부르는 ‘메갈리안’이라면 더욱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굳이? 메갈을 공감? 돌았냥?”)

하지만 이런 메갈리아를 향한 반감의 정서로 몸을 휘감기보다, 그치지 않은 여/성폭력과 차별에 눈감았던 나의 방임이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지 살폈으면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이틀에 한명 꼴로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으로부터 여성이 살해되며, 흉악범죄 피해자의 84%가 여성이라는 것도 기억했으면 한다. 메갈은 작금의 이런 현실에 분노하는 이들의 묶음이다. 싸워야할 대상은 메갈이 아니라 이런 죽음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의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닌가.


[‘원본’이 사라지면 ‘미러링’도 사라진다]새 창으로 열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 앞에 놓인 현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를 보자. 이 사건을 계기로 쏟아져 나왔던 여성들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과 위협은 말 그대로 심각하다. 신상이 공개되고 과거 발언이 문제되는 등 이들이 사건 이후 겪은 일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이들이 막말을 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실명으로 비판한 적도 없다. 단지 여성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 현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처절한 복수와 응징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 여성혐오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제기했던 시사 프로그램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성 대결이 아닌 성차별 해소라는 프레임은 항상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다. 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비장애인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닌 것처럼, 여성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남성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이는 단지 성차별적 관행과 문화, 제도를 반대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누구나 함께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다. 이는 여성만의 권리 혹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닌 다양한 젠더의 권리를 존중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십 년 동안 이야기해온, 이처럼 간단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edit]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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