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리겐차

마지막으로 [b]

인텔리겐차 : '지금, 여기' 우리 지식인의 새로운 길찾기

온라인 서점으로 이동 ISBN:898778763X


① ‘intelligentsia’는 지식노동에 종사하는 사회계층을 의미하는 말이며 이런 집단은 고래부터 있었왔지만 좁은 의미의 ‘지식인’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배-피지배의 구도속에 존재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인자였지만 계급적으로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인식해왔다. 시류에 따라 유리한 쪽에 서는 것을 택했던 그들은 지식생산물이 점차 고도화되며 배타적인 속성을 띄게 되자 스스로를 독립적인 계급을 인식하게되었다. 그러나 아직 현실사회에서 정치경제적인 주도권이 구 귀족에게 있는 것이 자신들의 발전에 벽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들은 부르주아와 협력하게 되었다. 결국 혁명 이후 부르주와와 인텔리겐차는 향후 사회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양한 차원의 투쟁을 해나가게 된다.

일부 인텔리들이 새로운 주류사회를 긍정하고 부르주와 헤게모니에 협력한 반면 어느 인텔리들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하였고 이들이 근대 좌파의 시초가 되었다. 혁명의 방법이나 목표는 달랐지만 이들 비주류 인텔리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반목하고 연대하고 배신하며 꿈을 이루려고 했다. 다수의 비주류 인텔리들은 19세기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중 후자를 택하며 인간의 진보를 꿈꾸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정치경제적으로 붕괴되면서 인텔리 사회 전체에서 비주류로서 가지던 주도권마저 거의 상실할 지경에 이른다. 이들 비주류 인텔리들은 적의 적이 친구가 아니고 악의 반대가 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요즘에 와서는 좀더 정신적인 여유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인텔리겐차로서의 계급적 자의식이나 대안모델이 새로운 인식도약의 시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② 일제시절 문학작품들을 읽으면 생경한 단어와 개념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때가 있다. 그 중 ‘인테리’와 ‘룸펜’은 당대 지식계층 일부에 대한 지칭어로 쓰였는데 전자가 사회의 앞날을 내다보고 선도하는 자, 기존질서에 비판적이고 대안제시를 하는 계층, 구질한 일상생활과는 조금 떨어져서 문화를 즐길 줄 아는 藝人 같은 이미지라면 후자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시대를 바꾸지 못하는 무능력자, 고급백수, 냉소적이고 허무적인 현학인, 퇴폐적이며 소비적인 싸구려 낭만가 라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지식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 이미지다. ‘인테리’와 ‘룸펜’의 구분이 현실에 적응한 정도일까, 아니면 인식의 차이일까. 인테리에게 속물적 특성이 있다면 룸펜에게는 부적응자라는 문제가 있다. 사실 남들에게 룸펜으로 보인다고 해도 자기 스스로 만족하고 세상에 타협하지 않는다며 자부하는 인생들이 요즘 늘어나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아님, 단순히 뻔뻔해지는 걸까.)

…일하는 인간으로서 규율이나 긍지도 상실하고 있어, 이미 프롤레타리아트에 소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때때로 권력을 멋대로 행사하려는 정치가가 이들에게 돈이나 음식 등을 제공하고 반동적(反動的) 운동에 동원하여 사회의 혼란상태를 조성하기도 한다. 이 경우, 그들은 역사에 등장하여 독재체제의 한 요소가 된다.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으로 감소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소멸되지 않는 이상 사회의 저변 어딘가에서 계속 생존할 것이다… - 네이버 백과사전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항목에서

③ 정말 로또 한방에 상류층 편입이 가능하다면 이제 더 이상 지식인은 구름위에서 존재하는 계층이 아니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은 지적 능력이 하향평준화 된다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역사적 사명, 사회적 위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요구를 하며 우리로서는 각자 그에 공명할 수 밖에 없다. 자기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지식인 계층은 룸펜적 상황을 강요받아 왔다. 그러나 그에 타협하여 주류에 편입되어 기계부속으로 살아가는 것도 싫고 자괴감에 빠져 침몰해가는 것도 싫다면 새길을 찾아야 한다. 스피노자는 하루에 렌즈 20개만을 갈았다.

④ 근대라는 문제는 우리가 당분간 더 고민해볼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근대화와 탈근대화, 그것이 적대적 모순관계도 아니고 변증법적 모순관계도 아닌 비빔밥같다는 느낌이다. 뱃속에 들어간 나물과 계란노른자는 따로 저장되고 소화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책분류
트랙백 주고받기

마지막 편집일: 2003-7-6 1:04 am (변경사항 [d])
2297 hits | 변경내역 보기 [h] | 이 페이지를 수정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