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명문-소설몇편

마지막으로 [b]

다음은 조선일보 기자클럽 [이위재의 글읽기와 삶일기]새 창으로 열기 중, [시대의명문:소설몇편]새 창으로 열기의 글입니다.
名文은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마치 시를 읽듯, 구절과 단어를 곰씹으면서. 사실 핑핑 정보가 돌아가는 인터넷 상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 추천하는 명문 小說은 월간 朝鮮에서 2000년 7월호에 [한국의 名文]이라 해서 별책부록을 만든 내용 중 일부입니다.

당시 월간 조선은 명문을 뽑으면서 조지훈, 서정주, 함석헌, 김구, 윤동주, 박종홍, 이효석, 이상, 피천득, 최남선. 이효석 등이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높은 추천을 받았다고 적었습니다.

중고 교과서에도 실린 [기미독립선언서]나 [나의 소원], [국민교육헌장] 등도 명문 반열에 올랐는데, 좋은 노래도 너무 많이 들으면 질리듯 이 글들은 교과서에 실려 너무 눈에 박힌 탓에 선뜻 명문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웠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이 되짚어보니 [과연 ~]이란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명문] 별책부록에는 소설 몇 편을 명문으로 추천합니다. 그리고 소설 내용 중 유려한 문장 일부를 옮겨놓았습니다. 이를 소개해보겠습니다.


김승옥 [무진기행(霧津紀行)]
- 1941년생. 소설가. 서울대 불문과 졸업.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현 세종대 교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 처럼 안개가 무진을 뺑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는 산 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있었다. 안개 는 마치 이승에 恨(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女鬼(여귀)가 뿜어 내놓 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 
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 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
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 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
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 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이문열 [금시조(金翅鳥)]
- 1948년생. 경북 영양출생. 서울대 국어과 수학. 1979년 데뷔. 소설 「사람의 아들」 「詩人」 「변경」 등 다수.

금시조가 날고 있었다. 수십 리에 뻗치는 거대한 금빛 날개를 퍼득이며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개짓에는 
마군(魔軍)을 쫓고 사악한 용을 움키려는 사나움과 세참의 기세가 없었다. 보다 밝고 아름다운 세계를 향한 화려한 비상의 자
세일 뿐이었다. 무어라 이름할 수 없는 거룩함의 얼굴에서는 여의주가 찬연히 빛나고 있었고, 입에서는 화염과도 같은 붉은 꽃
잎들이 뿜어져 나와 아름다운 구름처럼 푸른 바다 위를 떠돌았다. … 갑자기 금시조가 두둥실 솟아오른다. 세찬 바람이 일며 
그의 몸이 한 곳으로 쏠려 깃털 한올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점점 손에서 힘이 빠진다. 아아… 깨고 보니 꿈이었다.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硏究)]
- 소설가. 전북 장수 출생. 서라벌 예대 졸업. 1975년 캐나다 이민. 현 민족 문학작가회의 자문위원.

…나는 어찌하여, 햇볕만 먹고도 토실거리는 과육이 못 되고, 이슬만 먹고도 노래만 잘 뽑는 귀뚜라미는 못 되고, 풀잎만 먹고
도 근력만 좋은 당나귀는 못 되고, 바람만 쐬이고도 혈색이 좋은 꽃송이는 못 되고, 거품만 먹고도 굳어만지는 진주는 못 되
고, 凋落(조락)만 먹고도 생성의 젖이 되는 겨울은 못 되고, 눈물만 먹고도 살이 찌는 눈 밑 사마귀는 못 되고, 수풀 그늘만 
먹고도 밝기만 밝은 달은 못 되고, 비계없는 신앙만 먹고도 만년 비대해져가는 神(신)은 못 되고, 똥만 먹고도 피둥대는 구더
기는 못 되고, 세월만 먹고도 성성이는 백송은 못 되고, 각혈만 받아서도 곱기만 한 진달래는 못 되고, 쇠를 먹고도 이만 성
한 녹은 못 되고, 가시만 덮고도 후꾼해하는 장미꽃은 못 되고, 때에 덮여서야 맑아지는 골동품은 못 되고, 나는 어찌 하여 그
렇게는 못 되고,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유정 중에서 영장이라고 내 자부했던 사람, 허나 어찌하여 나는 흙 속의 습
기 속으로만 파고 드는 지렁이도 흘리지 않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42년생. 소설가. 서라벌 예대 문창과 졸업.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 작품 「뫼비우스의 띠」 등 다수. 현 <당대비평> 주간.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사랑에 기대를 걸었었다. 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은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
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였다. 그 세계의 지배 계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지 않을 것
이라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 그들도 알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친 부의 축적을 사랑의 상실로 공인하고 사랑을 갖지 않는 
사람네 집에 내리는 햇빛을 가려 버리고, 바람도 막아 버리고 전깃줄도 잘라 버리고, 수도선도 끊어 버린다. 그런 집 뜰에서
는 꽃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날아 들어갈 벌도 없다. 나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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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3-21 11:31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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