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사건

마지막으로 [b]

몇 년 전에 트윗했던 내용이지만, 한 번 계폭해서 지금은 그 트윗이 없기도 하고 시기적으로도 할 만 한 것 같아 지금부터 예전 트윗을 다시 쓰겠습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2012년)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 분들을 만났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모국을 알고 싶어 한국으로 유학온 재일교포 2세들이 간첩으로 몰려 사형, 무기징역 등 무거운 형을 받고 오랜 옥살이 끝에 결성한 모임입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일본에서 왔으니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변호사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지령'이 뭔지도 모를 만큼 한국어가 서툴어 방어권을 거의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남산 지하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신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이런 동우회원이 120명이 넘고 그중 삼십여명이 재심을 청구, 십수 명이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대에 유학을 왔다가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체포되었던 회장 이철 선생님은 13년 옥살이를 했습니다. 27살에 감옥에 들어가 마흔에 나왔습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이철 선생님의 약혼녀도 간첩방조죄로 삼년 육개월 옥살이를 했습니다. 마흔에 안동구치소를 나오자마자 결혼식을 한 선생님은 지금 재심청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추가: 제가 뵌 것은 12년인데,검찰의 상소로 2015년 11월에야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더 기가 막힌 것은 이철 선생님을 비롯한 대부분의 양심수들은 북측인 조총련에 반대한 민단2세대였다는 점입니다. 집 팔고 차 팔아가며,조총련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민단을 만든 아버지를 보고 자라,그 모국이라는 곳에 가서 배워 보려고 했던 거지요.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이철 선생님은 이리 말씀하시더군요. 그렇게 1세대가 모국에 바친 걸 돌려달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내가 유학 가서 모택동 좀 읽다가 잡혔으면 그냥 뺨 몇 대 때리고 너 아버지를 봐서도 그러지 마라 하고 쫓아내면 되었을 것을 어떻게 이리 하냐고.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이철 선생님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쇼크로 그날 밤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양심수동우회원들의 수감 햇수를 모두 합치면 700년쯤 된다고 합니다. 당시 간첩 누명을 쓰고 중형을 받은 분 중에는 사형이 집행되어 이제 어쩔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재심을 청구하며 고문과 긴 옥살이를 돌아보는 것도 엄청난 고통입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sy876 예전에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때 한국에서 뛰려는 재일교포선수들을 주변에서 말렸던 이유가 다 이런거였다고 들었습니다.

— MOEX (@irkomoex) February 28, 2016

다른 트윗도 했던 것 같은데 찾을 수 없으니 그냥 다시 쓰겠습니다.

— 정소연 (@sy876) February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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