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덕후 교수의 결혼식

6년 전 상상했던 모님의 결혼식: 오덕의 결혼식

상상했던 결혼식
근데 실제로 결혼하는 날이 와버렸다.

 

https://twitter.com/heyjinism/status/949504827213594625

 

스타워즈가 나온 결혼식.. 그것은 우리 부부 결혼 이야기가 아닌가..

 

https://twitter.com/heyjinism/status/949507241312337922

https://twitter.com/heyjinism/status/949516928036433920

계획대로 입장음악(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퇴장음악(스타트렉 TNG 메인테마)

행복하세요!

 

 

 

톨키니스트라면

으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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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인공지능에 관해 던지는 질문들

SF가 인공지능에 관해 던지는 질문들 | 창비주간논평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는 날이 온 것일까?”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압승을 거둔 날 언론매체 곳곳에서 튀어나온 물음이다. 생각보다 얻을 게 많은 질문은 아니므로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사람들은 왜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더 적절한 질문이 있는 건 아닐까?

배명훈님의 이 질문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부해질 대로 진부한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사실 인공지능보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인간의 모습이 사실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 우리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저런 질문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AI를 의인화해서 이해하려는 시도, 인간을 특별시 하는 인식. 이 모든 것이 과학이 발달하면 곧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See also AlphaGo : TheLibraryOfBabel

 

 

알파고와 인공지능, 그리고 우려에 대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서 AI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우리 일자리도 빼앗고 AI가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우린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는 등의 우려가 그것이다.

see also 왜 최근에 빌 게이츠, 엘론 머스크, 스티븐 호킹 등 많은 유명인들이 인공지능을 경계하라고 호소하는가? | coolspeed 

이와관련, 테드 창은 사고 실험을 해서 ‘인류 과학의 진화’라는 글을 남겼다. AI(메타인류)가 발달해서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다면, 메타인류가 과학분야를 인간보다 저 멀리 앞서서 발견해 나가게 될 것이고 남겨진 인류는 그 결과물을 한 참 뒤에서 해석하게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메타인류 과학이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이 인류 연구자들에게 끼친 악영향 중 하나는 장래에 자신들이 과학에 대해 독창적인 공헌을 할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 일부는 완전히 과학에서 손을 뗐지만, 뒤에 남은 사람들은 원래의 연구 분야에서 해석학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메타인류의 과학적 업적을 해석하는 학문 쪽으로.

…(중략)…

우리는 메타인류 과학의 성과에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다. 메타인류의 존재를 가능케 한 여러 과학기술은 본래 인류에 의해 발명된 것이며, 그들은 우리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 테드 창, 인류 과학의 진화(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듀나는 더 나아 갔다.

만약 반혁명을 포기한다면 우리의 위치는 어떻게 될까? 우리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더 이상 능가할 수 없는 존재 밑에서 안존하며 새로운 존재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될까?

이런 의문들로 편두통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나는 호텔 전망탑으로 올라가 역사 선생이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마치 버스비 버클리의 댄서들처럼(그래, 나는 이제 그가 누구인지 안다) 치밀하고 아릅답게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의 춤을 넋 놓은 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대충 해답을 알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저들이 이룩한 업적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저 아름다운 기계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존재 이유를 잃고 도시의 틈 사이로 사라진다고 해도 후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의 앞길을 막는 부모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 듀나, 기생 (태평양횡단특급중)

솔직히 말하면 내 심정도 이와 같다.

 

이것은 SF가 아니다

뿌리깊은 SF에 대한 편견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발언하는 이 사태는 언제까지 계속 될까.

90년대 초, EBS 명화극장 예고편에 유지나 평론가가 나와서 영화에 대해 미리 소개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중에 알파빌도 있었는데 ‘흔한 SF와 달리’라는 말을 했었다. 아니 알파빌에서 다루는 주제와 소재만큼 진부하고 다룰대로 다뤄 닳아빠진 SF가 어딨나?(훌륭한 작품을 평가절하는 뜻은 아님)

2005년 [TV 책을 말하다]에서도 르귄의 “빼앗긴 자들“에 대해 진행자가 문학적 성취가 대단해서 이걸 SF라고 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의 말을 하기도 했다.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관련하여 듀나의 리뷰 : 새 영화리뷰 – 그녀 Her (2013) 

[그녀]는 깊이 있고 울림이 큰 로맨스 영화입니다. 여기엔 스파이크 존스의 역할도 크지만 호아킨 피닉스와 스칼렛 조핸슨의 연기력도 한 몫을 하죠. 하지만 영화의 진짜 장점은 이 로맨스를 철저한 SF적인 세계관과 상상력을 통해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SF의 소재를 빌려 현대인의 고민을 상징화한 로맨스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세계를 지금의 지식과 상상력을 통해 성실하게 정교하게 쌓아올리는 본격 SF인 것이죠. 사람들이 이 장르에서 기대하는 특수효과 같은 건 거의 없지만 최근에 나온 SF 영화 중 [그녀]처럼 이 장르에 진지하게 접근한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일단 제대로 SF에 대해 알아보고(읽어보고) 말을 했으면 좋겠다.

2014.07.20(Sunday) 추가.


See also

SF팬덤은 왜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싫어하는가

SF팬덤에서 바로 어그로를 끌 수 있는 말

“저도 SF 좋아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다 읽었어요!”

이 한마디로 SF팬덤의 뒷목을 잡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SF팬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싫어할까?(무시할까?)

어느분께서도 이를 신가하게 여기셨는지 페이스북에 질문을 올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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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중에서 괜찮은 답변들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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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엄청나게 진부하고 SF문학계에서는 다룰 데로 다뤄서 교통정리가 완전히 끝나버린 개념을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들고 나오는데 기존 작품보다 훨씬 진부하기 때문에 ‘뭐야 이거’? 싶어지는 것이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 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베르베르의 근작들을 읽으면서 아 나도 이런 생각 했던 적 있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았지만 그냥 넘어간 공상을 글로 만들어서, 읽는 사람이 나도 실은 기발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지적 허영심을 살살 긁어주는 특징이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 뭔가 지적인 이미지로 포장한 마케팅을 펼치지만(국내의 경우) 막상 읽어보면 그 지식이란게 잡다하기만 할 뿐 대체적으로 얄팍하다. 물론 개미는 제외.

from RigVeda Wiki (β): 베르나르 베르베르 

딱 완벽하게 들어맞진 않지만, 그럭저럭 그에 대한 심정을 어느정도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그런데 SF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좀 이게 먹히는 듯. 시골의사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소개했을 때 댓글에 이어진 논쟁(이라고 쓰고 코메디)를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책은 어설프게 알고 있는 풋내기 작가의 낙서에 불과합니다. SF적인 요소는 인정할 수 있지만, 그 분야엔 이미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독보적인 자리를 잡고 있지요.

이 작가와 유사하게 과대평가된 작가가 ‘일식’으로 아쿠타카와상을 탄 히라노 게이치로이죠. 역시 풋내기에 눈먼 일본 문단이 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차라리 움베르토 에코와 파울로 코엘류 혹은 보르헤스를 다시 정독함이 더 나을 듯 합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 네이버 블로그  댓글 중

그러고보니 2004년 경엔 이런 글로 SF팬덤의 어이를 상실하게 만든 평론가도 있었지.. (2014.02.14 추가)

심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이남호씨는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삶과 세상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상 과학소설과 구분된다”고 밝혔다.

– 베르베르 ´나무´토대로 한 공모작 나와 – 중앙일보 뉴스

뭐랄까 결코 넘을 수 없는 간격이 느껴진다.

 

관련 코멘트 추가 (2014.02.12 23:26:31) 

베르베르4

관련 코멘트 추가 (2014.02.14 23:26:31) 

Ember

추가 2016.03.02(수요일)

추가 2017.10.28(토요일)

https://twitter.com/lifedefrager/status/924222833047224320

 

P.S.

서울시티 블루스

“케이스는 서울에서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공인된 의료 시설이건 그늘진 무허가 클리닉이건, 강남에서라면 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스프롤에서 흘러나온 온갖 신기술 범죄의 부산물들이 강남으로 모여들었다. 이미 강남이라는 이름은 장기이식, 신경 접합, 마이크로 생체공학과 동의어였다.

밤의 도시는 엉망이 된 사회적 진화론의 시험장과 닮았다. 실험장 전체의 구도는 마치 지루해진 연구자가 엄지손가락으로 계속해서 빨리 감기 버튼을 누루고 있는 것과 비슷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 버리고, 그렇다고 앞질렀다가는 암시장의 얇은 표면장력을 깨드려 버리는 것이다. 어느 쪽이건 사라져 버리긴 마찬가지이며, 기껏해야 레츠 같은 붙박이들의 기억에 희미하게 남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물론 턱뼈는 Jawbone 타워에 보존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거리에서 사업이란, 무의식 속에 끊임없이 울려 대는 콧노래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게으르거나, 부주의하거나, 우아함이 부족하다거나, 잊지 말아야 하는 복잡한 규약들을 어기는 날이면 그 대가로 떡뼈를 잃게 되는 법이다.”

(윌리엄 깁슨, 뉴로맨서 (김창규 옮김)를 토대로 각색)

Plastic surgeon in South Korea faces fine for making towers out of jawbone shards – ABC News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 

SF라는 외피를 걷어내면..

SF 독자의 단추를 누르는 말이 타임라인에 돌았다.

그래서 옛 생각이 나서 답 멘션.

근데 다시 봐도 가슴이 벌렁 거리네.

 

 

답답함에 대해 듀나가 쓴 글이 생각나서 소개를 했다.  메트릭스가 유행일 때 평론가의 너무나 허접스런 철학적 운운에 질린 팬덤을 대편했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