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과자유의지

마지막으로 [b]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이라는 영역에 속하지 못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주 가끔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었으면 하는 일을 경험하곤 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는 탄식과 함께.. 그런데 그러한 일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하는 생각에까지 닿게되면 그 때는 더욱더 깊은 후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고 가슴마저 답답해진다.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도 정말 이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다. 더욱이 지하철을 운행하고 통제했던 관계자들에게는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닥친 것과 또 왜 그때 그렇게 자신이 판단했을까 하는 후회와 한숨이 끝이 없을 것이다.

"아이 재수없어!" 하는 말, 나 또한 쉽게 내 뱉는 말이다. 통계와 확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로또가 당첨될 확률의 신은 내 편이고, 사고나서 객사할 확률의 신은 당신편이라는 생각, 전혀 합리적이지 않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도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건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그렇다면 어째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통계와 확률로 지배되는 세상이 되었나?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과연 그가 원하시는게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통한 그의 뜻 실현인가?" 라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나에게는 떠오른다.

물론 정신이 좀 나간 아저씨 때문에 태초 부터 하나님이 인간의 걸어다닐 자유와 라이터에 불 붙일 자유를 몽땅 없애실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한 세상이 아닐테니까..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살아있는 폭탄을 전 세계 도처에 깔아 놓으신 것은, 물론 그가 자유 의지를 만드신 이유때문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위험 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의지... C.S Lewis가 말했듯이 잘못될 수 없는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아보인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못하는 자유의지가 존재할 리는 없다. 만약 자유의지가 그런거라면 자유의지라 명명하지 못할테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한 하나님에게서 부터 만들어진 불완전한 세상은 먼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 하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완전한 하나님은 완전한 것 만을 만드실 수 있다. 영원한 하나님으로 부터 창조된 피조물은 영원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정상이 아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에서 보았듯이 몸이 불편하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별로 치밀해 보이지 않을거 같은 아저씨 한 명이 저지른 일이 너무도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때문에 쉽게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더 똑똑하고 치밀하고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더욱 위험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사실이다.마치 루이스가 이야기한 것 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병자나 어린애가 아무리 악한 생각을 해도 그가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은 제한이 되어있다. 그러나 건강하고 힘센 사람이나 히틀러 같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마음을 먹기에 따라서는 수 많은 인명을 해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의지에 대한 추론을 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자유의지는 내가 잘못할 수 있는 자유이다. 즉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란 무엇일까? 내 마음이라는 말에는 바로 내 것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나의 것인 마음 즉 사람들은 자기가 의식하지 있건 안하건 간에 자기 자신과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 끊임없는 구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가지고 있지 못한 의식, 자아 의식이란 것이 태초의 인류에게 어떤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하나의 실마리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분리가 되었음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태초의 인류인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라고 말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과 루이스의 생각을 합쳐보면, 만약 현실적으로도 우리가 어떤 사람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사표를 내야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까 최소 물질적인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이 내 것을 먼저 사수하고 그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같이(우리가 흔히 회사에서 보는 사람들 중 거래처 관계나 기술을 가지고 사표내고 따로 독립회사를 차리는 사람들처럼)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같이 되기위해서는 최소 내 것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래야 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 부터 우리가 독립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인류는 잠시 잠깐이지만 육체를 가지고 있다. 먼저 육체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적어도 내 의지대로 움직이니까.. 가장 내 것으로 보인다.(누가 보더라도) 그리고 내 생각은 정말이지 내 것 같다. 내가 고안하는 생각들 아닌가... 물론 선행되는 지식의 습득들이나 경험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가장 내 것 같아 보인다. 또 우리의 소유물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사회의 계약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긴 하지만 한 사회가 와해되지 않는 이상 내 소유에 대한 내 마음대로 행동은 지지를 받기마련이다.

그런데 정말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과 하나님과 분리되려는 노력(?)을 한다면 앞에서 말한 육체나, 생각, 소유물 같은 것이 자기 자신과 별 관련이 없고, 또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불교에서도 공수래공수거라하지 않는가.. 그 만큼 우리가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것이란 내 것이었던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보증되지도 않는 것이다.(오로지 우리의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지식일 뿐)

그렇다면 사탄은 어떻게 하나님을 반대해서 하나님 반대 편에서 섰으며 인류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을 거란 유혹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그의 유혹은 사실 성립되지 않는 말이었다. 먼저 하나님과 같이 되기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것 처럼 뭔가 독립할 수 있는 건덕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다. 즉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내 육체와 떨어지려면(이미 육체는 내 의지로 생겨난 것이 아니므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내 육체를 미워 하는 길이겠다. 불만을 품어야 하겠다. 간혹 곽 목사님이 설교 중에 "왜 나를 낳으셨어요?"가 가장 불효라고 하시는 말씀처럼 하나님에게 우리는 "왜 나를 만드셨나"라고 따지는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독립하는 필수 과정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나쁜 사람이 그렇게 욕심을 부려 자신의 소유욕을 채우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망하 것으로 끝 마쳐지는 결말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면이다. 인간의 종착점은 이 모든 것의 허망함을 깨닫는 이후에자신에 대한 경멸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과의 독립투쟁 이후에 쟁취한 전리품이다.

여기까지 보면 무슨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현 지구상의 인간이 처한 모든 문제가 소유와 그에 따른 다툼의 문제이기에, 잘 생각해보면 굉장히 많은 사실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제 약간의 실마리가 보인다. 지하철 사건처럼, 문제는 악한 마음을 품은 인간이 자기 자신만 자폭하면 다행인데, 얼마 만큼의 피조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살아있는 폭발물로 그의 역량이 커지면 커질 수록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약 1000년 동안을 살아온 악인이 있다면 그의 능력과 악함은 우리의 모든 것을 뛰어넘을 것이다. 인간의 악함이 결국 인간의 모든 능력을 앗아 갔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또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이 파괴되도록 놔두시는 이유 또한, 앞에서 말한 자유의지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반역의 끝이 죽음이고, 따라서 선악과로 인해 죽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육체는 소멸되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육체와 존재 형태가 다르다. 이것은 온전히 존재하고 죽지 않는다. 물론 물질이 아니므로 내가 머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쨌든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사탄의 반역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이 영적인 존재에게 온전한 자유의지를 부여했다는 것은 많은 신학자들이 이야기 한 것인거 같다. 따라서 비전공자인 나는 별로 할 말이없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온전한 자유의지는 완전한 반역을 가능하게도 하고 그것은 절대적인 죽음의 집착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존재의 소멸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라고 할까... 즉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존재"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창세기에 보면- 모든 피조물(천사나 사탄포함)에게 똑 같은 종류의 명령을 내리신 것이다. 그렇다고하면 사탄이 그 명령을 거역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비존재에 대한 실현(?)만이 그 반역의 궁극점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도 먼가 열불이 나면 "너죽고 나죽자"라는 식이 되지 않던가. 의지를 가진 영적인 존재는 다 이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이 안죽으면 나라도 죽어버려야 할거 같은게 사탄의 입장이 아닐까.. 더군다나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했다면 더욱..

여기까지 와보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마가복음 9:48)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게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다. 무슨 이야긴가하면 하나님은 영혼을 소멸하실 수 있다. 하지만 소멸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옥은 소멸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절대 소멸되지는 않지만, 그 안의 존재들은 소멸되기를 바라고 모든 하나님의 방법을 거꾸로 진행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죽음에 다다르는 고통뿐이다. 결국 지옥이란 우리가 이땅에서 가장 죽고 싶을 때 느껴지는고통들 만으로 구성되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누군가 지옥에 대해서 믿기가 어렵다면.. 이번 지하철 사건의 아비규환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될 것 같다.물론 그 고통이 영원히 지속되는... (오직 한 사람이 죽고 싶어서 그런 아비규환을이뤄냈는데, 모든 자들이 죽고 싶다면 그 결과는 뻔한거 아닌가?)

어차피 사랑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면(적어도 하나님이 가르쳐준 사랑) 인간이 자신을 폐쇄하므로써 하나님의 사랑과 분리되었다는 성경의 말씀은 자명한 진리가 아닌가? 에릭 프롬의 "Art Of Love"를 봐도 명명백백하게 관찰된 사실이다. 독립하려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지않는 다는 것은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인류는 하나님과 같이 되기위해서 하나님을 떠났다. 그리고 이 모든 재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개입한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되면 어느 정도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통해 우리도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게되는 순간들이 종종있다. 그럼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침투해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가 우리에게 침투해 온 것이지만)

우리가 인과율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한 선물이 아닐런지.. 우리는 하나님의 개입의 흔적이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증거를 믿음이 없이는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믿음조차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어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통계와 확률로 지배되어 보이는 세상에서 그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삶을 사는 유일한 길임을 발견한게된다.

자유의지는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냐는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던져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침투하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영원의 끝자락에 닿게된다. 그래서 몸과 영혼이 안식과 평안에 거하게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도 침투하면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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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2-23 12:29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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