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마치..

이것은 마치…

이우혁

“댄 브라운한테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예수 얘기 다 믿느냐고 물어보세요. 절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환단고기는 소재일 뿐입니다.”

(2009년 3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댄 브라운

“나는 원래 실제 세계(real world)를 좋아한다. 독자들이 내 작품을 읽고 유익한 정보를 얻기를 원한다. 나도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됐지만,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가운데 홀 천장에는 조지 워싱턴이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묘사해서 그를 신격화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 밖에도 피라미드나 워싱턴 소재 모뉴먼트들 등 이번 작품에 나오는 과학 관련 부분은 모두 팩트이다. 또 프랭클린 등의 인물이 프리메이슨이 아니었다는 증거도 없다.”
(2009년 11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See also 들풀.넷 : 움베르토 에코의 NYT 인터뷰 

SF가 인공지능에 관해 던지는 질문들

SF가 인공지능에 관해 던지는 질문들 | 창비주간논평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는 날이 온 것일까?”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압승을 거둔 날 언론매체 곳곳에서 튀어나온 물음이다. 생각보다 얻을 게 많은 질문은 아니므로 일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자. 사람들은 왜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더 적절한 질문이 있는 건 아닐까?

배명훈님의 이 질문이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부해질 대로 진부한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사실 인공지능보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생각했던 인간의 모습이 사실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흥미롭다. 우리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저런 질문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AI를 의인화해서 이해하려는 시도, 인간을 특별시 하는 인식. 이 모든 것이 과학이 발달하면 곧 없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See also AlphaGo : TheLibraryOfBabel

 

 

집안 일이란

이 마인드를 가지고 살려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달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해야할 일들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지적을 받아서야 아, 내가 그걸 생각 못했네 싶은 것을 깨달을 때가 여전히 많고, 경험이 없어서 할줄 모르기 때문에 방치하는 것 또한 여전하다.

남자로 살아왔다는 것이 이렇게나 무섭다.

See also

사고 치려고 열심인 커크냥

알파고와 인공지능, 그리고 우려에 대해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면서 AI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우리 일자리도 빼앗고 AI가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우린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신뢰할 수 있냐는 등의 우려가 그것이다.

see also 왜 최근에 빌 게이츠, 엘론 머스크, 스티븐 호킹 등 많은 유명인들이 인공지능을 경계하라고 호소하는가? | coolspeed 

이와관련, 테드 창은 사고 실험을 해서 ‘인류 과학의 진화’라는 글을 남겼다. AI(메타인류)가 발달해서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다면, 메타인류가 과학분야를 인간보다 저 멀리 앞서서 발견해 나가게 될 것이고 남겨진 인류는 그 결과물을 한 참 뒤에서 해석하게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메타인류 과학이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것이 인류 연구자들에게 끼친 악영향 중 하나는 장래에 자신들이 과학에 대해 독창적인 공헌을 할 가능성은 이제 거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 일부는 완전히 과학에서 손을 뗐지만, 뒤에 남은 사람들은 원래의 연구 분야에서 해석학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메타인류의 과학적 업적을 해석하는 학문 쪽으로.

…(중략)…

우리는 메타인류 과학의 성과에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다. 메타인류의 존재를 가능케 한 여러 과학기술은 본래 인류에 의해 발명된 것이며, 그들은 우리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 테드 창, 인류 과학의 진화(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듀나는 더 나아 갔다.

만약 반혁명을 포기한다면 우리의 위치는 어떻게 될까? 우리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더 이상 능가할 수 없는 존재 밑에서 안존하며 새로운 존재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알게 될까?

이런 의문들로 편두통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나는 호텔 전망탑으로 올라가 역사 선생이 그토록 사랑하는 도시의 모습을 내려다본다. 마치 버스비 버클리의 댄서들처럼(그래, 나는 이제 그가 누구인지 안다) 치밀하고 아릅답게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들의 춤을 넋 놓은 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대충 해답을 알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저들이 이룩한 업적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저 아름다운 기계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존재 이유를 잃고 도시의 틈 사이로 사라진다고 해도 후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들의 앞길을 막는 부모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 듀나, 기생 (태평양횡단특급중)

솔직히 말하면 내 심정도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