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꼴Monologue/2003-08

마지막으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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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1 사랑, 그 알 수 없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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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알 수 없는 무엇

내가 사랑하는 그를 그 자체로 놓아야 한다.
그러나 사랑은 구속함과 구속됨을 아우르는 것,
온전히 자유로운 사랑이란 과연 가당한가
어쩌면 사랑하기마저 놓은 자의 자위가 아닐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라지만
관계란 영향 주고 영향 받는 것
놓아주고, 품고,
그리고 서로 감싸 안고.
사랑, 그 알 수 없는 무엇

2003-08-02 어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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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

그가 더 그다울 수 있다고
가장 그다운 그가 더 우리일 수 있다고
그때 그가 가장 아름다울 것이라고
그렇게 무엇다웁지 않은 말을 건냈다.

2003-08-03 유체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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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체이탈

정신이 몸을 떠나 이곳저곳 떠돈다는 유체이탈을 말하는 사람들은
멀리서 이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는 기계장치들은
어느새 유체이탈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그가 통화하고 있을 때 마주하는 나는 외롭다.
내 앞에 있지만 실상 그는 다른 곳에 있다.
이 글이 현상의 전달이 아닌
그를 독점하지 못한데서 오는 서운함으로 느껴진다면
당신이 맞게 본 것이다.

- 질리도록 무더운 토요일 오후

2003-08-09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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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맛

요리에는 분명 예술적 요소가 있다.
혀 끝의 칼날같이 엷은 미묘한 맛,
들이키는 숨과 함께 몸 속으로 흩어지는 향,
눈을 즐겁게 하는 구성과 색상,
거기에 시간과 주변 환경이 적절해야만 하고
마지막 단계에 감상자는
도리 없이 자신의 목으로 작업을 직접 넘겨야만 한다는
식객(?) 참여적, 퍼포먼스적 요소까지.
이러한 공감각적 요소들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고안되었다면
요리는 오래전에 예술의 반열에 올랐으리라.
좋은 그림이 좋은 안목을 만드는 것처럼
그리 고급스럽지 못한 내 입맛 역시
미묘한 손맛을 느끼게 해 줄
그런 요리를 이따금 만날 수 있길.

- 동진이가 정성스럽게 필터링해 준 커피향을 즐기고 있는 정혜

2003-08-12 그처럼 나를 떠나간 그

그처럼 나를 떠나간 그

흐릿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으로
끈적이는 외로움이 나를 지치게 할 때
곁에서 더 큰 외로움으로 나를 위로해주던
내겐 아무 생각 없던 고교시절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던 그가
오늘 다시 내 곁을 훌쩍 떠났다.
그때처럼 말없이.

- 출근길에 기형도의 시집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는 또 누구 곁에 서 있을까.

2003-08-18 아버지가 그리울 때

아버지가 그리울 때

잠결에 서늘하게 느껴지던
아버지 냄새
사내 냄새
어른 냄새

그것이 밥벌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술 냄새
담배 냄새
세상의 돈 냄새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나 역시 사회에서 밥을 벌기 시작한 후였다.

아침 출근을 위해 어젯밤 벗어둔 옷들을 뒤적이며
내게서 그 냄새를 맡을 때
나는 불현듯 아버지가 그립다.

2003-08-21 죽음

죽음

내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될 때
나는 무얼 생각할까

십 년 뒤
이십 년 뒤
삼십 년 뒤

그런 추상적 시간이 아닌

일 년 뒤
삼 년 뒤
아니 오 년 뒤

그런 실재적 시간을 선고 받았을 때
나는 무얼 생각할까 누구를 떠올릴까

웃으리라
변하지 않는 것이 죽음이므로
죽음은 침묵의 또 다른 이름이므로
목소리 높여 나는 지금 살아 있노라고

- 표 선생님을 뵙고서

2003-08-22 긴 호흡

긴 호흡

삶을 부수어야 한다.
나를 둘러싼 견고한 관계들을
허위대고 빠져 나와
어딘가로 흘러 들어
뿌리없는 땅에 떨어져
내 존재만으로
오직 존재만으로 호흡하고
오직 존재만으로 배를 채우련다.

긴 숨 쉴 수 없는
짧게 병들어 있는 나를 가엾이 여겨
오랫동안 숨을 고를 수 있게
이름 모를 풀밭에 누이련다.

내 머리맡에는 풀이 돋고
내 몸에 비 냄새 배어든 후에
그때에도 내게 무언가 남아 있다면
비로소 길게 호흡할 수 있을 거외다.


- 짧은 마디 시간에 쫓기며

2003-08-23 천재를 만나고

천재를 만나고

그들을 만나면
그들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지.

그들의 불행과
그들의 비참과
그들의 패배가
그들의 빛나는 천재 위에
찬란하게 흩어진다.

그들을 만나면
내게서도 반짝이던 그들의 파편들이
일제히 마주 울리며
그들의 세계로 나를 이끄는 거다.

- 계속 쓰는 중 -

2003-08-26 승화

승화

내 육체가
정신으로 승화하고 있다.

고상한 예술적 초월이 아니라
나를 품팔며 하루하루 삼류 지식 노동자로 살아가는
내 몸이 말라붙고 있다는 거다.

마감을 마치고
다시 육체를 살지워야지.

내 정신은 여전히 굶주렸다.
그렇다면 내 육체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바보같으니, 맘몬이라는 영으로 변화된 거다.
하하하

- 마감에 쫓기는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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