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죽음과수난

마지막으로 [b]

[스노우 씨의 거주지 : 예수는 왜 죽었는가 (1)]새 창으로 열기
유다교는 경전의 종교다. 그 중에서도 율법을 기록한 토라가 유다교 경전의 핵심이다. 하지만 토라의 율법이 아무리 세세하다고 해도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문제는 더 복잡하다. 그리고 율법이라는게, 본문비평 연구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모세가 단번에 받아쓴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문서인만큼 상충되는 점과 모순점도 많을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율법이 실생활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바리사이는 평신도로서, 많은 경우 생업에 종사하면서 동시에 이 율법 연구와 해석을 전문적으로 하는 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율법의 엄수를 핵심으로 삼고 그에 따라 살았지만, 결코 경직된 종교 집단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바리사이 학파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엄격한 법 규정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민중들에게는 보다 실생활에서 쉽게 지킬 수 있는 법 규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이들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큰 존경을 받는 집단이었다.
결국 예수와 바리사이 파의 의견 대립은 안식일을 비롯한 율법의 디테일한 해석의 차이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러한 논쟁은 1세기를 포함한 유다교 역사에서 수도 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논쟁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진 경우는 찾아보기 드물다. 권력층과 거리가 먼 집단인 바리사이와 권력층에 속하는 헤로데 당이 같이 모의를 꾸몄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루카 복음서를 보면 정작 헤로데 왕이 예수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전해주어 예수를 피신시킨 이들이 바리사이 파였다.(루카 13:31-33) 게다가 바리사이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모의를 꾸몄다지만 정작 그 뒤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려 했을때 예수는 재빨리 피신한다. 이는 '바리사이의 모의'는 역사적 실재라기보다는 예수 사후 교회가 경험한 일들이 복음서에 투영된 것임을 암시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간단하다. 예수는 구약의 법을 준수했다. 다만 그 해석에 있어서 당대의 다른 많은 종교인들과 달랐을 뿐이다(물론 그들도 서로서로 달랐다). 사실 이 율법에 있어서 통일된 해석은 거의 없었으며, 당시 유다교는 해석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는 종교도 아니었다.
[스노우 씨의 거주지 : 예수는 왜 죽었는가 (2)]새 창으로 열기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상징적인 행위'였다. 성전 상인들의 활동 없이는 성전의 기본적인 업무인 전례가 진행될수가 없다. 최근 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예수는 성전 자체나 성전중심 종교에 반대했다기보다는, 성전의 기능 정지, 더 나아가 성전의 파괴를 상징적으로 예언한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지금 성전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상징적 행위였을뿐, 대대적인 난동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전에는 유다인 경비대도 있고 바로 인근에 로마군 주둔 병력도 있다. 이들의 주의를 끌만한 소요였다면 바로 진압당했을 것이다.)
또한 예수의 '하느님 나라', 혹은 '하늘 나라'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내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복음서에서 '나라', '왕국'등으로 번역되는 원어 표현은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다. 이는 공간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왕권, 왕의 통치를 가리키는 용어다. '하느님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현세적인 개념이며, 하느님의 정의로운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 나타난 대로 예수는 인간이 죽어서 그 나라에 들어가는게 아니라, 그 나라가 바로 이 지상에 이루어질 것을 선언하였던 것이다. '종말론적 예언자'로서 예수는 이러한 점을 의미한다. 요즘 말하는 것처럼 곧 세상 종말이 온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수가 성전에서 행한 일은, 특별히 상인 몇몇이 부패했거나 성전 전례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라, 성전이 (자신의 원래 본분인)이러한 일들을 망각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마치 예레미야가 예언했듯이, 성전 자체가 파괴될 것이라는 '종말론적' 예언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기득권층이 불안을 느끼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여기에 대해서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다. 대략 AD 60여년 경에 또다른 동명이인인 예수라는 인물이 살았다. 재미있게도,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성전의 파괴를 예언한것까지 나자렛 예수와 비슷하다. 그리고 우리의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 양반도 유다 지도자들에게 체포되어 심문당한뒤 로마에 넘겨졌다. 그리고 로마쪽의 심문 결과는 "뭐야 미친놈이네ㅋ" 정도였다. 결국 이 양반은 좀 얻어맞고 풀려났다.

이 사건이 말해주는 것은, 로마 당국의 눈에 나자렛 예수는 이 사람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보였다는 사실이다. 30년뒤 인물인 예수는 심문 과정에서 횡설수설했지만, 나자렛 예수는 일관되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분명한 정치적 함의를 담고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많은 수가 아니더라도 나자렛 예수에게는 추종자들이 있었다. 게다가 시기는 유다인이 '압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 기간. 이쯤 되면 로마 당국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게 당연하다.

결국, 예수는 신학적인 논쟁때문이 아니라, 군중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실질적인 가능성 때문에 그런 소요를 막고 질서를 유지하는게 주 임무인 유다인 대사제에게 체포당했고, 로마 당국에 의해 위험한 정치범으로 판단되어 처형되었던 것이라고 보는게 타당하게 여겨진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머리 위에 내걸렸던 <유다인의 왕>이라는 팻말은, 로마가 아닌 다른 존재나 질서에 의한 '바실레이아'를 주장하는 이는 이런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직접적인 경고였다.

[스노우 씨의 거주지 : 역사적 예수의 수난 (1)]새 창으로 열기
구약의 예언자들은 위와 같이 거친 어조로 성전을 공격했지만, 결코 성전 전례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입장은 전례를 드리기 이전에 사회에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게 먼저라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성전은 파괴될 것이라고 이들은 예언하였다. 예수의 입장도 이들과 같았을 것이다. 성전의 기능에 꼭 필요한 상인들을 쫓아내는 행위는 성전의 기능 정지, 더 나아가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예수가 성전에서 상인들과 충돌한 것은, 그들이 부패한 종교계와 결탁했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 시대의 유다 종교와 사제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연구가 축적되어있지만, 그들이 크게 부패했거나 타락했다는 증거는 딱히 없다. 그리고 환전상과 제물을 파는 상인들은 당시 성전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이들이 있어야지만 성전의 전례가 진행될 수 있었고, 예수는 이 전례에 반대한 적이 없다. 오히려 헬렌 K. 본드(Helen K. Bond)의 주장대로,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예수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을 발생시키는 사회 자체에 일관적으로 비판을 가했다. 성전에서의 행위는 이 비판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이 점도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과 비슷한 부분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고 성전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이들의 입장과 급진적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주장하며 지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외친 예수의 주장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파스카 축제 기간에 예수의 주장과 행동은 이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을 것이다. 물론, 예수에 대한 전승은 그가 비폭력을 견지했으며, 군사적 메시아의 역할을 명백히 거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사제들 입장에서는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노우 씨의 거주지 : 역사적 예수의 수난 (2)]새 창으로 열기
많은 경우에는 마르코 복음의 전승이 요한 복음보다 더 역사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됨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만찬의 날짜 설정처럼 많은 학자들은 심문 내러티브에 있어서 마르코 복음보다 요한 복음쪽을 더 선호한다. 버메스의 지적대로, 당시 유다교의 재판은 상당히 엄정한 형식에 따라 이루어졌다. 사형죄를 논할만큼 중대한 사건이 한밤중에 대충 이루어진다는건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1년 중 가장 사제들이 바쁠 이 시기에, 성전 업무를 제쳐놓고 사제들을 모조리 소집해서 정식 재판을 열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미 예수의 운명은 합의가 되어있었고, 체포해서 아주 간단한 심문만 한 뒤에 곧장 빌라도에게 보냈다는 편이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첫번째 질문, '하느님의 아들' 질문 때문에 예수가 신성모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많이들 생각하지만, 사실 이건 정치적 질문이고, 또한 야웨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게 아니라면 신성모독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헬렌 본드의 주장대로, 예수의 사형 선고 죄목은 '거짓 예언자로서 이스라엘을 잘못 인도한 죄'였을 것이다. 이건 신명기 규정에 따라 사형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을 메시아라고 선언하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신성모독도 죽을 죄도 아니었다.(훗날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바르 코크바와 같은 봉기 지도자들도 똑같이 했다) 그런데 그걸 입증하지 못한다면, 그건 거짓 예언자라는 뜻이었고 그건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그리고 군중들이 예수를 죽이라고 빌라도를 압박하는 장면도 과장이 심하다. 일단 빌라도는 수틀리면 얼마든지 유다인들을 학살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최고 권력자를 한낱 점령지 군중들이 협박할 수 있을까? 제임스 던도, 성서의 빌라도 묘사는 예수 처형의 책임을 로마 당국에서 유다인 권력자들로 옮기려는 초기 교회의 정치적 동기에서 나왔다고 단언하고 있다.

빌라도의 재판도 예수가 '왕 참칭자'인자 여부와 집중되었을 것이다. 아마 예수가 거짓 메시아이며, 군중들을 선동할 위험이 있다는 대사제의 의견도 첨부되었을 것이다. 빌라도와 대사제 카야파의 원만한 관계와, 빌라도 자신의 성향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는 것 자체가 예수의 죽음의 궁극적 죽음이 누구의 책임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오로지 로마 제국만이 십자가형을 내릴 수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의 머리 위에는 티툴루스(titulus)라고 불리는 죄명패가 부착된다. 복음서는 예수의 명패가 '유다인의 임금 나자렛 예수'였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역사적으로 사실이었을 것이다. '유다인의 임금'은 이후 그리스도교 교회가 예수를 해석하거나 부른 칭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것은 헤로데 대왕의 칭호였으며, 정치적인 칭호였다. 이 죄명패는 로마가 예수를 죽인 명확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로마의 통치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한 왕권을 주장한 이는 이런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 하나,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만은 실제로 예수가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고 있다.

일단,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성서에서 이 부분은 아람어가 직접 인용된 경우다.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하느님을 부를때 사용한 '아빠(abba)'나 '아멘' 같은 표현처럼, 예수가 직접 사용한 언어인 아람어로 기록된 단어들은 예수 자신에게까지 소급될수 있는 오랜 전통인 경우가 많다. 둘째로, 시편 비탄의 노래의 일부인 이 표현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표현이어서, 누가 일부러 지어냈을 가능성은 상상하기가 힘들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로 시작되는 시편 22편은 고통받는 의인의 노래다. 이 시는 전반적으로 비탄의 노래이지만, 결국 의인이 하느님에 의해 신원되며 마무리된다. 던이 지적하듯이, 제 2성전기 유다교에서는 의인이 비록 고통받고 죽더라도 죽음을 넘어 궁극적으로 신원되리라는 믿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현세에만 집중하는 전통적인 유다교와는 사뭇 다른 이런 믿음은 결국 부활신앙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주로 지혜서나 마카베오서 같은 제2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니엘서의 환시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고, 시편의 몇몇 부분도 이러한 부분에서 해석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도 그러한 맥락에서 죽어가며 시편의 이 구절을 읊었을 가능성이 높다. 던은 더 나아가, 이런 신원의 희망의 한 표현으로 예수가 부활의 희망을 품었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다만 실제로 그랬다면, 당대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부활 신앙은 다른 의인들이 살아날때, 즉 마지막 심판의 날에 최종적인 부활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성전에서의 사건-최후의 만찬-체포와 심문-처형과 매장이라는 전반적인 아웃라인에는 상당한 의견의 일치가 있으나, 세부적인 디테일에 있어서는 여러 연구자들의 의견이 상당히 갈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여기에서 다수의 학자들이 지지하는 설은 있어도, 확고한 정설은 없다.

See also 진짜예수를만나러갑시다
새 글 쓰기(클릭) - 링크는 [http://nyxity.com/wiki/wiki.pl 바벨의 도서관] 형식입니다.

성경분류 | 역사분류
트랙백 주고받기

마지막 편집일: 2016-3-29 5:19 pm (변경사항 [d])
406 hits | 변경내역 보기 [h] | 이 페이지를 수정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