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대한타당한근거와잘못된근거

마지막으로 [b]

VIA. Bright:믿음에대한타당한근거와잘못된근거

RichardDawkins 의 글

믿음에 대한 타당한 근거와 잘못된 근거 ("Good and Bad Reasons for Believing") --RichardDawkins

줄리엣에게

이제 너도 열 살이 되었구나. 나는 이 편지에서 내게 무척 중요했던 몇 가지 문제를 네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아마도 너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지식들이 정말 사실인지,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닐지 의문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가령 마치 하늘에 난 작은 바늘 구멍처럼 보이는 항성(恒星)들이 실제로는 태양과 같은 거대한 불덩어리이며, 우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지구가 그런 항성들 중 하나인 태양의 주위를 도는 훨씬 작은 구체(球體)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증거'이다. 때로 증거는 어떤 현상이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보는 것(또는 듣는 것, 느끼는 것, 냄새 맡는 것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에서 충분히 멀리까지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직접 자신의 눈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우리의 눈이 다른 기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저녁 무렵에 나타나는 '샛별'은 하늘에서 밝게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관찰해 보면 그 별이 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행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네가 직접 눈으로 보고(또는 듣는 것, 느끼는 것 등) 아는 것을 관찰이라고 한다.

증거를 관찰로 얻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그럴 때에도 관찰은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뒷면에 감춰져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대개는 아무도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다(물론 살인자와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 그러나 형사는 용의자를 밝혀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목격담이나 증거를 수집한다 만약 어떤 사람의 지문이 범행에 사용된 칼에서 발견된 지문과 일치하면, 그것은 그 사람이 칼을 만졌다는 증거가 된다. 물론 그 사실만으로 그가 살인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밖의 다른 증거들이 보강되면 지문의 소유자가 살인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 때로는 형사가 마음속으로 범행 과정을 눈앞에서 관찰하듯이 추리하다가 실제 살인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갑작스럽게 깨닫는 경우도 있다.

이 세상과 우주의 진실을 밝혀 내는 전문가인 과학자들은 종종 형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일한다. 그들은 추리를 통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이론 (이것을 가설이라 부른다)을 세운다.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그 가설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을까? 이것을 예측이라고 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지구가 정말 둥글다면 우리는 누구든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면 결국 자신이 처음 출발했던 위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의사가 네가 홍역에 걸렸다고 말할 때, 의사 선생님이 너를 한번 쳐다보고 얼굴에서 홍역을 직접 본 것은 아닐 것이다. 의사는 너를 살펴본 후에 네가 홍역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여자아이가 정말 홍역에 걸렸을까? 홍역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과 일치하는지 살펴봐야겠군···· 의사는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예측 목록을 조사하고, 눈으로 관찰한 결과와 비교하며(반점이 나타났는가?), 손으로 진찰하고(이마가 뜨거운가?), 청진기를 대고 귀로 듣는다(가슴에서 홍역에 걸렸을 때 들리는 쌔근거리는 소리가 나는가?). 이런 진찰을 끝낸 다음에야 의 사는 결론을 내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제 진단으로는 이 아이가 홍역에 걸렸습니다." 때로는 혈액 검사나 X-선 촬영과 같은 다른 조사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런 수단들은 의사의 눈, 손, 귀가 하는 관찰을 도와 준다.

과학자들이 이 세계에 대해 연구하고 배워 나갈 때 증거를 사용하는 방식은 이 짧은 편지에서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교묘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언가를 믿게 해 주는 좋은 증거에 대한 이야기를 이쯤에서 그치고, 잘못된 믿음을 주는 세 가지 나쁜 근거에 대해서 네게 경고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각각 '전통', '권위', '계시'라고 불린다.

그러면 먼저 전통에 대해 살펴보자. 몇달 전에 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약 15명의 어린이들과 토론을 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종교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에 초대되었다. 어떤 아이들은 기독교, 다른 아이들은 유대교 가정에서 자라났고, 이슬람교, 힌두교, 시크교도로 키워진 아이들도 있었다.

사회를 맡은 남자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에게 그들이 믿는 것에 대해 물었다. 이때 아이들이 한 대답은 정확히 내가 의미하는 '전통'을 보여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증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그 아이들은 단지 자신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믿음을 자랑스럽게 떠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양친이나 조부모의 믿음 역시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저마다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우리 힌두교도들은 이러저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이슬람교도들은 이러저러한 것들을 믿어요." "우리 기독교인들은 다른 믿음을 가져요."

그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옳을 수는 없다. 마이크를 쥐고 있는 남자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고, 아이들의 믿음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토론에 부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내가 이야기하려는 요점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 여러 가지 믿음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그 믿음들은 모두 종교에서 왔다. 전통이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끝없이 전달되는 믿음이다. 또는 책을 통해 수세기 동안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기도 한다. 우리가 전통적인 믿음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개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필경 누군가가 맨 처음에 그저 우연히 그런 믿음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토르(Tor: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우레와 농업의 신)와 제우스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서 수세기 동안 전해졌다. 단지 너무도 오래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라 특별하게 생각될 뿐이지 어떤 사람이 지어 낸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 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실을 믿는다. 그것이 바로 전통이다.

전통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문제는 어떤 이야기가 아무리 오래 전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원래의 이야기가 옳은지 그른지에 따라 현재에도 옳든가 그르든가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네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 낸다면, 아무리 많은 세대를 거쳐 전달되더라도 조금도 사실에 가까워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오래 전부터 영국 국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왔다. 그러나 영국 국교회는 기독교의 많은 종파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밖에도 러시아 정교회, 로마 카톨릭, 감리교 등 여러 교파가 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신앙을 가진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좀 더 다르다. 그리고 유대교와 이슬람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런데 사소한 신앙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그 불일치 때문에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너는 그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신념을 가질 수 있는 뭔가 상당한 이유 - 근거 - 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의 상이한 믿음은 순전히 서로 다른 전통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특정한 전통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로마 카톨릭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매우 특수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성모 마리아' 라고 부르고, 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고 육신을 가진 채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른 종파에서는 로마 카톨릭처럼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그녀를 '성모 마리아' 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마리아의 육체가 천국으로 들어올려졌다는 전통은 그다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그녀가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다. 사실 성경은 그 불행한 여인에 대해 거의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육신이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믿음은 예수가 살던 시대에서 6세기가 지난 후에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마치 백설공주 이야기가 지어진 것처럼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가 지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이야기는 하나의 전통으로 발전했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수세기 동안 전해져 왔다는 단순한 이유를 근거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전통이 오래될 수록 사람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공식적인 로마 카톨릭의 믿음으로 기록된 것은 극히 최근인 1950년 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네 나이만 했을 때에야 비로소 공식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렇지만 마리아가 세상을 떠나고 6백 년이 지난 후에 처음 지어진 이야기보다 1950년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야기가 더 사실적인 것은 분명 아니다.

나는 이 편지의 말미에서 조금 다른 식으로 다시 전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겠다. 하지만 먼저 어떤 것을 믿는 데 있어 두 가지 다른 잘못된 근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권위와 계시(啓示)이다.

어떤 것을 믿는 근거로 작용하는 권위란 누군가 중요한 사람이 네게 그것을 믿으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믿는 것을 말한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교황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단지 교황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반드시 옳다고 믿는다. 이슬람교의 한 종파에서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야톨라' 라 불리는 수염을 기른 나이든 사람이다. 많은 이슬람 교도들은 기꺼이 살인을 저지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순수하게 멀리 떨어진 조국의 아야톨라가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앞에서 로마 카톨릭이 성모 마리아의 육신이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믿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시기가 비교적 최근인 1950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은 1950년에 교황이 카톨릭 교도들에게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뜻이다. 그것이 전부이다. 교황이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육신이 하늘로 들어올려졌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교황이 생애 동안 한 이야기는 일부는 사실이었고 다른 일부는 사실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교황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보다 교황이 하는 이야기를 특별히 더 믿어야 한다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의 교황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자식의 수를 제한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만약 사람들이 교황이 원하듯이 그의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지나친 인구 증가로 식량 부족, 질병, 그리고 전쟁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물론 과학에서도 스스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빌어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령 나도 직접 내 눈으로 빛이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린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빛의 속도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는 책을 믿는다. 이것도 권위처럼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권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 책을 쓴 사람이 증거를 보았고, 사람들은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 증거를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상당히 위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직자들도 성모 마리아의 육체가 천국에 오르면서 점차 모습이 작아졌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믿음의 잘못된 근거의 세 번째 종류로는 '계시'가 있다. 만약 여러분이 1950년에 교황에게 성모 마리아의 육체가 천국으로 점차 사라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면, 그는 그 모습이 '계시'를 통해 나타났다고 말했을 것이다. 교황은 자신의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겼고, 점점 더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적 감정에서 어떤 것이 사실임에 틀림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때 - 설령 그런 느낌에 대해 아무런 근거를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 그들은 그것을 '계시'라고 부른다.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교황만은 아니다. 수많은 종교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어떤 사실을 믿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바로 그 계시이다. 그렇다면 계시는 과연 올바른 근거일까?

가령 내가 네 강아지가 죽었다고 이야기한다고 하자. 필경 너는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퍼부을 것이다 "정말이에요? 어떻게 그걸 알지요? 내 개가 어떻게 죽게 되었지요?" 그때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가정해 보자. "실은 페페가 죽었는지 알지 못한단다. 아무런 근거도 없어. 단지 나의 깊은 내부에서 페페가 죽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야." 만약 이런 말을 듣는다면 너는 공연히 놀라게 만든 내게 마구 항의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내면적인 '느낌' 이 그 자체로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네게는 분명한 근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경우에 따라 내면적인 느낌을 가진다. 그런 느낌이 사실로 밝혀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렇다면 누구의 느낌이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개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가 정말 죽었는지 살펴보거나, 심장의 박동이 멈추었는지 귀를 대 보거나, 개가 죽었다는 실제 증거를 듣거나 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는 네가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느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아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잘못된 주장이다. 누군가가 너를 사랑한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너를 사랑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함께 지낸다면 너는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한다는 작은 증거들을 무수히 듣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성직자들이 계시라고 부르는 감정과 같은 순수한 내적 감정은 아니다.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거나 뒷받침해 주는 외면적인 사실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상대의 눈빛이나, 그 사람의 목소리에 스며 있는 부드러운 어조, 작은 호감과 친근감, 이 모든 것이 실제적인 증거이다.

때로는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강한 내면적인 느낌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엉뚱한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자면 실제로 그 사람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유명한 영화 배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식의 강한 내적 확신을 갖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비뚤어진 마음의 소유자이다. 내적 감정은 반드시 확실한 이유와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느낌을 믿어서는 안 된다.

마음속의 느낌은 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네가 나중에 증거를 찾아 그 느낌을 검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만 가치가 있다. 과학자도 옳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개념에 대해 '육감'을 가질 수 있다. 육감이나 느낌 자체가 무언가를 믿을 만한 타당한 근거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실험을 하기 위해 일정한 시간을 보내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그 근거를 찾는 데에는 좋은 이유가 될 수 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과학자들은 착상을 얻기 위해 자신의 내적 느낌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확실한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기까지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앞에서 나는 다시 전통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젓이고, 앞에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네게 왜 전통이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동물은 같은 종류의 동물들이 살아가는 정상적인 장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진화]라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 사자는 아프리카의 평원에서 생존하기 쉬운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재는 맑은 물에서 살아가도록 되어 있고, 바다가재는 소금기 있는 바닷물에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람 역시 동물의 일종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자나 바다가재처럼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냥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음식을 사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을 산다. 우리는 '사람이라는 바다'에서 헤엄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가미를 필요로 하듯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뇌를 필요로 한다. 바다가 소금물로 가득 차 있듯이, 사람의 바다는 언어처럼 배워야 할 무수히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너는 영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네 친구 앤 카틀린은 독일어로 말한다. 너희들은 각기 자신의 개별적인 '사람의 바다'에서 헤엄쳐 나가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언어는 전통에 의해 계속 전달된다. 그 밖의 다른 방법은 없다. 영국에서 페페(Pepe)는 개를 뜻한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훈트(Hund)가 개이다. 페페나 훈트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하거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둘 다 전통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온 말이기 때문이다. 각자 사람의 바다에서 능숙하게 헤엄치기 위해서, 아이들은 자기 나라의 모국어를 배운다. 그리고 그 밖에도 자기 나라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공부한다. 이 말은 아이들이 마치 잉크를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엄청난 양의 전통적인 정보를 흡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정보란 단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 그리고 자식들에게 전해져 온 사실들을 뜻함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의 뇌는 전통 정보를 빨아들이는 스펀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리석고 나쁜 전통 정보(마녀, 악마, 처녀귀신 등)와 유용한 전통 정보(가령 언어의 어휘와 같은)를 분간할 수 있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은 전통 정보를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같기 때문에 어른들이 해주는 이야기가 사실이든 거짓이든, 옳든 그르든 간에 모든 것을 믿기 쉽다는 사실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 주는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사실이며 근거에 기초해 있거나 최소한 사리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거짓이거나, 어리석은 이야기이거나, 심지어는 사악한 것일지라도, 아이들이 그것 역시 믿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자랐을 때 그들은 어떻게 할까? 물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 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게 되면 - 설령 그것이 전혀 사실과 다르고, 최초에 그것을 믿을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하더라도 - 그 이야기는 영원히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의 경우에도 이런 이야기를 적용할 수 있을까? 신이나 여신이 있다는 믿음, 천국에 대한 믿음, 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았다는 믿음,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는 믿음,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포도주가 피로 바뀐다는 믿음··· 등, 이들 중 어느 하나도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믿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어떤 이야기든 쉽게 믿어 버리는 어린 시절에 그런 믿음을 갖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수백만에 달하는 다른 사람들은 전혀 다른 사실을 믿는다. 그들 역시 어린 시절에 다른 사실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의 아이들은 기독교의 아이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난다. 그리고 성인이 된 다음에는 각기 자신이 옳으며, 상대가 틀렸다고 확신하게 된다. 로마 카톨릭 교도들의 신앙은 영국 국교회나 감리교회 신자들의 그것과 다르다. 셰이커 교도와 퀘이커 교도들, 그리고 모르몬 교도와 오순절파의 교도들 역시 자신의 신앙이 옳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네가 영어를 사용하고 앤 카틀린이 독일어로 말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전혀 다른 사실을 믿는다. 두 언어는 모두 자기 나라의 국어이며, 사람들은 그 언어로 말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종교가 정반대의 사실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여러 종교가 각기 자기 나라에서 옳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가령 마리아는 남부 아일랜드의 카톨릭에서는 절대 죽은 존재가 아니지만, 북아일랜드의 신교도들에게는 절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너는 이제 겨우 10살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해답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 볼 수는 있다 이제부터는 누군가가 네게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야기를 해 주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해 보아라. '과연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전통, 권위, 또는 계시 때문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할까? 그리고 누군가가 네게 어떤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옳다라는 어떤 근거라도 있나요?"라고, 만약 그 사람이 네게 타당한 답을 주지 못한다면, 그들의 말을 믿기 전에 신중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빠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진화 생물학자로 옥스퍼드 대학의 동물학과 강사이며, 뉴칼리지의 연구원이다. 그는 1960년대에 노벨상을 수상한 동물 행동학자인 니코 틴버겐의 연구생으로 연구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연구는 행동의 진화 과정에 집중되었다. 1976년에 오늘날 사회 생물학 혁명이라 불리는 흐름을 집약한 첫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TheSelfishGene)>>가 출간된 이래, 그는 독창적인 개념과 명료한 주장, 화려한 문체로 자신의 주장을 풀어 나가는 뛰어난 능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뒤이은 <<확장된 표현형(TheExtendedPhenotype)>>과 여러 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유전자가 선택의 단위라는 개념을 폭넓게 확산시켰으며, 그 개념을 숙주와 기생충 사이의 관계, 협동의 진화와 같은 여러 주제에 적용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그 후에 발간된 <<눈먼 시계공(TheTheBlindWatchmaker)>> 역시 널리 읽히고 수많은 저서에 인용되는 등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지적 업적의 하나로 꼽힌다. 그밖의 저서로는 <<에덴 밖의 강(River Out of Eden)>>이 있다.

과학은 모든 의문에 답할 수 있는가? (존 브록만·카틴카 메트슨 엮음 김동광 옮김 두산동아 간) 25 -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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