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캐롤라이브톡

마지막으로 [b]

1. 이동진의 라이브톡 '캐롤'
2. 라이브톡 반응
2.1. 패러디
3. 해명글 이후 반응
3.1. 독자들의 호모포빅한 발언
4. 기타
5. See a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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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1. 이동진의 라이브톡 '캐롤'

[CGV아트하우스 올해 첫 이동진의 라이브톡 '캐롤']새 창으로 열기

#캐롤 논란이 된 이동진 평론가의 라이브톡 발언 상세 녹취록 https://t.co/uJuuDPzAy5 pic.twitter.com/enqHY0kCDL

— 익스트림무비 (@extmcommunity) January 30, 2016

[영화수다 - 이동진 캐롤 라이브톡을 어제 보고왔는데 그 논란되는 부분이..]새 창으로 열기

제가 느끼기엔, 테레즈한테는 동성애적인 사랑이 필요한게 아니고 캐롤이 필요한 겁니다. 근데 하필이면 캐롤이 여자였을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상대방이 여자라는게 핵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성애적인 정체성에서 내가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는 것이 그사람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될 수 있는거잖아요. 최근에 개봉을 앞두고있는 대니쉬걸같은 바로 그 영화가 그런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최소한 소설은 몰라도 영화는 아닌 것 같고, 적어도 이영화에서 캐롤이 아닌 테레즈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고 이 경험이 너무 신기하고 아름답고, 너무 자기 인생을 다 걸면서까지 달려들고 싶은데 또 그 사람이 그냥 여자인거에요. 그러니가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기 보다는 두사람의 사랑이야기인데 두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여자다, 이 두가지는 차이가 있겠죠?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추측이 되죠.
[제발 그러지 좀 말자 | '캐롤'에 대한 두 가지 지적 | 듀나]새 창으로 열기
무엇보다 이것은 쓸데없는 해석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여자(또는 남자)더라"가 먹힌다면 그건 그냥 주인공이 양성애자라는 말이다. 재미없게 들리지만 그렇다. 양성애자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캐롤]에선 테레즈가 양성애자라고 이야기가 더 깊어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소설과 영화에서는 모두 반대되는 단서들만 제공된다. 가장 노골적인 알리바이는 테레즈의 남자친구 리처드와 그냥 친구 남자인 대니이다. 동성애자 각본가, 동성애자 원작자, 동성애자 감독이 모여서 대놓고 "얘는 남자에게 그런 감정을 못 느껴!!!"라고 외치고 있는데, 굳이 불필요한 '양성애' 해석을 내놓을 필요가 있을까?
[캐롤]이 보편적인 로맨스인 건 맞다. 동성애건 이성애건, 훌륭한 로맨스 작품에는 모두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있다. 우린 결국 같은 호모 사피엔스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두 주인공에게서 1950년대 미국에서 살았던 여성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실을 지우고 '인간과 인간'만 남겨놓는 건 [안나 카레니나]에서 19세기, 제정 러시아, 이성애, 여성을 모두 지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제발 그러지 좀 말자.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테레즈의 회상으로 시작되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는 데이빗 린/노엘 카워드의 고전 [밀회]의 도입부를 그대로 훔쳐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정은 [밀회]보다 [캐롤]에 더 그럴싸하게 들어맞아요. 유부녀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걸 보면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미심쩍게 생각하겠지만 여자 둘이 같이 있는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다르잖아요. [캐롤]은 사회의 눈으로 보았을 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랑의 이야기를 가장 전통적인 멜로드라마의 틀 안에서 그려내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오래된 멜로드라마의 전통은 세례요한처럼 지난 60여년 동안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쌓은 새로운 전통에 권위를 부여하죠. '금지된' 사랑에 대한 '도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로맨스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캐롤]은 기본적으로 내성적인 영화이고, 어떤 주제보다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 감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롱기누스가 인용한 사포의 시를 생각해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영화에서 테레즈의 감정은 철저하게 감각화되어 에드워드 라크먼이 슈퍼 16밀리로 찍은 화면에 그대로 새겨집니다. 기본적으로 더글러스 서크 패스티시였던 [파 프롬 헤븐]과는 다른 영화입니다. 라크먼과 헤인즈는 이 영화를 위해 주로 4,50년대에 활동했던 여성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했다고요. 남성 오퇴르의 영화적 스타일을 따르는 대신 여성 사진작가의 시선을 모방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지향점을 알 수 있지요. 어떤 때는 주인공에 완전히 동화되었다가 어떤 때는 댄스 파트너처럼 살짝 뒤로 물러나 뒤를 따르는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은 거의 두 주연배우가 보여주는 연기의 연장선처럼 보입니다.

[씨네21 : 씨네21 : 대한민국 대표 영화전문매체 - 여기 사랑이 그녀가 우리가 있다]새 창으로 열기

. 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감정의 파도들이 소위 말하는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이다. 다만 여기서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형태에 집중할지, 둘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를 부각할지에 따라 영화의 색깔이 확연히 바뀐다. <캐롤>은 당연히 전자를 따르고 있다. 이 영화에서 퀴어 요소는 지금에 와서는 꽤 흥미로운 제약 중 하나에 불과하다.
테레즈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에게 옛 연인 애비는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니?” 캐롤은 답한다. “몰라, 언제는 알고 그렇게 했나?” 이 짧은 문답에 슬쩍 드러나는 진심. 설레는 순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순간들. 우리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을 이미 알고 있다. 때론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구멍이 메워진다. 토드 헤인즈는 그렇게 멜로드라마의 본질로 돌아가 사랑에 대한 완벽한 앙상블을 완성시켰다.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아마도 올해 최고의 엔딩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엔딩으로 마침표를 찍고 나면, 비로소 이 영화는 완벽해진다.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3014새 창으로 열기 씨네21 : 씨네21 : 대한민국 대표 영화전문매체 - 동성애를 다룬, 하지만 비극적인 엔딩이 아닌]
<캐롤>이 혁명적인 책이었던 이유는 동성애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에는 동성애를 다룬 펄프 소설이 꽤 흔한 편이었다) 동성애를 다루면서도 두 주인공이 비극적인 운명을 맞지 않는 최초의, 또는 거의 최초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캐롤>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은 아니지만 거의 그 근처에서 끝나며 독자들은 자신들이 감정이입해왔던 두 주인공이 앞으로 행복하게 맺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이스미스는 83년에 쓴 후기에서, 53년 이 소설의 페이퍼북이 나왔을 때 독자들이 자신에게 보낸 수많은 감사 편지들을 회상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성애 소재 주류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한 게 80년대부터라는 걸 생각해보라. 당시 <캐롤>은 거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었다.
<밀회>의 차용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밀회>의 도입부는 <캐롤>과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고전’이라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다. <캐롤>은 60여년 전에 나와 고전이 된 소설을 각색한 현대의 영화이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가 원작에 충실하려 한다고 해도 과거의 고전을 바라보는 현대의 관점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전통적인 멜로드라마 고전인 <밀회>의 인용을 통해 헤인즈와 나지는 한때 혁명적이었던 원작이 지금은 과거를 무대로 한 고풍스럽고 보편적인 멜로드라마가 되었으며 그 변화 자체가 성공적 혁명의 결과임을 선언한다. 미국이 동성혼을 법제화한 2016년 관객의 관점에서 보면 이 의미는 더 분명해 보인다.
헤인즈와 나지가 2015년에 만든 <캐롤>은 소설 <캐롤>뿐만 아니라 이후에 <캐롤>의 영향을 받고 나온 수많은 소설, 영화들로 이루어진 반세기가 넘는 역사 자체를 품고 있다. 이는 과거의 혁명을 기억하고 존경을 표시하는 최선의 방식이다.

[edit]2. 라이브톡 반응

"테레즈는 그러니까 레즈비언이라기 보다는 그 캐롤을 사랑한 것인데 그 캐롤이 하필이면 여자였던 것이죠" -이동진

콜라도 팝콘도 들고 있지 않았지만 스크린에 콜라 던질 뻔했다

— [캐롤스포]실크해트 (@Silkhat_Dandy) January 29, 2016

제발 퀴어영화 봐놓고 "게이의 이야기가 아닌 한 인간에 대한 영화였다" 같은 소리 그만하자 구리다

— 신시아 베리 (@sekdosibal) January 29, 2016

퀴어영화라기엔|~~~~운운하는 좀만이새끼들 제발 게으름 극복점 하고 퀴어영화 다른 해외 비평 리뷰좀 찾아보고 그래라 아 씨발 도대체 님들의 좃만한 새계로 영화 보기 재미잇냐

— 리타임(괜찮아요???) (@cloud7tony) January 29, 2016

이동진 <캐롤> 라이브톡 논란과 더불어 읽을 수 있는, 영화학자 Patricia White의 글: https://t.co/7osQk2rQjm

— L'entre_images (@Entre_images) January 30, 2016

링크한 White의 글 서두에서 지적하듯, <캐롤>과 같은 퀴어 시네마에서 퀴어성(queerness)를 봉쇄하고 이를 보편성(universality)으로 동화시키는 입장은 이동진뿐 아니라, 서구의 리버럴-헤테로섹슈얼 저널리즘 비평가들에게도 나타난다

— L'entre_images (@Entre_images) January 30, 2016

따라서 그 발언 자체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에 속한다. 문제는 이동진의 발언이 자리하는 맥락들에 있다고 본다. 맥락들 1. 글쓰기가 아니라 '라이브톡'에서의 발언이 영화에 대한 비평적, 담론적 실천의 지배적 대상이라는 점.

— L'entre_images (@Entre_images) January 30, 2016

즉 한쪽에는 평론을 대체해버린 '라이브톡'(넓게 보면 그 많은 씨네토크를 포함한 이른바 '톡문화'), 다른 한쪽에는 이 발언을 끌어당기고 전유하는 '트위팅'이 있는 셈인데, 이 자리에서 저널리즘 평론/평론가의 전통적 장은 공동화된 것처럼 보인다.

— L'entre_images (@Entre_images) January 30, 2016

[캐롤] 번역자는 이 이야기를 이성애로 '번역'하고 있고, 그를 통해 캐롤을 한국식 헤테로 남성으로 만들어 놨어요. 대사만 보면 다른 생각이 안 나네.

— djuna (@djuna01) February 1, 2016

근데 심지어 이건 오독이기까지 함. 퀴어 미디어 중에서 낡은 얘기지만 "그래 네가 여자라 좋은게 아니였어 너라서 좋은거야;ㅁ; 이 혼란스러운 마음 그렇게 정의할래;ㅁ; (비극적인 배경음)" 이런거 있는데 캐롤은 안그럼.. 여자라 좋아하는거 맞는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그러니까 캐롤은 이미 이동진도 말했듯 자기 정체성 알고 있고 테레즈는 캐롤 만나기 전까진 특별히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영화중간에 아 나 여자 좋아하는구나. 나 남자한테 성적으로 안끌리는구나 되게 자연스럽게 납득하고 넘어감.. 본인은 흔들리지 않음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이 모든 이야기가 레즈비언이란 개념의 정체화가 지금보다 불분명했던 시기인 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바로 그 시대에 자연스럽게 자기 애정의 방향을 깨닫고 서로 좋아한단 확신을 갖는 여자들 이야기라 2015년스럽고 감동적인 것이죠.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그러니까 녹취록 다 읽고 뭔가 이 사람이 하려다가 만 이야기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캐롤이 와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떠나보아요 'ㅅ' 여자인데 캐롤에게 끌리는 이 감정 대체 무엇일까... 캐롤은 여자인데... 이런 영화는 아님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여자가 여자 좋아하는거 너무 당연한 거고... 이런 식으로 그냥 넘어간다. 그거 막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이러지 않음. 그렇다고 외부의 시선이나 편견이 사라진 것은 아닌데 그것은 오히려 테레즈보다는 캐롤쪽에 더 강하게 오는것으로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그니까 예고편에도 나왔지만 캐롤이 그러잖아. You seek resolution because you're young. 이 관계를 확정시키고 싶었던 것은 테레즈임. 마지막에 가서야 '아 내가 사실 사랑한 것은 캐롤이었어' 이런 여자애가 할 행동이 아님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나는 테레즈의 마지막 선택이 좋기는 했다고 생각한다. 테레즈는 계속해서 이 관계의 주도권이 나에게도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함. 그게 더 큰 문제고 아 여자랑 하네 나?는 작은 고민이고 관계는 처음부터 자연스러웠고 빨리 해결되고 끝나버림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테레즈의 마지막 선택도 그런거죠. 테레즈가 자기 손으로 캐롤을 선택한것은 맞고 그건 테레즈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선택이어서 좋았다. 근데 테레즈가 캐롤과 함꼐 신나는 연애열차를 타며 영화내내 고민한 것이 고작 '여자라서 좋아하는걸까 나?' 아냐 아니라고

— 한규동 (@Han_Kyudong) January 31, 2016

왜 이게 호모포빅한 발언인지는 제대로 영화학 공부한 사람이라면 퀴어이론 배우니 모를리 없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내가 사랑한게 넌데 네가 남자/여자였을뿐" 이라고 영어로된 평론 쓰면 호모포빅하다고 까임 https://t.co/B0QvSvzhs4

— kim (@therealkim__) January 31, 2016

케이트나 루니나 캐롤이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고 사랑 이야기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전제가 지금 이미 영어권 서양권에서는 단순 동성애에 대한 논의뿐 아니라 아예 결혼에 대한 논의까지 끝난 상태여서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는 상태라는 거였다.

— Blerg (@blerg_osphere) January 29, 2016

이동진 평의 진위여부를 떠나, '캐롤이 남자였어도 사랑했을 것이다' 라든지 '여자가 아닌 사람을 사랑한 것이다' 라는 말이 동성애를 다루는 작품 자체를 부정하는 말임은 반드시 알아야 할 듯.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것은 지극히 헤레로 적인.

— otonacool (@otonacool) January 30, 2016

오늘 '이동진 사태(?)'를 보고 생각난 글. [신형철의 스토리-텔링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한 단락. 그러니까 "여장남자"나 "레즈비언"은 폭력적이므로 길게 풀어놓은 뜻으로 말해야 한다는 소린데 pic.twitter.com/vrQ8NNyGxh

— 이석 (@leslie_seok) January 30, 2016

캐롤을 보았다. 서로를 찾는 수많은 시선들, 눈빛들, 의심없는 응시.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확신하는 연인들의 이야기였다. 전반부에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후반부에는 눈물이 났고, 마지막 시선은, 결말을 알면서도 숨을 죽였다.

— 안드로지니 (@Androgynie_) January 31, 2016

"하필 여자였다"는 평은 솔직히 놀랍다. 어떻게 그 장면을 그렇게 해석 할 수 있는지. 캐롤과 테레즈처럼 확신에 찬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 안드로지니 (@Androgynie_) January 31, 2016

영화를 직접 보니 "하필 여자였다"는 해석은 그저 비겁하고 같잖은 게 아니라 모욕적이었다. 이 작품과 관련된 모든 논란들-루니 마라의 조연상 노미네이트, 오스카 작품상 후보 제외-모두 모욕적이다.

— 안드로지니 (@Androgynie_) January 31, 2016

캐롤과 테레즈는 분명히 행복할 것이다. 언젠가 서로를 떠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더이상 자신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므로.

— 안드로지니 (@Androgynie_) January 31, 2016

'캐롤' 관련 논의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의견은, 설령 헤테로로 일생을 살아오고 우연히 사랑한 대상이 동성이라 해도, 그 우연적 일탈도 성정체성의 한 경향으로 봐야 한다는 것. 영화를 안 본 터라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이건 매우 중요한 지적 같다.

— 위근우 (@guevara_99) February 1, 2016

@guevara_99 안녕하세요 위기자님. 가장 안일한 입장이 "난 진짜 호모포빅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그 사람이라 좋은 건데 이게 인간애지 뭐야?" 라는 의견이었어요. 그냥 바이섹슈얼이란 말과 같은데 탈성애 하려 하죠

— 큰북 (@lenvisibleshine) February 1, 2016

@lenvisibleshine 확고한 구획짓기(를 통한 배제)의 메커니즘일 수도 있겠네요.

— 위근우 (@guevara_99) February 1, 2016

@guevara_99 맞아요. 인간 대 인간이라는 보편 서사로 품으려는 듯한 태도지만 사실 성애를 탈락시키고 그냥 인류애로 퉁치려는 거죠. 동성애가 아니고 그냥 운명론이지~라며 배제하고요. 이성애 로맨틱무비에 그 사람이 하필 이성이었다.라곤 하지 않죠

— 큰북 (@lenvisibleshine) February 1, 2016

"이성애인데도 강렬한 사랑" "순문학이라기엔 너무나 깊이있는" "남자인데 예의바른" -> 이럼 칭찬이겠냐고요...

— 오나선 (@lakinan) January 30, 2016

[캐롤] 이동진이 어떤 얘기를 하려했는지는 알겠다. 캐롤이 이미 자기 성정체성이 확고한 사람인 반면, 테레즈는 캐롤 보고 덕통사고 당하듯이 자기 자신에 대해 눈 뜨는 입장인데 그걸 이동진은 '하필이면 캐롤이라서' 빠진다고 오해한 모양.

— 힘드린혁 (@oIHLo) February 4, 2016

<캐롤> 보는 내내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것은 저렇게도 고되구나 블라블라' 하는 생각 1초도 안 했어요. 그렇게 그릴 여지가 충분히 있는 서사인데 일부러 자제한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굉장히 좋아요.

— p_book (@p_book) February 4, 2016

'난 여자인데? 남자를 좋아해야 하는거 아닌가?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나? 아니야 내가 같은 여자를 좋아할 리 없어!' <- 이거 너무 클리셰인... 50년대 사람인 테레즈도 안그랬는데 2016년에 살고있는 우리가 그런걸 기대/요구하면 안되죠.

— p_book (@p_book) February 5, 2016

[edit]2.1. 패러디

"동성애자가 아니라 그냥 사랑한 사람이 동성이었을 뿐..." 헉 그렇다면 나도 이성애자가 아니라 그냥 어쩌다보니 여태껏 다 우연하게도 이성만을 사랑했던 것인가.

— 쓺(2P) (@ssuerm) January 29, 2016

킬 빌: 딱히 폭력적인 영화는 아니고 다만 빌을 죽이려다 보니 어쩌다가 폭력적이 됐을 뿐인 영화.

— 쓺(2P) (@ssuerm) January 29, 2016

"E.T.는 그러니까 SF라기 보다는 그 우정을 나눈 것인데 그게 하필이면 외계인이었던 것이죠" pic.twitter.com/HDs7lZHemd

— 남혐에 뿔테로 맞서지 맙시다 (@ssuerm) January 29, 2016

매드맥스 퓨리로드: SF액션의 외양을 했지만, 본질적으론 결국 인간의 이야기...

— 남혐에 뿔테로 맞서지 맙시다 (@ssuerm) January 29, 2016

카사블랑카: 어쩌다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이성 이었던 영화ㅜ이다...

— 남혐에 뿔테로 맞서지 맙시다 (@ssuerm) January 29, 2016

이동진이 싫은 것이 아니라 빨간 뿔테가 싫었던 것인데 하필 그가 빨간 뿔테를 썼을 뿐. 아 물론 제 생각입니닿

— 쓺(2P) (@ssuerm) January 30, 2016

"박정구는 그러니까 살인자라기 보다는 스패너를 휘두르고 싶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효민이 머리에 닿았던 것이죠" pic.twitter.com/hrJj8D7Irv

— GOO❗❗❗ (@yesorsay) January 29, 2016

"닌타마들은 그러니까 호모라기보다는 같이 지내고 배우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사랑이었던 것이죠" pic.twitter.com/KxrdKF63aF

— 완댜 (@ss_wandya) January 29, 2016

"그러니까 사울의 아들은 홀로코스트 영화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고 그게 하필이면 나치독일이 배경이었다는 거죠." pic.twitter.com/buOpi1fDAQ

— 쓺(2P) (@ssuerm) January 30, 2016

"한니발은 그러니까 식인종이라기 보다는 고기를 사랑한 것인데 그게 하필이면 인육이었던 것이죠" pic.twitter.com/xLMYBEwBaR

— 쓺(2P) (@ssuerm) January 29, 2016

"브루스 웨인은 그러니까 히어로라기 보다는 부모님을 사랑한 것인데 그게 하필이면 조커가 죽였던 것이죠" pic.twitter.com/xjxw7QqKEK

— 쓺(2P) (@ssuerm) January 29, 2016

"앤드류는 그러니까 딱히 드럼이 치고 싶다기 보다는 예술을 사랑한 것인데 그게 하필이면 위플래쉬였던 것이죠" pic.twitter.com/G0YViJP8mt

— 쓺(2P) (@ssuerm) January 29, 2016

@too_oscary @blerg_osphere
"을럭은 그러니까 yve라기보다는 그 생명체를 사랑한 것인데 그 생명체가 하필이면 yve였던 것이죠" - 뿔테 버무리, SNS의 역사가 여덕에게 내린 날벼락

— yve (@fe_yver) January 29, 2016

"제시는 그러니까 수간성애자라기 보다는 윌리를 사랑한 것인데 그게 하필이면 범고래였던 것이죠" pic.twitter.com/DkGXhOmIBr

— 쓺(2P) (@ssuerm) January 29, 2016

@N91211 이건 장르소설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장르를 다룬 문학일 뿐이죠(웃음)

— 글쓰는기계 (@timour0419) January 30, 2016

"샘은 그러니까 처음에 사랑이라기보다는 민강욱, 그러니까 사장님에 대한 다양한 감정들, 이를테면 존경과 집착 따위를 겪었는데 그것이 결국. 마침내. 하필이면 사랑이 되어버린 것이죠." pic.twitter.com/lo5eLa9w5n

— 궤도‎ (@in_play_) February 9, 2016

@yeonsungjinn "쿠로오는 그러니까 사와무라와 처음 손을 잡았을 때, 예사롭지 않다는 이미지만 받았을 뿐이지만 그 이후에 여러 감정들을 겪고, 마침내 인간 대 인간으로써의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이죠" pic.twitter.com/z2um5k6Cjd

— 궤도‎ (@in_play_) February 9, 2016

[edit]3. 해명글 이후 반응

보편적인 로맨스로서 [캐롤]의 의미는, 이 영화가 그 특수성을 전혀 버리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영화가 '남사스럽지 않은 인간 대 인간'으로 그 특수성을 축소했다면 그 보편성에 어떤 의미가 있었겠어요.

— djuna (@djuna01) February 5, 2016

이동진씨 쉴드친다고 내면의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보이는 이동진씨 팬들... 맹목적 팬심 때문에 본인이 포스트 동성혼 법제화 시대를 살기에 역부족임을 저렇게 부끄럼 없이 드러내보인다는 게 참... 그걸 가만히 보고 있는 이동진씨도 뭐... 알만하다.

— hypemachine (@hypemachine_) February 5, 2016

진짜 원작을 충실히 엄청 잘 반영하고 있는데 뭐든 진짜로 이성애 중심으로 해석함 1950년대고 뭐고간에 남자 사귀었으니 남자 좋아하는 거고 근데 결혼까지 한 캐롤은 레즈래 뭐래는 거야 대체 왜 테레즈가 레즈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하지

— Blerg (@blerg_osphere) February 5, 2016

테레즈 그 무슨 카페였나 바였나에서 완전 티부 두 명에게 눈빛 플러팅 받고 친구네 파티 가서도 약간 일틱한 부치언니한테 작업당하잖아요... 라고 설명해봐야 무슨소용이야 테레즈가 레즈비언이 아니라고 하는 애들이 티부가 뭔지 일틱이 뭔지 어떻게 알겠어

— p_book (@p_book) February 5, 2016

그렇게 '사람과 사람'의 사랑이고 '성별'이 관계 없는 거면 테레즈가 레즈여도 공감해야 하는 거 아냐? 왜 레즈가 아니어야만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굴어

— Blerg (@blerg_osphere) February 5, 2016

@schillingty 정말이지 대체 2시간 내내 여주인공이 상대 여자한테 보이는 성적 욕망이 표현되는 장면들을 실컷 봐 놓고 테레즈는 레즈비언이 아니야! 라고 우기고 싶은 마음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까지 이동진씨를 감싸야 하는 건가..

— hypemachine (@hypemachine_) February 5, 2016

이동진씨 블로그는 물론이고 이동진씨를 쉴드친다고 달린 차별적이고 호모포빅한 악성 댓글들'부터' 참고 넘어가지 않는 인식이 먼저 잡히면 좋겠다.

— hypemachine (@hypemachine_) February 5, 2016

한국에도 퀴어영화를 연구하고 젠더 감수성을 갖추면서(특히 <캐롤>의 배경이 미국이니까 미국 LGBT 역사에 정통한) 동시에 '영화'로서의 <캐롤>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 평론가들이 분명 있을 거다. 그런 평론가가 주도하는 라이브톡을 성사시켰어야지.

— hypemachine (@hypemachine_) February 5, 2016

그런 과정이 주요하게 그려졌다고 해서 "(나중에 둘이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캐롤은 또 다른 여자를 만날 것같지만, 테레즈는 만날 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을 것같다"고 말해도 되는건가... 마치 테레즈가 동성에 이끌린 건 단발적인 것처럼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그리고 마지막 씬 직전의 파티 씬에서 레즈비언 여자와 나눈 대화를 위 글처럼 해석하는 건 과도한 의미 부여 아닌가 싶다. 저렇게 해석하니까 캐롤이랑 같이 살기로 결심한 순간에도 테레즈가 "캐롤같은 확고한 레즈비언"은 아닐거라고 생각한 듯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파티씬도 그렇다. 그 여자가 테레즈에게 필의 친구냐고 물어온 것이 '내가 테레즈 네가 레즈비언임을 안다, 관심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테레즈가 여자에게 무심하게 반응한 것은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인식하길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라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그냥 그사람에게 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레즈가 확고한 레즈비언이었으면, 캐롤이 사랑을 고백하고 자신과 함께 살자고 한 날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여자에게 조금이라도 끌렸어야 하는건가? 그순간 테레즈가 (적어도) 레즈비언임은 당연한 것이었고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테레즈에게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건 캐롤이었을 뿐이다. 그때까지도 '내가 여자를 좋아하는건가'를 고민한다고?... 테레즈는 여행 중 자신이 레즈비언인지도 모르면서("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허락만 했"을 순있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마치고나서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그후까지도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테레즈는 자신이 하고싶었던 일에 뛰어들었고, 자신의 길을 걸어나가고 있었으니까. 다만 자기 앞에, 자신에게 상처주고 떠나버린 캐롤이 다시 나타나 손 내밀었을 때,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그 사랑을 다시 시작해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던 것뿐이다. 이 점에서 퀴어 러브스토리를 보편적 멜로의 용법으로 훌륭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고.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 하지 않는 레즈비언들의 사랑.

— 캐롤더쿠 제인 (@girl_spacingout) February 5, 2016

이동진의 캐롤 반박글은 뭐랄까, 자신이 영화를 철저하게 이성애 관점에서 보며 동성애를 습관적으로 타자화한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고백하는 것 같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동성애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거란 자신감에 기가 찬다.

— kNOH (@NOHitall) February 6, 2016

저 미끄러짐에 대해 앗 내가 실수했구나 하는게 아니라 "미끄러질 수 있는 표현이었지만 뜻은 그게 맞습니다" 라고 해버린 것에서 이미 많은 것이 설명된다

— G (@distancier) February 6, 2016

개인적으로 가장 동의하지 않는 부분은 테레즈의 캐릭터를 그렇게 오랫동안 혼란스러운 상태로 두(고 싶어하)는 것인데, 사실 테레즈는 정말 기이할 정도로 단순명쾌해서 더 놀라운 캐릭터이지 않나.

— SH Lee (@tauton_lee) February 6, 2016

RT - 저 이동진씨 팬들은 영화 캐롤 속 동성애를 지움으로써 저들 입맛에 맞는 '보편적' 이야기("그저 사랑영화에 하나")로만 소화하길 원하면서 그걸 '다른 해석'쯤으로만 생각하고 '해석은 제각각' 레토릭이 모든 문제의 답인 마냥 휘두르고 있음.

— hypemachine (@hypemachine_) February 6, 2016

리동진 새 글은 본인 이성애적 관점을 관철시키기 위해 필요 이상의 과잉 해석으로밖엔 보이지 않네.

— Pen (@MrVertigo10) February 6, 2016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캐롤의 에피소드이기에, 그리고 언뜻 확고해 보였던 캐롤도 결국 한 차례의 불안을 겪고 테레즈를 만나서 더 변화했기에 의미가 있는 이야기가 아닌지

— SH Lee (@tauton_lee) February 6, 2016

[캐롤]은 그 표면적 비정치성이 정치적인 선언인 영화지요.

— djuna (@djuna01) February 6, 2016

글쎄요. 일단 [캐롤]은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아니에요.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만든 영화일 리가 없죠. 영화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메시지는 선명하기 그지 없습니다. 디테일은 풍부하지만 오해의 여지는 없죠.

— djuna (@djuna01) February 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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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과 배우 인터뷰로 이동진이 옳다 단언하는 사람들 많은데 두 주인공의 성적 지향은 애초에 그 사람들에게 의문조차 아니었다고 본다.캐롤은 감독 게이,원작자/제작자/각본가 레즈인 사람들이 제작한 영화고,미국은 이미 동성애 로맨스가 더이상 뜨거운 이슈가

— Pen (@MrVertigo10) February 6, 2016

이슈가 아닌 무려 동성혼 합헌 시대에 접어들었음.이런 맥락을 고려 않고 배우나 감독의 이 영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란 인터뷰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이동진이 옳다 싶겠지.

— Pen (@MrVertigo10) February 6, 2016

평론가라면서 캐롤에서 비가시성 이슈를 캐치하지 못한다면 무식하거나 무능하거나 악의적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 이오트 (@iodine121) February 6, 2016

이동진 본인은 자꾸 "이건 영화에대한 이야기니가 동성애말고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미친 그게 그렇게 똑띠 나눠지는거면 누워서 영화만 보면 되지 왜 글쓰냐 대체..

— 리타임(착한사람) (@cloud7tony) February 6, 2016

이동진의 글을 읽어보았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 9할. 논란이 된 부분에 대해서는 ’최적의 표현은 아니라고 해도’, “동성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캐롤이 필요한 것” 이라고 역설적으로 강조해서 말할 수 있을지도... 라고 썼는데,

— 이길-보따리 (@ar2road) February 6, 2016

이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나의 진의를 몰라주니 또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줄께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아줘’ 식의 해명이 반복된다. 논란이 된 부분을 곱씹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간결하게 하는 해명 본 적이 드물다.

— 이길-보따리 (@ar2road) February 6, 2016

번호가 매겨진 나머지 글타래는 의미없는 글. 논란이 되었던 표현을 해명하기 위해 영화전체를 ‘해설’ 하고 있다. ‘보편적인’ 그의 팬들은 방어하겠지만 그 보편은 여전히 성소수자를 울타리 바깥 혹은 경계에 소수로 남기는 보편성이다. 안타깝다.

— 이길-보따리 (@ar2road) February 6, 2016

정작 논란이 되었던 동성애에 대한 타자의 시선에는 변함이 없다. 그냥 나에 대한 악의적인 글이 많은데 내가 해석한 것이 감독의 의도에 맞을 것이고, 이렇게 보는 게 미끄러질 수도 있는 표현이나 큰 무리는 없다 정도. 영화보고 와서 말해라.

— 이길-보따리 (@ar2road) February 6, 2016

캐롤 라이브톡 사건으로 동성애자에 편견생긴다, 걔네들 앞에서 무슨소릴 못하겠네, 얼마나 더 이해를 해줘야돼? <<너무 전형적인 여혐러 패턴이라 놀라움ㅋㅋㅋㅋㅋ

— Jamjam (@jamloopsk) February 6, 2016

이성애자는 평소에 이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해야 하는 상황이 많지 않으니까 별 생각없이 한 말이 차별발언이고 호모포빅 발언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 높다. 그게 욕먹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고치면 되는거지 "그런 뜻이 아니거든!" 하고 땡깡부릴 일이 아님

— G (@distancier) January 30, 2016

이번 캐롤 건은 그냥 "이동진 놀려먹기"로 끝날 일이 아니라, "이정도" 배급 규모의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들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그게 왜 문제인지 계속해서 얘기해야 한다.

— 퀴저씨 (@k_aquinas) January 30, 2016

갑자기 생각난건데 이동진씨가 언급한 '테레즈가 다른 레즈들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코멘트도 레즈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억측이라고 하고싶은 정도. 저 부분 코멘트를 보고 생각이 난게, 교회사람들이 늘 이야기하는 '동성애 난교'가 떠 올랐거든.

— otonacool (@otonacool) February 4, 2016

캐롤의 그 모호성은 지금 현대의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해석 관점을 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그 당시의 어쩔 수 없이 모호함으로 자신들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가져온 것이다.

— Blerg (@blerg_osphere) February 6, 2016

그걸 현대 관객은 명백하게 짚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사랑 이야기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지금이기에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배우들의 말 또한 그런 이야기다

— Blerg (@blerg_osphere) February 6, 2016

그 점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고 마치 그 당시 시대 사람처럼 테레즈의 분명한 욕망을 못 본 척 하는 해석이 정말 그저 '다른' 해석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리처드도 테레즈의 욕망을 알아보았고 대니도 알아봤다는 걸 생각하면 더 기가 막힐 노릇.

— Blerg (@blerg_osphere) February 6, 2016

반박글 전체적으로 노공감이지만.. 특히 대니의 키스를 물리치는 테레즈의 행동이 '리처드에게 느낀 죄책감 때문'이라는 해석은 이동진이 딱 이성애 남성의 사고회로를 거쳐 테레즈의 성애를 판단했단 증거 같음. 이거 너무 아니지않나...

— Tay (캐롤 스포합니다) (@schillingty) February 7, 2016

@bluexmas47 '보편적 사랑'은 사실 토드헤인즈와 두 배우가 인터뷰에서 말한 거에요~! 이동진 평론가가 그걸 듣고 심각하게 멋대로 생각한 것이 문제.. 감독이 말한 보편적 사랑은 '모든 사랑의 기저 감정은 보편적 사랑'이란 식으로 말한 거고

— 전굉여 (@oooohhhh00) February 7, 2016

@bluexmas47 이동진은 디테일 없이 설명하자면 테레즈의 사랑은 동성애라기보다는 캐롤이란 사람에 대한 보편적 사랑에 대한 얘기라고 말한 거고요. 김혜리 기자도 보편적 사랑에 대해 말했지만 전혀 달랐어요~ pic.twitter.com/P0W5UrUMNy

— 전굉여 (@oooohhhh00) February 7, 2016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동진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영화를 봤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아니, 연애란 걸 해본 적이 없는 건가?

— Ashal aka JOKER (@ahastudio) February 7, 2016

그것 자체가 그의 닫힌 사고를 보여주는 것. 그러니까 이동진은 '성소수자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려는 과정'이 들어가야 퀴어 영화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 woozoo (@kjspark91) February 7, 2016

캐롤 보기 전엔 이동진이 쪼끔 헛소릴 했나? 싶었는데 보고 나니 이 정신병자는 뭐지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골적으로 레즈비언인데 뭘 그걸 인간에 대한 사랑 운운... (딥빡

— 리예 (@Akan_in_Eden_) February 7, 2016

이번 캐롤 논란에서 이동진 평론가에게 너무나 실망한 점은 며칠 전 해명글이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난 후다. 논란이 있다는 걸 트위터를 통해서 알고 있었고 개봉일에 영화를 봤다. 영화에 푹 빠져서 논란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 bittersweet (@mijinlee) February 7, 2016

퀴어 영화이던 아니던 사랑 영화에서 아 존재가 존재를 사랑하네 란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는데 캐롤에서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되려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에 왔는데.. 며칠 후 새벽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에서 읽게 된 글은 충격적이었다.

— bittersweet (@mijinlee) February 7, 2016

평론가라도 편견이나 해석에 있어 아집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인물과 감정을 완전 잘못 이해하고 있고, 그걸 해명의 이유로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테레즈가 우유부단한 성격에 캐롤에 대한 감정이 모호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혼란스러워한다니.

— bittersweet (@mijinlee) February 7, 2016

비호감인 방송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괴로워서 보지 않는데, 그건 그 사람의 방송인으로서의 경력과 노하우를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번 글을 읽고는 이동진이란 사람의 세계관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평론가로서의 능력에 의심을 품게됐다.

— bittersweet (@mijinlee) February 7, 2016

[edit]3.1. 독자들의 호모포빅한 발언

ㅋㅋㅋ pic.twitter.com/wEcuUku2oK

— 테사 (@_damfino) February 6, 2016

이동진 씨는 진짜 자신에 대한 악담 어쩌고 하기 전에 자기 글 읽는 독자들한테 호모포빅한 발언 좀 자제하라고 요청이나 하면 좋겠음.

— hypemachine (@hypemachine_) February 6, 2016

댓글들은 정말로 굉장함 pic.twitter.com/9pb5tqMB8h

— 연쇄일반화마 (@SarkSark2) February 6, 2016

이게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던 주제가 아닌가? 우리가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인데 말이야 pic.twitter.com/VsWYIxwGUf

— Neonsign (@xinx393) February 6, 2016

[edit]4. 기타

@minhee_ryu 저자 두 분은 유명한 젠더법학자들인데 커리어의 초기에 이런 실무가적인 논문을 썼던 것이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신 듯. 본받을만 하다.

— 류민희/Minhee Ryu (@minhee_ryu) February 10, 2016

캐롤의 번역자는 캐롤을 이렇게 많이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검색만 해봐도 1장에서 테레즈가 떠올리는 'Eliot의 시구'가 TS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룩프록의 사랑 노래의 시구라는걸 알 수 있는데. 번역본에는 엘리엇이란 이름도 없다.

— rina (@saltrina17) February 9, 2016

[Nara Lee - 캐롤이라는 영화 - 캐롤이라는 레즈비언 영화 1. 싸워야 할 이미지 "여왕에게...]새 창으로 열기

헤인즈는 여러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분명 50년대 매카시즘의 시기, 시끄럽고 낡은 뉴욕 (이를 표현하기 위해 헤인즈는 50년대 거리와 사람들을 찍은 여러 사진 작가의 사진을 참조했다. Saul Leiter, Ruth Orkin 그리고 약간의 비비안 마이어. 화면 입자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슈퍼 16미리로 촬영되었다. ) 커네티컷이라는 시공간의 표현에 몰두했다는 점이 하나. 이 시대와 장소는 아직 동성애라는 소수자가 공공연하게, 집단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나거나 담론화하지 않았던 시기라는 점. 그리하여 테레즈는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매혹시키는 아름답고, 자기 확신에 가득차 있는 인간에게 매혹당한다는 점. (물론 그녀는 동성애를 배제하는 것 역시 아니다. "하나님 제가 죄를 지어도 되겠습니까" 내지 "나는 반 시대의 길을 가겠어"처럼 선택이나 배제가 원리적 문제로 설정되지 않는다는 것. )
"나는 동성애 이슈를 위해 행동하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한 등장인물의 선택을 통해 참으로 흥미로운, 이 시대에 숨겨져있던 서브컬처의 표현과 관련된 이 순간들을 탐색하고자 했다. 자신을 숨겨야 한다는 사실이 게이와 레즈비언의 창의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배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사회 내 주변성을 상실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포지티브와의 인터뷰. 토드 헤인즈)

그가 왜 50년대 일반적인 사랑의 "양태"와 다른 사랑의 양태를 발견하고, 두려움 없이 경험했던 두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가 "동성애 이슈"를 부각하려는 영화가 아니라고 강조하는지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말은 더 많은 관객을 겨냥하는 말, 흥행을 위한 말이 아니다. "동성애 영화"를 만드는 것이 하나의 저항운동이었던 시대 '이후'의 세계에서 그는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획득한다.

[‘캐롤’, 한국영화도 이런 품위 있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 Entermedia]새 창으로 열기

수많은 관객들이 <캐롤>의 여러 장면에서 그 남자들이 폭력을 휘두를까봐 걱정했다고 고백한다. 그들은 만약 이 영화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그들이 어떻게 행동했을지 상상하고 공포에 질린다.
최근 히트한 <검사외전>이나 <내부자들>과 같은 영화들을 보라. 정의구현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천박함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작품이다. 우리는 천박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사실적이고 솔직하게 한국 사회를 그릴 수 있는 길은 최대한 천박해지는 것뿐이다. 그러니 김치로 남의 따귀를 때리는 일 같은 것들이 당연시된다.
게다가 아무리 사실성을 추구하고 실제 세계에 모델이 있다고 해도 허구의 이야기는 결국 평행우주의 가상현실에서 벌어진다. 그런데도 굳이 현실의 천박함에 인질로 잡혀야 할까? 그건 솔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과 연결된다. 모두가 좁아 터진 상상력 안에서 천박한 솔직함에만 집중한다면 과연 세상이 바뀔까?

[<대니쉬 걸>과 <캐롤>이 내게 가르쳐준 것 ize]새 창으로 열기

내가 모르던 어떤 삶은 보편이라는 개념과 함께 쉽게 번역된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어렵지 않기에 할 수 있다고, 해도 된다고 믿는 것. 여기엔 자신의 지평 너머를 확인할 이유가 별로 없는 헤테로 남성의 권력이 밑에 깔려 있다. 얼마 전 논란이 된 [캐롤]에 대한 이동진 평론가의 코멘트는 지적이고 많은 경우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호모포비아는 결코 아닌 남성 비평가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쉬운 실수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논란이 된 “테레즈한테는 동성애적인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고 캐롤이 필요한 거다. 그런데 하필이면 캐롤이 여자였을 뿐”이란 말에서 그 스스로 후회한 “하필이면”이란 말을 빼더라도 이 해석은 이성애자의 질서를 디폴트값으로 잡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논란 이후 블로그를 통해 “테레즈의 변화가 그녀의 정체성과 관련한 동성애 자체의 고유성 때문인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랑의 전인성 때문인지는 사실 이 영화에서 명확하지 않”다고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했지만, 우리는 이성애자 로맨스에서 첫눈에 반한 사랑에 대해 작품 안에서 명확한 설명이 없더라도 그것이 이성애 자체의 고유성 때문인지 사랑의 전인성 때문인지 분리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캐롤]의 장면 장면을 성실하고 섬세하게 해석하지만 그 해석을 위한 자신의 인식적인 지평을 점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캐롤이라는 영화 – 캐롤이라는 레즈비언 영화 | 슬로우뉴스]새 창으로 열기

[캐롤]에서 ‘두 여성의 사랑’이라는 특수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하여 해석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우스꽝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캐롤]을 꼭 ‘동성애 영화’로 규정하는 시도는 여러 시도 중 하나면 족하다.

모두가 [캐롤]을 동성애 영화라고 규정하며 응원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않더라도 우리는 ‘이것은 무엇입니다’, ‘이것은 단지 무엇입니다’라는 태그, 몇 점이라는 별점과 몇 줄의 감상평이 대세를 장악한 세계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단정된 해석, 축소된 해석의 세계에서 메말라가는 영혼을 거두어들이며 힘겹게 살고 있는 나는 ‘동성애 영화’라는 ‘딱지 붙이기’가 재미없다.

너무 뜨겁고 너무 빠른 ‘동시대’의 담론 속에서 영혼 지키기.

아녜요. 동성애에요. 동성간 사랑이에요. 제발 좀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틀로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편집하지 맙시다. #캐롤 #동성애 pic.twitter.com/xmWL8kKps8

— 기필코 해낼 류노스케 (@dksldpdy) March 8, 2016

[<캐롤> 논란 이후 – 비평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서울국제여성영화제]새 창으로 열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의 내용은 유사해 보이지만 그 강조점과 발언의 벡터가 완전히 다르다. 위의 토드 헤인즈 감독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주변성’이다. 주변성은 헤인즈 감독이 5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이다. 현재 동성결혼까지 합법적으로 가능해진 미국에서 동성애 정체성은 주변성을 점점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헤인즈 감독은 주변성을 재탐색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퀴어의 ‘퀴어함’을 찾기 위해 미국의 50년대를 선택한다. 따라서 헤인즈 감독이 동성애 영화가 아니라고 한 발언은 안정되며 일관된 정체성을 지향하는 일부 미국 동성애 문화의 주류화에 대한 비판이지 캐롤이 여자가 아니어도, 즉 레즈비언 관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영화의 디테일들을 잘 포착한다고 알려진 평론가조차 영화에서 소수자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잘못 독해하거나 혹은 소수자 정체성에 대한 동일시가 잘 되지 않는 불편함 속에서 그 인물을 주류적 감성에 편입시키려 하는 것은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영화문화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재현의 양적, 질적 생산과 그와 관련된 이슈와 미학에 대한 비평적 관점이 모두 문제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논란을 통해 오히려 한국의 영화 평론과 소비문화의 이성애중심성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수년 동안 <잔느 딜망>을 텍스트로 영화전공 강의를 하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한 바 있다. 일부 남학생들은 한 명의 여성이 거의 혼자서 3시간을 이끌어 가는 이 영화에 동일시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했다. 결국 어떤 남학생들은 거의 세네 장면 정도 나올 정도로 부수적인 잔느의 아들이나 영화의 마지막 즈음 잔느가 살인하기 전 화장대 앞에 앉아있을 때 보이는 죽은 남편의 사진에 동일시를 해 그들의 입장에서 잔느를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도덕적으로 평가했다. 이것은 남성 관객들이(심지어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학생들마저도) 얼마나 여성인물에 동일시하기를 어려워하는지 그리고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였다. 주류 정체성, 특히 이성애 남성은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의 감정과 제스처, 관계, 환경과 조건을 읽고 쓰는 능력을 익힐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아마도 제작부터 더 많은 여성 캐릭터와 소수자 캐릭터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나와야 할 것이며, 어린 시절부터 가능한 성별/인종/성적 정체성/계급 등의 균형을 맞춰서 재현물을 보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edit]5. See also

[edit]6. 의견 남기기

듀나의 허팅턴포스트 기사가 가장 잘 정리한 듯. -- Nyxity 2016-2-1 6: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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