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꼴Monologue/2003-07-27

마지막으로 [b]

[edit]2003-07-27 가정

가정

박목월

지상(地上)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玄關)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詩人)의 가정(家庭)에는
알 전등(電燈)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微笑)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地上).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屈辱)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地上)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存在)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시인으로 살면서 한 가정의 생활을 이끌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나는 안다.
그리고 아버지가 우리 자식들의 손을 잡고 얼마나 사랑하며 살아왔는지도 나는 안다.
- 박목월 시인의 맏아들 박동규 교수의 말

아주 오랜만에
뚝뚝 눈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해준
한 때 이 땅을 호흡했던
오래전 한 시인의 마음.

지상에서
예술가로 살아감이
얼마나 위태로운 일인가를
나는 보았고

그 역시
끝끝내 살아내어 준 것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마음 속에
의미에 대한 물음을 품는다는 것이
이 세상에 대한 반역임을
어쩌면 알 것도 같았다.

나의 삶,
그 알 수 없는 길을
하루하루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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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집일: 2003-7-28 3:00 am (변경사항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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