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입장에 빙의, '여자한테 무시당해서'를 강조하여 헤드라인을 뽑은 언론, 살해당한 여성을 '화장실녀'나 '노래방녀'라고 대상화하며 부르는 사람들, 기사에 여자친구를 태그하여 "그러니까 내 말 잘 듣고 일찍 다녀ㅋㅋ"라고 훈육하는 남자들을 보고 놀랐다. 살해당한 사람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자신이 당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살해 피해자도 원인을 제공했다'는 시각이 깃들어 보여 분통 터진다.
여성이 '감히'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려고 하거나, 가부장제에서 여성에게 지우는 의무나 미덕을 이행하려 하지 않을 때 폭력으로 처벌하고, 이를 전시하여 일벌백계를 노린다는 것. 피해자에게 요인이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하는 언론 역시 현상 유지를 도모하는 음험한 동조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내가 혹시나 살해되더라도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가치관이나 정신적 문제를 가진 범죄자와 그런 범죄자를 양성한 문화, 안전망을 제대로 구비하지 않은 사회 때문이다. 그러니 만에 하나 내가 살해되어 XXX녀라고 보도되면 여러분들은 저를 대신하여 언론, 이상한 말 지껄이는 여혐종자와 꼭 싸워주시길!그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돼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뭘 어떻게 하다 여성 살해를 하게 됐는지 안 궁금하다니까? 열흘 노숙에 살인까지 저지를 정도면 종로 쪽에는 사람이 안 남아있게? “묻지마 살인”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짜증나는데 진짜 pic.twitter.com/L04RCjZpfH
— 폼 미작성자 찾는ㅠㅠ 딜레탕트 (@D_easer) May 18, 2016
20년 전 이태원에서 한 청년이, 버거킹 화장실에서 미군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언론은 "이태원 살인사건"이라고 했고 "미군이 살인을 했다"고 했죠. 한국 학생이 살해당했다고 한 게 아니라.
— 돌아온 해망재님 (@heyjinism) May 18, 2016
20년 전에도, 가해자를 부각했단 말입니다.
@heyjinism 그 미군이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 어떻게 억울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언론은 물론 없었습니다. 버거킹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그 청년이 어떤 학생이고 어떤 아들이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얼마나 억울한지 말했죠.
— 돌아온 해망재님 (@heyjinism) May 18, 2016
@heyjinism 기자님들은 밥값을 하세요. 어떻게 20년전보다 퇴보를 하고도 밥이 넘어가세요. 범죄에 대해 가해자를 부각하고 피해자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취해야지, 어떻게 피해자를 부각해서 XX녀, 하면서 가해자에게 온정적으로 기사를 씁니까.
— 돌아온 해망재님 (@heyjinism) May 18, 2016
@heyjinism 확인차 검색해보니, 그때 버거킹에서 살해당한 청년도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이번에 강남역 근처 건물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도 같은 나이죠. 그런데 그녀가 얼마나 억울한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말하는 언론이 하나도 안 보이네요.
— 돌아온 해망재님 (@heyjinism) May 18, 2016
@heyjinism 보이는건 가해자가 목사를 꿈꾸던 신학교 중퇴자라는 이야기밖에 없습니다. 여자들에게 무시당해서 억울한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밖에 없습니다.
— 돌아온 해망재님 (@heyjinism) May 18, 2016
아니, 그런거 쓰면서 밥이 넘어가세요? 20년전보다는 좀 발전해야 하지 않습니까?
@heyjinism 젊은 나이에 살해당한 남자가 억울하고 안타까운 만큼, 같은 나이에 살해당한 여자에게도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가해자가 외국인일 때와 내국인 남자일 때는 태도를 달리해도 되는 건가요? 그럴 리 없습니다.
— 돌아온 해망재님 (@heyjinism) May 18, 2016
[이슈&활동 ::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 대한 여성연합 입장] 우연히 살아남은, 나는 ‘여성’입니다. - 젠더 불평등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폭력·살해와 혐오에 대해 한국사회 모든 구성원의 책임의식과 성찰을 요구하며-]
이번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 또한 한국사회의 젠더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고 있다. 언론은 ‘묻지마 살인’, ‘유흥가 화장실’, ‘목사의 꿈’, ‘여자가 무시해서’ 등의 표현을 쓰며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유흥가’, ‘목사의 꿈’, ‘여자가 무시해서’ 등 남성 가해자에 이입하는 표현을 쓴 언론 보도는 마치 피해자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식하게 만드는 기존의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성폭력에 대해서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잘못된 시각은 수많은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여성 피해자를 낙인찍는 방식으로 작용해, 젠더 불평등을 심화·재생산 해왔다. 언론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보도하여 더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공론을 만들어 나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
더불어 혹자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성대결로 몰아가지 말라,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일반화하지 말라고 주장하며, 추모의 물결과 여성 폭력·살해에 반대하는 행동이 본인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것 같아 불쾌하고 불편하다고 한다. 그들의 ‘어떤 불편함’을 없애는 방법은 여성들로 하여금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혐오·차별·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젠더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힘쓰는 것이다.
["말조심해야지" 강남 묻지마 살인에 위축된 남성들 | Daum 뉴스] - 국민일보 폐간 원합니다. -- Nyxity 2016-5-24 10:48 am
[“○○녀 만드는 언론도 가해자다”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에는 ‘묻지마 살인’, ‘OO녀’, ‘꿈이 많던 신학생’ 등의 제목들이 달렸다. 한 추모객은 “언론이 피해자 대신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기사와 제목들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건 보도에서 화면을 무분별하게 보여주는 것은 범죄 예방의 목적이 아니라 선정적인 보도일 뿐”이라며 “피해자와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되고, 시청자 또한 공포와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우회는 “특히 이 사건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이기에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은 여성들에게 공포를 심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시당하면 못참아'…메슬로우 4단계 욕구 때문에 잔혹 범죄 | 연합뉴스]
[한국일보 : : "김치녀·개똥녀·군삼녀… 女가 싫다"]
이 단어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시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상징어에 가깝다. 이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남성들에게 우리나라 여성은 '여성이란 이유로 곤란을 회피하고 권리는 동등하게 가져가려 하며 사회 활동을 하는 남성에게 기생하려는 무능하고 비열한 집단'으로 규정된다. ‘디시인사이드’ 주식 갤러리의 한 이용자가 작성했고 ‘일베’에서 널리 읽히는 ‘보트릭스(여성의 성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과 매트릭스를 결합한 단어) 이론’이란 게시물은 “여성과 국가가 연애ㆍ결혼ㆍ가족이라는 거짓된 환상을 주입해 남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카드뉴스] '강남역 화장실 살인녀'와 #강남살인남 - 경향 ‘향이네’]
사건 나자마자 경찰은 여러 사실관계와 동기 중에서도 "여자가 무시해서 죽였다"는 범인의 진술을 그대로 언론에 흘렸고 언론은 여러 사실관계와 동기 중에서도 "여자가 무시했기 때문에" 죽였다며 수많은 여성혐오적 기사를 쏟아냈는데.
— 아밀 (@amil_shed) May 23, 2016
그래서 여자들이 경찰과 언론에게 여성혐오 하지 말라고 화 내니까 갑자기 경찰과 언론들이 그거 여성혐오 아니었다고 함.
— 아밀 (@amil_shed) May 23, 2016
많이 양보해서 사회학적 여성학적 맥락 죄다 걷어내버리고 그 사건이 정말 '혐오범죄'는 아니었다고 치더라도, 그렇다면 애초에 그 사건을 여성혐오적으로 개념화하고 혐오를 확대 재생산했던 경찰과 언론이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아무도 안 함.
— 아밀 (@amil_shed) May 23, 2016
우리가 18일에 신문 방송에서 본 것은 대체 무엇이었습니까? pic.twitter.com/qMh7rbs441
— 아밀 (@amil_shed) May 23, 2016
피해 여성들, 아무 잘못 없는 정신질환자들, 화장실 문제로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에게 문제의 책임을 전가하지 마세요. '남자를 무시한 여자들'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혐오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말해온 것은 바로 경찰과 언론 당신들입니다.
— 아밀 (@amil_shed) May 23, 2016
[“언론, 여성혐오 범죄조차 ‘포르노’로 소비” - PD저널]
언론은 이런 식의 보도가 잘못이라는 걸 모를까. 최 기자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한국기자협회 정관에는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권고 기준, 성폭력 사건보도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 안에는 ‘언론은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성향, 비정상적인 말과 행동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공포심을 조장하고 혐오감을 주는 내용의 보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전달하여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성 범죄의 원인으로 개인의 정신질환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의 문제만 부각하지 말고 그 근본 원인이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등의 공정하고 윤리적인 원칙들이 상세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언론이 여성을 비롯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상시적으로 저지르는 2차 가해와 같다.”
“증오범죄법 또는 범죄학적 관점에서의 ‘증오범죄’ 개념만을 적용한다면 강남역 사건은 증오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범죄발생 이후 벌어진 충격적인 사회적 반응과 그 맥락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전혀 삭감되지 않는다. 오히려 범죄 직후 벌어진 사회적 반응은 진짜 ‘증오범죄’의 징후와 매우 유사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증오범죄의 판단 기준이 되는 지표는 바로 소속 구성원들이 해당 사건을 자신의 일로 느끼는지 여부다. 그 사람이 아닌 내가 속한 집단을 공격한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추모공간에 등장한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쪽지의 문구는 이 사건을 ‘증오범죄’로 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날 집담회에선 시민들도 적극 발언했다. 한 시민은 “‘슴만튀’(가슴을 만지고 튀는 행위), ‘엉만튀’(엉덩이를 만지고 튀는 행위) 등의 행위는 범죄인데도 일종의 유희처럼 표현된다. ‘몰카’ 역시 예능에서 쓰던 말을 여성에 대한 범죄에 그대로 적용하는 케이스인데, 이런 식의 ‘가해자의 말’을 언론이 받아쓰고 쉽게 사용해선 안 되는 게 아닌가. ‘강제촬영’ 등 명확한 언어를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이러한 노력과 함께 발전해 왔다. 노예제가 왜 나쁜지 논쟁을 시작했고, 식민주의가 왜 획기적인 경제 성장 방법이 아닌지(많은 서구권 국가에서는 식민주의, colonialism을 “국외에서 저렴하게 노동력 및 자원을 조달하는 새로운 성장 방법”으로 바라보았다, ‘노예’와 ‘수탈’을 말이다) , 왜 피부색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참정권을 얻어야 하는지, 왜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구직의 기회를 갖고 피부색이나 성별, 장애여부, 성정체성 등으로 인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지난한 설득, 논쟁, 싸움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동물의 권리로까지 생각의 폭을 넓혀왔다.문제 인식은 문제 개선의 첫 걸음이다.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거리로, 온라인에서 쏟아져 나와 이제까지 하지 못하고 있던 이야기를 하는지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음을 열고 듣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그리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길 바란다. 이제는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메시지의 내용을 훑어보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식의 성격이 더욱 분명해진다.
즉 다수의 추모 문구는 이 사건을 단지 운이 심하게 없었던 피해자와 정신병에 사로잡힌 살인범 사이의 우연적이고 개인적인 해프닝으로 묻어두기를─“남혐”을 비판하는 적지 않은 남성들이 바로 이렇게 판단하는데─거부하며, 피해자의 죽음을 사적 개인의 영역을 초월한 일종의 일반적인, 공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또 그렇게 인식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 물론 (아마도 친분이 있는 이들이 남겼을 메모들을 포함해) 한 개별적 인간으로서 피해자의 때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지만(입장1),
- 메시지의 상당수는 피해자가 단순히 한 명의 인간 혹은 개인으로서라기보다는 “여성” 정체성으로 인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러한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깊은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다(입장2).
- (입장2에서 출발했을) 또 다른 목소리는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자체를 부인하거나, 혹은 이 사건이 여성혐오로부터 촉발되었음을─정신분열증 여부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여성혐오적 사고체계로부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형성했음이 분명함에도─외면하거나, 여성혐오 및 성적 불평등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스스로를 포함하는 남성들이 언제든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한다(입장3).
피해자의 신상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며 많은 추모자들이 피해자의 신상을 상세히 확인하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이 사건이 어떤 특정한 개인이 아닌 “(젊은) 한국여성A”, 즉 나이와 성별 모두에서 언제 어디서든 경멸받고 비난받고 구타당하고 심지어는 살해당하기까지 하는 ‘만만한’ 집단으로서─19일에는 아무 관련도 없는 25세 여성의 눈에 BB탄총을 맞추고 달아난 20세 남성의 사건이 보도되었다─젊은 여성 전체가 처한 상태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성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공유해온 여성혐오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정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여성혐오는, 여성혐오적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분명 자기 자신이, 친구 및 동료가, 존경하는 사람이, 가족과 친척이 잘못된 사고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사라지지 않을 때 누군가는 평생의 트라우마와 원한, 공포를 떠안고 살아가야 하며,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분노하기 전에, 그 말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게 낫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선택을 고민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공식적인 교육과정에서 단 한 번도 여성 및 각종 소수자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러한 소수자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물론이고) 그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교육받은 적이 없으며, 이 상황은 대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교육과정은 여전히 이 문제를 철저히 개개인의 우연적인 상황에 맡겨 둔 것처럼 보인다. 주변의 선배·동료들 중 학부생을 가르치는 이들은 종종 토론수업에서 여성혐오나 소수자혐오가 버젓이 튀어나올 때의 당혹감을 이야기하며, 학교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를 깔고 있는 진술이 많은 지지를 받는 현황을 개탄한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서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더 이상 다른 이에 대한 공감이 불가능해진 곳이 되었다는 진단을 내리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우리는 여성혐오가 무엇이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성소수자는 괴물이 아닌 인간이며 그에 대한 혐오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간을 피부색과 출신지에 따라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한국이 누군가가 스스로의 의도와 무관하게 잠재적 피해자로, 또 잠재적 가해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곳이며 더 이상 그런 곳이 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정리뉴스]이것은 왜 여성혐오범죄인가 - 경향 ‘향이네’]
‘특정인’ vs. ‘여성 중 아무나’‘아무나’ vs. ‘여성 중 아무나’
후자의 문제인 이상 여성혐오범죄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한국법에서는 별도 구성요건이 있어서 법정형이 다른건 아닌데, 양형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고려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범죄의 해악을 중하게 보는 이유는, 대개 어떤 (정당하진 않지만) 분노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범죄양태가 잔혹한 경우가 많고, 어떤 집단(여성) 일반을 대상으로 삼기에 그 집단이 속한 모든 구성원들이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는 점에 있고요.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폭력’이면 잠재적 대상 범위가 한국인 전체가 되니까 ‘내 문제’로 여겨질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그런데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무슬림 .. 이런 식의 특정 집단을 향한 범죄가 빈발하면, 그 집단 구성원들에게 당장 ‘내 문제’가 되는 겁니다.
- 그래도 잘 이해가 안가시면, 어떤 나라에 이민을 갔는데 오로지 ‘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가하는 범죄가 빈발하는 상황을 가정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그 나라에서 살만할 것 같다고 생각하신다면, ‘오버’하지 말라고 말할 자신이 있다면, 이 문제도 심각하게 안보시겠죠.
이쯤되면, "그거야 실제로 혐오범죄여서가 아니라, 혐오범죄로 규정했기 때문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하겠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남성을 살해했고, '남성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나서서, "이것은 남성혐오범죄다"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성들이 지금처럼 분노할까요? "밖에 돌아다니기가 무섭다"며 공포에 떨까요? 혐오범죄적 양태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남성혐오범죄다'라고 규정해도 별 파급력을 갖기 어렵다는 겁니다. 강남역 사건이 단순히 '한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준 것은, 이 사건이 어떤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우리 사회가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고, 사회적 '힘'을 가지고 있고, 이미 여성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강남역 사건은 그 '결과'이거나, 아니면 문제를 더욱 '증폭'시킨 것일 뿐입니다. 아무런 맥락 없이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마지막 질문. 강남역을 굳이 찾아가 추모하고 인터넷에서 분노와 공포의 글을 남기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범죄가 아닌데도 누군가가 혐오범죄로 규정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정신병력 때문이니 혐오범죄가 아니니까 오버하지 말라고 하면, "아, 그렇군요"하고 진정될 수 있을까요?
저 사람이 그냥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미친놈이라고 믿고싶겠죠. 하지만 아니에요. 인터넷에 팽배한 여성비하 글들, 김치녀들에 대한 조롱,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비유와 비하들 저 사람에게 무의식적인 여성비하적 생각들을 심어주고 그를 강화시킨 거라는 생각은 안드시나요. 한국의 강력범죄 피해자의 여성비율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했을때 기형적으로 높습니다. 성별 대결이 아니에요. 한국에서 여성들이 강남역이라는 대도시의 번화가에서 화장실을 갈 때 살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를 안지 않고 살게해달라는 외침이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으신가요?
애초에 가해자가 왜 이런 변명을 생각하고 둘러대고 그게 보도될 수 있는가... 지금 넘치는 여성 혐오 담론이 이런 핑계의 여지를 만들어준 것. 여자는 범죄와 욕망의 대상이 되지만, 남자를 존중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도저히 이게 왜 여성혐오범죄인지 모르겠다면 여성 대신에 유태인으로 말을 바꿔서 읽어봐라.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유난히 많고 뮌헨 번화가에서 유태인을 상대로 살인이 일어났다.'자. 유태인들에게 좀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해봐.
— 윤찬호 (@erif61) May 18, 2016
나치시절에도 유태인들 숨겨준 독일사람들 많았어 모든 독일인이 나쁜 게 아니야. 모든 독일사람들을 매도하지 마라. 이렇게 말해봐.
— 윤찬호 (@erif61) May 18, 2016
일베들이 강남역에 붙였다던 분탕글도 결국 피해자 서사가 형성되고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일 것이다. 남자들에겐 가해자 서사가 훨씬 유리하다. 기분에 따라 여성들을 통제할 수도 공격할 수도 보호할 수도 있다. 자기를 이렇게 유리한 자리에 올려주는데
— 봄상추 (@springlettuceee) May 19, 2016
살인 피의자가 ‘여성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범행동기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언론은 ‘묻지마 살인’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이 사건을 묘사했습니다. 심지어 한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성혐오를 너무 강조하면 이 사건의 본말이 전도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까지 했습니다. 정말 본말이 전도된 진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트위터에는 ‘묻지마’ 규정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정신병자의 묻지마 살인’이라는 규정은 이 사건의 본질을 회피하거나 은폐하려는 남성중심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러니까 여성은 밤 늦게 돌아다니면 안 돼'라고 말합니다. 남자친구는 ‘모든 남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살인자의 책임을 묻는 척 하다가 순식간에 피해자의 책임을 강조하기 시작합니다. 남성들이 ‘책임으로부터의 도피’에 열중하는 동안 여성들의 공포는 가중됩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고, 술을 마시다가 잠깐 화장실에 갔을 뿐인데 23살 학생은 어깨와 가슴을 수 차례 흉기에 찔려 살해 당했습니다. 이번 일이 조용히 넘어간다면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트윗은 2만회 가까이 리트윗됐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는 매우 본질적이고 주류적인 현상입니다. “남성들의 공포는 ‘더치페이 하지 않는 것’ 여성들의 공포는 ‘살해당하는 것’”이라는 진술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의뢰로 ‘여성정책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했을 때 ‘여성’ 키워드는 ‘경제’ ‘통일’ ‘일자리’ 등 다른 주요 키워드들을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여성혐오’ 키워드는 3년 동안 무려 21.6배나 급증했습니다.그러나 정치는 여성혐오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려는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선미 의원이 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폭력사이트인 소라넷 서버 폐쇄를 주도한 것이 기억에 남는 정도입니다.
[한국일보 : : [페미사이드 쇼크] 극단 치닫는 女 혐오… “무섭지만 굴하지 않겠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차별과 혐오에서 출발한 이 잔혹한 범죄에서 한국사회 내 여성의 소수자 지위를 읽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이라는 집단은 숫자가 많고 구성원의 성격이 이질적이기 때문에 소수자 정체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하지만 “피해자 집단인 여성들이 일반 혐오범죄와 동일하게 거의 일관된 공포, 분노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여성이 생각보다 동질적 정체성을 가진 하나의 소수자 집단이며, 억압받고 범죄에 노출되며 차별 받는 소수자라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장 심각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공공연히 여성혐오를 발화해도 되는 사회, 비판을 받더라도 일부는 이런 주장에 공감할 것을 누구나 아는 사회라는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 김모(34)씨가 “여성이 무시해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납득할 만한 사유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건이 알려진 직후 인터넷 공간에는 ‘여자가 그 시간에 술이나 먹고다니는 게 문제’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여성이 남성처럼 강해지려 하지도, 남성을 혐오하며 위축되지도 말라고 말한다. 홍성수 교수는 “이런 사건에는 움츠러들거나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전형적인 모습인데 초기 단계에서부터 서로 연대하고 힘을 모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권김현영 교수는 “지금 필요한 건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는 사회에 살 수 있다는 태도를 국가기관부터 언론까지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무서워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우리는 가해자의 그런 언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해요. 무섭지만, 무서워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어야 합니다.”
["딸 낳으면 큰일 나는 세상"..女 표적범죄 증가에 '불안' | Daum 뉴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성 폭력에 대한 인식과 제도적 미비가 결합해 빚어진 비극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한남대 경찰행정학과 탁종연 교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분석이 전무한 상태"라며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 범죄'는 별도로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인선 박사는 "데이트폭력은 폭력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져 신고되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여성을 가해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고 분석했다.
["정신병의 증상은 사회적 맥락"... 서천석 정신과 전문의 '강남 살인사건'은 "여성혐오" 지적 - 경향신문]
문제는 그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고 그것은 ‘여성혐오’다. 이것이 그의 망상이라고 하더라도 그 망상은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고,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이, 남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것에 비해서 특별히 남자들에게 더 기분나쁜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말할 근거일 수 없다. 오히려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 범죄의 이유로 ‘여자들의 무시’ 운운하는 상황이 여성 혐오 이슈를 우리가 중요한 문제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사건은 분명한 여성 혐오 범죄다.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닌 것이 아니라 그가 정신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성혐오 범죄인 것이다.
이 사건이 큰 이슈가 된 이유는 한 범죄자의 말 때문이 아니다. 그 범죄가 일어난 우리 사회의 위험한 현실 때문이다. 강력 사건의 희생자 비율이 남성에 비해 여성이 8배가 넘는 통계로 알 수 있듯 여성들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여성 차별에 더해서 최근 잘못된 여성 혐오 의식으로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다. 여성 혐오 의식의 확산으로 범죄의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여기니 범죄의 잔인성은 증가하며 모방 범죄도 늘어난다.이 문제로 불필요한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노력이다. 여성 혐오 의식이 정신병의 증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면 그 심각성을 인정하고, 사회 전반에서 이런 의식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구조적 개혁을 하고 의식의 변화를 추구해야지 지금 뭐를 하고 있나 싶다. ‘정신병이 범죄의 원인이냐? 아니면 여혐이 원인이냐?’ 이런 수준 낮은 논쟁은 이젠 멈춰야 한다.
[[사설]강남역 여성 살인에 대한 여성혐오적 시선을 혐오한다 - 경향신문]
그러나 이 사건이 최소한 ‘여성이라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살인’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강남역과 인터넷을 달구는 수많은 여성들의 추모와 공포의 공감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여성을 특정한 범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몰고 가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이번 사건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 한국 사회 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여성 누구라도 부지불식간에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그래서 일상적으로 공포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실상을 이 사건은 고발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가해자는 남성이 98%로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피해자는 여성이 84%로 나타났다.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성별로 뚜렷이 구별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불안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여성비하글들과 성차별적 언어들이 끔찍한 범죄의 단초가 됐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전체 여성을 표적으로 한 범죄 행각에서 20대 여성이 희생당했는데도 그 근본 원인인 성차별을 성토하는 것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하다.혐오해야 할 것은 여성혐오 살인 행위만이 아니다. 여성들의 추모열기를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여성혐오적 시선 역시 혐오스러운 것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은 사회라 해도 여성을 근거 없이 공격하는 담론들이 공공연히 유포된다는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병들었는지 우리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
[[사설]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의 중요성은 어쩌면 단순 살인일 수 있는 범죄에 여성들의 분노가 결집하는 ‘현상’ 그 자체로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 여성들의 폭력에 대한 불안감이 이 사건을 계기로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성폭력은 해마다 늘어 2014년 10만 명당 58.2명으로 10년 전(2005년 23.7건)보다 2.5배나 늘었고, 범죄 불안감을 느끼는 여성은 2010년 67.9%에서 2014년 70.6%로 해마다 늘고 있다. 데이트 폭력 등 여성 대상 폭력은 점차 잔혹해지고 있다. 이젠 우리 사회가 여성 대상 범죄의 실태와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실질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설] 분노의 연대 몰고 온 ‘여성혐오 범죄’ : 사설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살인 피의자는 경찰에서 “여성들에게 무시를 많이 당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피의자에게 조현증 병력이 있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기는 어렵다지만, 처음부터 여성을 겨냥해 죽이려 했다는 것이니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냥 ‘마주치는 아무나’가 아니라 ‘여성 중 아무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여성 혐오 범죄와 다름없다.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라는 말은 지금껏 무수히 벌어진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 살해에서 거듭 내세워졌던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사회적 불만과 대중의 절망을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해 적대감과 혐오를 키우는 잘못된 풍토가 번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 터다. 그런 공격본능과 혐오감을 실제로 여성에게 표출하는 것이 곧 여성 혐오 범죄다. 이번 사건은 여성 혐오가 살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사건 뒤 강남역 10번 출구의 벽이 추모 쪽지로 뒤덮이고 인터넷에 추모의 물결이 크게 이는 것도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가 그만큼 큰 때문이겠다.
왼쪽 채울 수 있다면 남성혐오가 만연하다 인정하겠다. pic.twitter.com/RNlsu8UgIf
— Namu(南無) (@Namu2Namu) May 20, 2016
"내 여자친구•아내•어머니•딸일 수도 있었다" VS "나일 수도 있었다"
— Shadow_Pins___ (@Shadow__Pins) May 19, 2016
둘의 간극을 보지 못/안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자는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안 하는 거죠.
이거 왜; 나는 이런적이 없었어서 좀 당황스럽
— 꺄르르 (@worldsjh) May 20, 2016
강남화장실살인사건을 여성이 처한 위험이 아니라 약자가 처한 위험으로 치환하려는 분들의 모습에서, 미국에서 흑인청년들이 살해되 촉발된 blacklivesmatter 운동 당시 그게 불편했던 이들이 alllivesmatter로 맞섰던 것이 떠오른다.
— Nakho Kim (@capcold) May 19, 2016
그걸 다루던 수업시간에, 학생 팀 발표에서 들은 멋진 비유: "우리 집에 불이 붙어서 우리집 어떻게 좀 해줘 외치는데, 다른 집 사람들이 모든 집은 다 소중하다 훈수두는 격." 다 소중하다는 원론 너머, 불을 꺼야할 것 아닌가.
— Nakho Kim (@capcold) May 19, 2016
중앙은 여혐사건에 무게를 두는 느낌이 강하고, 동아는 말미에 가해자의 정신병력을 언급했지만 전반적으로 왜 여성들이 이렇게 반응하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조선은 성별대결 구도, 여혐범죄 아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pic.twitter.com/0ITzZV3hw5
— 하이네 (@kor_Heinrich) May 20, 2016
"모든 여성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게 '여성 혐오'가 아니다. '화려하게 치장한 강남 커피샵에서 애플 노트북을 켜대면서 요즘 남자들 하면서 분노하는 저런 여성들'과 '비정규직여성 노동자', '이기적인 한국 여성'과 '사회 하층의 중국인 안마사 여성'을 갈라 놓고, 보호 받아야할 여성의 인권 여부를 자신이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성혐오다. 성녀와 창녀 이분법으로 시작된 저 여성 혐오의 역사는 유구하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공기 같다
피의자가 정신질환자라서 달라지나?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여성 입장에서 전혀 그렇지않다. 그는 남성 6명을 보내고 처음 나타난 여성을 살해했다. 여성 정신질환자가 여성 6명을 보내고 남성을 살해할 가능성을 떠올려보자. 경찰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살인이라고 발표했다. 범죄심리학이나 수사 기관 내 체계에서 이것이 여성 '증오' 범죄는 아닐 거라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뚜렷한 신념을 가진 '헤이트 크라임'이 아니라는것이다.그러나 여성 '혐오' 범죄는 맞다. 그가 여자한테 실제로 무시를 당했든 아니었든, 망상이 있든 없든 사회적으로 결정돼 있다. '여자한테 무시당하는 것은 남자로서 쪽팔리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고로 그런 여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남자한테 무시당하는 것은 여자로서 쪽팔리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고로 그런 남성을 해칠 수 있다'라는 명제보다 훨씬 이해가 즉각적이고 자연스러운 한 이것은 여성 혐오 범죄다. 정신질환자를 모두 가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정신질환자 아닌 많은 남성들이 여성을 살해한다. '감히' 대들었다고, 무시했다고, 헤어지자고 했다고.
어떤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으로 느끼는 문제를 두고, 추모현장에 나와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마세요' '여성 혐오, 남성 혐오 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요'라는 피켓 따위를 들고 있는 이들한테 줄 동정이 나는 전혀 없다. 절대로 절대로 이 문제에 대해서 타협하지 않겠다.
[[권석천의 시시각각] 묻지마? 뭘 묻지 말라는 건가]
그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나는 여성 혐오를 보았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불안함을 호소하는 수천·수만 개의 포스트잇에서, 하루하루 성추행과 성희롱에 노출돼 있다는 여성들의 증언에서, 굳이 그곳까지 나와 조롱을 내뱉는 남성들의 모습에서. 여성 혐오는 여자를 싫어하거나 꺼리는 것만이 아니다. 여자라면 환장하고, 차별하고, 편견·멸시·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모두 여성 혐오다(김수아 서울대 교수 2015년 논문).강남역 사건 피의자 김씨는 여성들이 “나를 공격하고 괴롭혔다” “담배꽁초를 던지고 나를 지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가 정신질환자라고, 그의 적대감이 막연하다고 ‘묻지마 범죄’로 불러야 할까. 백번 양보해도 여성이 언제, 어디서든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회적 현실과 맥락은 변하지 않는다. 남성들이 시내버스 안에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여성을 폭행하고, 성폭행 신고를 한 14세 소녀를 병원으로 찾아가 살해하고, 인터넷에서 여성을 ‘김치녀’ ‘상폐녀(상장폐지녀)’ ‘삼일한(여자는 삼일에 한 번 패야 한다)’으로 부르는 사회다.
정부 발표대로 화장실 개선한다고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남녀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은 빼놓은 채 ‘묻지 마’ 딱지를 붙이는 게 옳은가. 대체 뭘 묻지 말라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묻고 싶다.
하지만 “여자가 그 시간에 술을 먹고 돌아다니니 죽는 게 당연하다”, “예뻤으면 다른 걸로 찔렀겠지”, “김치녀 한 명 사망 축하” 등의 막말을 일삼고 추모 현장에서 분탕질을 치는 일부 남성들은 노력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언론은 ‘강남 20대녀’ ‘묻지마 살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성혐오가 확대될 우려’ 등의 키워드에 집중하느라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건 아니니까 일반화하지 말라”는 불만도 한심할 따름이다. 여성들에게는 이 모든 게 더욱 섬뜩한 공포다. 그 사실을 왜 아직도 모르는가? 혹은 알고도 부정하는가?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악당이 아니다. 정신 병력이 있는 한 개인의 병리적 일탈로 축소해 바라볼 문제도 아니다. 인터넷 창만 켜 봐도 넘쳐나는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글들이 문제의 진짜 근원이다. ‘여성’을 타겟으로 한 범죄가 발생했고, 20대 여성이 죽었는데도 그 원인인 여성혐오에 대해 논의하고 반성하는 것조차 못 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면, 이런 사회에서 왜 살아가야 하는가?
[transproms :: 여성혐오표현/여성증오범죄의 일반성과 특수성]
비유하자면, 땅 밑으로 어떤 용암이 흐르고 있던 겁니다. 여성들은 대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산발적인 문제제기에 그쳤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제대로 폭발하게 된 것이죠. 강남역 사건은 그런 계기를 제공해준 것이고, 그로 인한 반응을 주의깊게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해당 사건 자체가 증오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사실 실정법이 없어서 법적 실익도 없습니다. 양형에 영향을 어떻게 미칠지는 미지수고요) 부차적인 문제죠. 설사 그 사건 자체가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해도, 이 사건으로 나타난 후폭풍의 의미는 전혀 삭감돼지 않거든요. 그런 점에서 일부 전문가들이 "증오범죄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진단한 것은 나름대로의 판단이겠지만, 저는 기다 아니다로 몰고가면 곤란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회적 현상으로서 증오범죄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는 식으로 페북에 적기도 했지만, 어제부터 걸려온 기자들의 전화에 대해서는 "사건 자체가 증오범죄인지 여부는 지금 굳이 가릴 문제도 아니고, 굳이 답하지 않겠다"고 다른 논점만 얘기하기도 했었습니다.땅 밑에 용암이 흐르고 있다면, 당연히 그걸 제거하는게 근본적인 해결방법이겠죠. 거대한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그것만 잡으려고 하면 안될겁니다. 용암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용암이 화산폭발 같은 극단적 형태로만 분출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즉, 혐오는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그보다 낮은 수위의 여러 종류의 폭력이나 차별 등으로도 쉽게 이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책 (예컨대 치안 강화) 마련에만 집중하는 것은 -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 적절치 않습니다. 여성들이 처해있는 여러가지 차별과 적대, 공포의 원인을 해결해야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겠죠. 또한 이 사건은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도 얼마든지 이렇게 '물리적 폭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여성 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무슬림 등 한국에서 취약한 지위에 놓여 있는 소수자들은 이미 혐오표현에 노출되어 있으며, 언제든 그런 폭력과 차별의 희생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 적대와 폭력에 맞서야 합니다.
[“여성에게 조심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화가 난다” : 여성 : 사회 : 뉴스 : 한겨레]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이번 사건은 개인이 정신질환이 ‘있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차별과 불안을 경험한 여성들이 반응하는 사회적 맥락이 있는 것이다. 여성단체가 나선 것도 아니다. 거기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 과정 자체가 (여성 혐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물꼬를 텄다고 본다”고 말했다.
살인자가 정말 여성혐오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었는지는 이미 메인이 아닌 것 같음. 이 문제에 우리 사회가 보인 반응이 명백한 여성혐오 그 자체임. 이건 더 이상 뭘 분석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거 아니냐고. 돌아가는 꼴들을 봐라
— 뚝섬플레이스 (@ddooksomeplace) May 23, 2016
강신명 경찰청장 “대한민국에 아직 ‘혐오범죄’ 없다” https://t.co/KQLrgtfc8w
— 간손미의 미축 (@muknamul) May 24, 2016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일베가 허락한 추모
경찰이 허락한 혐오범죄 ←new!!
-화장실에 1시간 30분 동안 대기하고 있을 때 화장실에 온 다른 남성은 그냥 내보냈다, 그럼 여성을 노린건가.△여성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그때 들어온 다른 남성은 일부러 해치지 않고 내보냈다고 한다. 피해여성은 안타깝게도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처음부터 살인의도를 갖고 화장실에 들어간 건가.
△피의자는 “거기에 들어오는 여성을 상대로 하겠다”고 답했다.
‘묻지 마 살인’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여성 혐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은폐, 방조되면서 많은 여성들이 죽어 갔다. 인질 살해가 벌어지기 며칠 전 칼에 찔린 부인이 경찰을 찾아 상담을 요청했지만 미온적인 경찰 대응에 그냥 돌아온 후 벌어진 안산 인질극 사건, 한 여성이 납치돼 112에 신고했으나 살해돼 시신까지 훼손된 오원춘 사건 등 피해 여성이 도움을 요청하고 일정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생명을 잃거나 위협받는 일들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어떤 형태든 약자에 대한 혐오는 인종 차별이다. 특히 여성 혐오야말로 인류의 절반을 차별하고 공격하는 반인륜적이며 용서할 수 없는 범죄 행위다. 이런 일이 논란이 된다는 현실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성차별적인가를 반증할 뿐이다.
범인의 진술과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만 놓고 봐도, 강남역 살인 사건은 개인의 정신적인 결함보다는 여성혐오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하다는 말은, 남자들이 죄다 칼 들고 여자한테 덤벼들 예비 살인자라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혐오의 정서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다는 뜻이다.[[야! 한국사회]그런 여성혐오가 억제력을 잃고 터져 나온 것이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그러니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한다면, 이때 보일만 한 정상적인 반응은 자신의 여성혐오를 반성하거나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한데도 이를 부정한다. 이는 이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외면하는 것이다.
그동안 ‘~녀’들의 죽음을 수없이 놀려오던 언론은 여성들의 분노가 폭발하자 남자의 기가 죽을까봐 어쩔 줄 모르고, 듣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이 분노를 저지시키려고 애쓰며 할 말을 가르쳐준다. (남성의 여성) 혐오에 혐오로 맞서지 말자고 할 때는 ‘남성혐오’라는 말을 아주 쉽게 선택하지만,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에 있어서는 혐오라는 말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의 목소리를 죽였다. 조심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죽인 결과다. 여성에 대한 무시는 규범으로 정착했으며 여성은 무시당하는 규범에 적응해왔다.
개인의 범죄행위는 여성혐오 때문‘만’은 아닐지 몰라도, 그러한 범죄가 구성되는 요건에 여성혐오는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정신질환과 여성혐오를 분리하려 하지만 가해자가 구축한 언어는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여자들이 무시해서”라는 말을 그가 하는 이유는 ‘남자를 무시한 여성에 대한 처벌’에 사회적으로 관대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살해(femicide)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다이애나 러셀에 따르면 ‘낯선 여성혐오자(misogynist strangers)에 의한 살해’도 여성살해의 종류에 속한다.
경험한 자의 목소리를 빼앗아 할 말을 정해주는 태도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경험한 자의 구체적인 언어는 해석하는 자의 언어를 거치면서 많은 사실들이 탈락되고, 실질적 공포와 감정은 해석하는 자의 불쾌감 앞에서 좌절한다. 젠더 문제를 축소하고 계급 문제를 강조하며 가난한 남성과 여성 일반의 가짜 전선을 만들어낸다.[경찰은 "여성혐오 범죄 아니냐?" 지적에 최종적으로 이런 답을 내놓았다]
"여성혐오 범죄는 학술·전문적인 부분도 있고 처음 접해보는 용어라 정확하게 입장을 표명할 위치에 있지 않다"그동안 수차례 전해진 '여성혐오 살인이 아니다'라는 경찰의 발표는 '우리도 잘 모른다'는 말과 같은 의미였던 것일까?
증오범죄(hate crime)를 ‘관용 없이 강경 처벌’하고, 공공연한 혐오를 촘촘하게 규제할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보수 종교계의 이해관계에 따른 방해 공작으로 번번이 제정이 가로막혔다. 시민 사회의 오랜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시기상조’로 여겨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의 소수자 혐오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사회적 소수자를 모욕하고 저주하는 혐오 표현이 언론매체 광고를 차지하고 정당 공보물에조차 버젓이 실리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사회권규약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 등이 2007년 이후 수차례 이상 강력히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언젠가 만들어야만 할 법, 어서 제대로 만들자.
[" '여성혐오' 표현 때문에 지지고 볶고 싸울 필요 없어" - 오마이뉴스]
"폭발한 거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대부분의 여성이 (지금까지의 억압에)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침묵행진을 했던) 그날, 저뿐 아니라 나이 든 여성들이 와서 그동안 겪은 여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젊은 여성들도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4년 동안 일하며, 많은 여성 살인 사건을 봐왔다. 이런 사건들이 지금까지 계속돼 온 것이다. 최근에는 온라인에서 일간베스트와 메갈리안의 논쟁이 이어졌다. 그런 논쟁이 (이번 사건으로) 오프라인에서 터진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여성혐오가 생긴 게 아니다."
"학교 체벌 금지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이 모든 교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않는다. 모든 교사가 가해자는 아니지만, 어떤 아이들도 피해자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법률적으로 제한한다는 취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일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해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보고, 관련 규정을 마련하자는 거다."
"여성이 제일 만만해서 그런 거 아닌가. 또 하나는 인정하기 싫어서 아닌가.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을 차별하는 발언을 대놓고 할 수 있나? 못한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박살나기 때문이다. 종교는 말할 것도 없다. 전쟁까지 부를 수 있는 사안이다. 민족 문제도 마찬가지고. 혐오라는 이름이 붙은 집단을 보면, 여성과 동성애자 등 대개 약한 집단이다. 그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싫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여성혐오'는 '여성 혐오'가 아니다? : '여성혐오' 그것을 알아보자. | 1boon]
[[제1114호]과민반응? 아니, 모두의 문제 : 표지이야기일반 : 표지이야기 : 뉴스 : 한겨레21]
그래도 여전히 경찰학적·형사법적으로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는 게 무리이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면, 여성혐오‘적’ 범죄, 여성혐오와 ‘관련 있는’ 범죄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언어의 ‘전유’를 중시하는 것도 타당하지만, 불필요한 논쟁과 대립을 피해서 진짜 핵심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에 무리하게 ‘여성혐오범죄’라고 규정한 것이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다는 의견도 있지만, 거꾸로 그렇게 규정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공론화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쯤에서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며 이 사건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 사회가 정말 ‘진공상태’였다면, 가해자가 굳이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해 범행했다”고 진술하고, 굳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골랐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격한 반응을 보였을까?여성혐오범죄라는 개념 규정이 그리도 중요하다면, 그 개념은 포기한다고 치자. 그럼, 이번 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보여준 반응의 의미를 과소평가해도 될까? 여성들이 호소하는 일상적 혐오와 차별의 문제들이 언제든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면, 살아남은 우리 모두에게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윤리적·시민적 책무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남성들의 인식 기저에 있는 여성혐오 역시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로만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혐오는 성적 대상화, 성적 괴롭힘(성희롱), 혐오표현, 고용·서비스·교육 등에서의 차별, 스토킹, 데이트 폭력, 폭행, 성폭행, 그리고 살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이런 상황에서 ‘치안 강화’에만 집중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그 자체로 미봉책이 되기 십상이지만, 설사 일부 효과가 있다 해도 일상의 크고 작은 다른 위험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 하나 가지고 과민반응을 하는 게 결코 아니다. 한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쉽게 확산되고 공고해진다. 요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더욱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더욱이 요즘처럼 사회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차별과 혐오가 물리적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게 이미 십수 년 전 우리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던 나라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그리고 그 역사적 교훈이 혐오와 차별에 대한 단호한 법적·사회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여유를 부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끝으로, 이번 일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신 분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은 이렇게 일찍, 아무 죄없이 이런 애도를 받아서는 안될 사람이었습니다.
- 어제 어느 독자분께서 이번에 강남역에서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알고 싶다고 요청해 오셨습니다.
- 그 분은 이 일이 여러 사람에 의해 공론화 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저도 발언할 것을 요구하신 바, 안 그래도 이 일에 관해 이야기할 작정이었던 만큼 그 요청을 빌어 저의 생각을 밝힙니다.
- 저는 한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여성에 대해 수 많은 크고 작은 허물을 저지르며 살아왔지만, 이제라도 학습과 반성이라는 것이 가능한 보다 성숙된 인격체로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입니다.
- 그런 제가 보았을 때 이 일은 한 개인이 그저 우발적으로 저지른 묻지마 살인 사건에 그치는 일은 아닙니다.
- 하루에도 수 많은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왜 유독 이 일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걸까요. 게다가 그는 정신 병력이 있는 피해 망상증 환자라고도 하던데, 미친 사람이 미쳐서 저지른 우발적 사건에 왜 이렇게 세상이 흥분하는 걸까요.
- 저는 그것이 피의자가 범행후 진술한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 라는 발언에 있고 그 발언으로 인해 이 사건과 그의 행위는 한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맥락을 갖게 되었다고 봅니다.
- 최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아니 늘 있어왔지만 최근에 와서야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혐오가 이런 참극을 불러온 원인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 일각에서는 피의자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가본데, 이 사건에서 피의자의 행위가 정신병 때문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며 살아왔다고 들었고, 그렇다면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에게서도 수 없이 무시를 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는 망상에서조차 여자들에게서 받은 무시만 기억하며 여자들만을 죽이고 싶을만큼 증오하게 되었을까요.
- 무엇이 그를 남자에게서 받는 무시는 참아도 여자에게서 받는 무시는 도저히 참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을까요. 혹 이 사회가 그에게 직 간접적으로 그리 주입하고 가르쳤던 것은 아닐까요?
-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는 이번일이 여성에 대한 혐오라는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우며, 최소한 그러한 의심을 가지고 이번 일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렇기에 수 많은 여성들이 이번 일에 함께 슬퍼하고 두려움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 아울러 이번 사건에 대한 추모의 움직임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분들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주로 남자분들 이겠지요. 그 분들 말씀의 요지는 나는 아무 잘못한게 없는데 왜 일부 문제 있는 남자들 때문에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부당함에 대한 호소인것 같습니다.
- 하지만 그것은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 당하는 일에 비하면 너무나, 정말 너무나 작은 부분 아닐런지요.
- 5월 19일자 KBS 뉴스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살인, 강도, 성폭행등 4대 강력범죄의 피해자 10명 가운데 무려 9명이 여성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들이 설령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한들, 과연 그것이 억울해 하고만 있을 일일까요? 이 상황을 같이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했을때라야 여자들도 안전하게 세상을 누릴 권리를 가지고, 남자들도 쓸데 없이 오해를 사는 일도 없게 되지 않을까요?
- 여자들은 이 사회에서 늘 차별받고 상대적 약자로 살아가야 하기에 서로 쉽게 공감하고 연대합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남자라서 언제 누구에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갖거나, 공중 화장실에 갈때마다 마음을 졸여야 하는 일을 한번도 겪어본 적이 없기에 이번 일이 왜 그렇게 큰 일이며, 이것이 왜 남자와 여자의 문제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이제 더는 우리 사회가 여성이 혐오의 대상으로써, 폭력과 살인등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모두 역지사지의 차원에서 타인의 두려움과 불편함을 헤아리고, 함께 그러지 않도록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보 : “나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남성 자성론 불붙어]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강남 여성 살인사건을 계기로 적지 않은 남성들이 자신이 특권을 누렸거나 남성을 우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암묵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강한 남성성을 기반으로 한 가부장제가 더 이상 여성 가족구성원을 가진 남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공유하면서 자성론이 싹튼 것”이라고 진단했다.[여성혐오는 나의 문제다 : 네이버 블로그]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다. 억울했다. 내가 '여성혐오'라고 했는데 왜 그러는 거야? 게다가 모에적 표현에 대한 고민은 이제 우리 만화계가 고민해야 되는 걸 말한 건데...난 억울해. 억울해. '뷰.군' 작가들이 헨타이 망가를 만들려는 의도성은 없었다는 걸 난 안다. 그저 공기처럼 그런 표현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여성이 예쁘고, 섹시하고, 그런 육체가 작품으로 전시되는 것에 대해 1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다시 한번 여성혐오가 여성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주체적 개인으로 보지 않고 대상화시키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 갔다. 승인이건, 숭배건, 배제건 나는 너무나 익숙하게 여성혐오의 힘을 들고 있었다. 나에게 결국 이 문제가 내가 그토록 불편해 하던 전근대적 가부장제와 묶여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다양한 혐오표현들, 예컨대 '강남미인도'처럼 개그와 소재로 다뤄지는 약자들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만화에는 섹슈얼리티 문제와 웃음 코드의 문제 등 남정중심사회에서 여성을 대상화하여 표현해 왔던 전통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만들고 소비하던 관행에 대해 한번 더 고민하게 되었다.
나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적으로 여성혐오를 일삼았던 것이다. 변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흔히 미러링이라 이야기하는 여성들의 대응 방식이 불편하면, 그 앞단의 본질을 보면 된다. 내가 먼저 공부하고, 실천하면 된다. 왜? 문제는 나에게 있었으니까.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그에 맞서 저항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이 불편한 남성들이 있다면, '나의 문제'를 고민하자.
[‘여성이 죽는다’ 호소에 “같이 문제 풀자” 응답해야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문화방송> 김세의 기자는 18일 에스엔에스를 통해서 이번 사건을 ‘미친 살인범이 저지른 일’로 일갈했다. 남자가 여자를 죽인 사건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도 잊지 않았다. ‘오늘의유머’에도 이번 사건을 굳이 남녀로 나누려 하는 것에 대한 꾸준한 비판이 이어졌다. ‘여자라서 죽었다’는 말이 ‘충격적’이라는 고백과 함께 남녀 대결로 몰아간다는 비난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모여든 ‘여자들’에게로 향했다. 이 사건을 두고 ‘인간성 미달된 사람이 (우위에 있을 때) 저지른 사건’이라는 댓글은 오유 개념댓글로 등극했다. 정치색은 달라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는 분위기다. 이 사건은 젠더 위계가 작동하는 사회와는 무관한 문제이며 ‘미친’ 혹은 ‘인간성 미달된’ 개인이 저지른 사고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때문에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그 많은 포스트잇들은 피해자를 이용해 먹고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집단행동으로 매도됐다.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에서 ‘여성’을 삭제하는 일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고 말하던 사람들의 편협함에 빗댈 만하다. ‘여성들이 이렇게 일상적 위험 속에서 산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남혐’ 조장하지 말라는 생뚱맞은 말로 응대한다. 정신분열 환자에게 살해된 운 나쁜 여성 개인사로 정리됐다. 이제 응답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불편감을 낯설게 바라볼 시간이다. 이건 상상력과 연대감을 선사할 것이다.
성 대결 구도는 ‘여성이 죽는다’는 말에 ‘남자도 죽는데?’라고 응답할 때에만 성립한다. ‘여성이 죽는다’는 호소에 “그래, 같이 이 문제를 풀어보자”고 응답할 때 이 문제는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른 세계와 만날 수 있겠다. 상상력은 바로 그곳에서 가동될 거다. ‘남녀 공용화장실이 문제’라는 식의 맥 빠지는 말은 걷어치웠으면 한다. 화장실은 죄가 없다.
[capcold or 캡콜드 or Nakho Kim or 김낙호]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범죄 편견, 그러니까 흑인들을 잠재적 무장강도 취급하는 것이 심각한 차별문제인 것은, 그들이 사회적 약자로 받고 있는 여러 기회 상실의 불이익은 물론이고 경찰한테 비무장 사살당하기까지 하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주류성을 생각할 때,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정도의 울분 표현이 기분 문제 너머 어떤 구조적 불이익으로 연결될지 잘 모르겠다(물론 이것이 강자인 ‘남성 일반’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 대한 집단 괴롭힘이 되어버리면 다른 문제가 되지만).
즉 구조적 강자의 위치라면, 예를 들어 한국의 성차별 문제에서 남자라면, 대체로는 적당히 맷집으로 소화하면서 그 호명이 나오게 된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무엇을 연대할 것인지 어떻게 문제를 고칠 것인지 각자 나름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살펴보는 것이 좀 더 건설적인 대처인 것이다. 안그래도 즉각적 치안 차원, 처벌/예방의 제도 차원, 인권 교육의 혁신적 개선 차원, 미디어 규범 정비 차원 등 동시다발적으로 차별 완화를 진척시켜야할 것들 투성이인데 말이다.
내가 바란 건 "남자라서 죄송합니다" "저도 잠재적 가해자입니다"가 아닌데. 그럴 필요 없고 도움도 안되는데. 그저 주위의 친구든 직장동료든 남자들이 농담이랍시고 여자를 비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미친놈이라고 욕해서 못하게 해달라는 것 뿐인데.
— 운좋게 살아남은 권지형 (@drmaengyi) May 20, 2016
방관하거나 같이 낄낄거리지 말고 "그건 잘못이야" 하고 말해주고 사회생활 힘들어지게 해달라는 것 뿐인데. 혹시 폭행이나 성추행을 목격했을 때 "가족은 그래도 돼, 애인은 그래도 돼" 하지 말고 피해자를 도와달라는 것 뿐인데.
— 운좋게 살아남은 권지형 (@drmaengyi) May 20, 2016
여성혐오범죄나 성폭력 피해자한테 "당할 만 했겠지" 하는 2차가해하지 말고, 2차가해하는 다른 남자들에게 "당신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해달라는 건데. 여자들이 당하는 일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빼애액거린다고 하지 말고 같이 고민하자는 것 뿐인데.
— 운좋게 살아남은 권지형 (@drmaengyi) May 20, 2016
[남자들에게: 여성혐오의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 | ㅍㅍㅅㅅ]
이것들은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저질러왔고, 또한 저지를 수 있는 잘못들이다. 즉 우리는, 여성혐오 문제에 있어서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이미 가해자였고 가해자이며 가해자일 것이라는 얘기다. 나와 당신들, 그 누구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하지만 여성혐오 문제는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모두 여성혐오라는 구조를 지탱하는 소극적/적극적 행위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마음 한 켠에서는 이미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혐오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혐오를 문제시하는 사람들에게 그 화살을 돌린다. 여성혐오가 존재하고, 여성혐오가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온 온갖 잘못들이 비로소 ‘잘못’이었다고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창피해지기 때문에. 죄책감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우리들이 ‘남혐도 심각하다’ 내지는 ‘남녀가 함께 노력해요’ 라는 언설을 자꾸만 구사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래, 잘못인 건 인정해. 하지만 너희도 잘못했잖아? 너희도 문제잖아? … 이건 물론 겉으로 봐도 피장파장의 오류일뿐더러, 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가, (그러한 여성혐오에 분노하여 나타난) ‘남성혐오’와 같다는 것도 기본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사실이다. ‘나만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싸구려 위안을 얻기 위해, 우리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너무나도 쉽게 날려버리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여성혐오의 피해자들은 늘어만 간다.
우리가 스스로의 잘못을 부정하기 위해 동원한 온갖 억지와 거짓말과 폭력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일부러 무시해왔던 여성들의 분노와 고통을 마주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연대하여, 여성혐오를 의식적으로 끊어내야 한다. 이는 아주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해왔던 수많은 일상적인 행동에 여성혐오와 남성우월주의가 존재했음을 깨닫고, 그때마다 상대가 느꼈을 감정들을 상상하고, 창피함과 미안함에 이불을 차게 될 것이다.그러나, 상상해봐라. 그 얼마나 자유로운 광경인가. 더 이상 나 자신을 억지 논리로 변호하지 않아도 되고,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폭력을 가하지 않아도 되고, 연대할 수 있고, 잘못을 ‘덜’ 저지를 수 있고, 게다가 훗날 ‘나는 성 평등을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잘못 거론되는 개념이 있다. 여성혐오(misogyny)라는 개념이다. 이 이론에서 남성과 여성은 대칭적 개념이 아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저자 우에노 치즈코에 따르면 남자는 남자들의 집단에 동일화되는 것을 통해 ‘남성이 된다.’(책 288쪽) 여성혐오는 그 증명의 도구다. 그렇다면 여자를 ‘여성’으로 만드는 것은? 역시 남자다. ‘여성됨’을 증명하는 것도 남자다. 이 남성됨과 여성됨의 압도적인 비대칭적 메커니즘 아래 동성애 혐오와 여성혐오가 있다. 페미니스트는 이렇게 만들어진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다(책 297쪽). 여성혐오는 두 가지로 발현된다. 하나는 남성들의 여성 멸시, 다른 하나는 여성의 자기혐오다. 한국어 번역 제목(원제는 女ぎらい, 그냥 여혐이다) 때문에 오해를 받고 있지만 우에노 치즈코의 책은 미러링 전략을 다룬 것이 아니다. 이나영 교수는 “사실 우에노 치즈코의 논의 역시 일본사람들이 이해하는 일본식 방식이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 단어를 어떻게 이해할까 합의된 방식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독특한 것은 놀랍게도 시민들이 이 사건을 여성혐오로 규정했다는 것”이라며 “반면, 경찰이나 언론들은 특별한 사람의 개별범죄로 규정하면서 질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낙인을 찍고 그들을 감금하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가부장국가의 안전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의 여성혐오적 성격을 외면하는 대응은 사건으로부터 성차별적 사회의 ‘분열증적 탈출’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일부 남성들은 강남사건이 개인적인 범죄행위인데,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고 하는 것을 억울해 한다. 이런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 것이 옳은가.” 다음은 질문에 대한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의 답이다. “우리 사회에는 여성혐오가 만연해 있다는 데 동의하면서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설명하면 된다. 동의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 없다.”(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건지 모르는 사람은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실질적 가해자다. 당당히 맞서 싸우는 것밖에 답은 없다.”(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잠재적 가해자라는 '높은 지위'에서 가해자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는 이렇게 답하면 된다. ‘남혐이 아니라 님혐이거든’.”(송란희 한국 여성의 전화 사무처장)
한편, 이 같은 논쟁은 한국에 살면서 성차별과 젠더 폭력을 수차례 목격했다는 외국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2015년 1월부터 8월 사이 신고된 폭력 범죄의 피해자 가운데 87%가 여성입니다.“여러 가지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데, 경찰이 ‘정신질환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말해버리니 불쾌하네요. 정신질환을 탓하는 건 쉽지만, 사람이 정신병 때문에 여성혐오자가 되는 건 아니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29세 미국인 여성의 말입니다. 이 여성은 이번 사건을 미국에서 일어난 일부 총기 난사 사건들과 비교하면서, 총기 사건에서도 범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범행의 동기가 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하고 정신병력을 크게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범행을 유발한 사회, 문화적 문제를 거론하는 어려운 길 대신 정신병력이라는 손쉬운 설명을 택하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비슷하다며, 이번 사건에서도 한국 사회의 양성 간 격차라는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는 대신 범인의 정신질환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성 6명이 지나간 후 여성만 공격한 것을 '조현병'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김 씨의 최근 행적을 보면 음식점에서 일하며 남녀 모두에게 구박을 받았지만 왜 여성만 언급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여성이 약한 존재라는 사회 저변인식이 피의자의 잠재의식에 투영된 것이다."(한국일보 5월 23일)
"조현병 범죄는 어떤 대상을 잔뜩 두려워한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적 폭력이 대다수다. (하지만) 김 씨는 공격 성향의 의도가 있어 보이고 여성만 노리는 등 계획적인 범죄로 보인다. 김 씨의 경우 반사회적 성격장애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 5월 23일)
[정신의학신문 모바일 사이트, 강남역 살인 사건은 여성 혐오 때문일까 - 조현병 환자의 심리적인 측면에 대하여]
용의자는 조현병으로 4회 가량 입원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고,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단순히 정신병자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환청이 뇌의 생리학적 변화 때문에 발생한다 해도 환청의 내용은 심리를 반영하고 심리는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것처럼, 정신 증상이 영향을 준다 해도 진술 내용은 그 사람의 심리와 사회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기 진술 내용은 '여성 혐오'보다는 '거절감 및 공격성(aggression)'과 더욱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용의자가 여성을 혐오하는 가치관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들이 날 무시해서 그랬다'는 이 문장 하나만 놓고 볼 때는 '여성 혐오'보다는 '거절감과 이에 대한 분노'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거절감에 취약하고 쉽게 '무시 받는다'고 느끼는 심리적인 측면이 지각/사고의 왜곡이 특징인 조현병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정신질환자라고 해서 결코 범죄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강력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의 안전에 대한 대책이 잘 세워지기를 바란다. 또한 잘 치료받고 지내는 조현병 환자들이 또 다른 편견으로 고통 받지 않기를 바란다.
[청년의사 -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정신질환자 편견 커질까 우려”]
신경정신의학회는 “조현병은 급성 악화기에 환청과 망상에 압도되고 극도의 불안과 초조,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동반될 수 있으며, 이 시기에 일부에서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며 “그러나 이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통해 조절될 수 있으며, 꾸준한 유지 치료로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9일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이 19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정신질환자의 강제 입원 절차가 강화됐다”며 “증상과 병식의 부족으로 인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입원이나 약물치료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이로 인해 환자의 인권과 치료, 환자가족과 정신보건 종사자 등을 비롯한 이들의 안전과 삶의 질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국가와 전문가 단체는 지속적으로 상의하고 노력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시론]히틀러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도 생각해보자 - 경향신문]
강남역 사건이 ‘묻지마’ 폭행임을 주장하는 분들이 여성혐오 범죄임을 배제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면 이를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을 보면 여성 중에서 무작위로 상대를 선택한 묻지마 범죄임도 명백하다. 헌법의 평등원칙 내용은 자의적인 차별의 금지이다. 그렇다면 의도적인 혐오·차별과 자의적인 혐오·차별은 서로 반대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 사람을 혐오하는 것을 ‘자의적인 혐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데도 어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의도적인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금기시해왔다. 이번 사건도 ‘묻지마’이기 때문에, 즉 피해여성을 공격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혐오범죄임이 명백한 것이다. 살인의 동기를 파보면 아무런 이유 없는 여성에 대한 혐오만 똘똘 뭉쳐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신경정신의학회가 '강남역 살인사건'을 조현병으로 단정하지 않은 이유]
강남역 살인 사건에 대한 성명서대한신경정신의학회
강남역 살인 사건과 관련하여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국민들이 경험할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낌. 선정적 보도에 대한 우려가 크며, 보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느낌. 여성 혐오나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성급히 지목하며 남성과 여성의 갈등,조현병에 대한 과도한 분노와 혐오 등 사회적 갈등이나 불안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우려됨.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율은 일반인보다 낮은 편이며, 적절한 급성기 치료 및 유지 치료를 통해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음. 그러나 급성기 치료에 있어 자발적인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 사회적, 국가적 테두리 안에서 전문적인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야 함. 이와 관련하여 이번에 통과된 정신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있음. 분노의 대상을 찾고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안, 공포에 압도되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갖고 함께 애도하며,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 힘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람.
5월 17일 강남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살인 사건으로 온 국민이 슬퍼하고 있는 가운데, 저희 대한신경정신의학회도 비통한 마음을 느끼며 피해자 가족과 주변 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또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커다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전 저희 학회에서 배포하였던 재난이나 자살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과 같이,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을 보도할 때에도 파급 효과 등을 고려한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정신 감정 등 충분한 조사 과정 없이 여성 혐오나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성급히 지목한 기사들이 올라오며, 온 사회가 더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성혐오가 원인이 되었다는 보도 후 일부 인터넷과 SNS 상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지나치게 대립하고 갈등하는 양상이 나타나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가해자의 조현병 진단과 치료 병력이 집중적으로 보도되며 이러한 분노와 혐오가 모든 조현병 환자들에게로 향하게 되지는 않을지도 염려됩니다. 이번 사건의 내용을 지나치게 사회 전반에 일반화하여 더 큰 갈등이나 불안을 일으키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조현병 환자가 벌인 끔찍한 일에 대해 단순 '여혐'의 틀에 속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가 가진 젠더나 성향을 떠나,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를 마주하고 면담해왔던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도 질병으로 '죽이지 않으면 네가 죽을 것이다'는 환청을 들었다. 그리고 이 관점은 사건을 조사한 경찰과, 대부분 의사들의 의견과 동일선상에 있다.조현병은 전 인구의 1%에서 발병한다. 우리나라에 50만 명이 있으며, 평상시에는 유순하게,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등하게 살아간다. 그들 일상의 권리를 제한할 수 없으며, 이러한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것도 매우 드물다.
이 조현병 환자가 '여성'을 이전부터 사회적으로 혐오하고 증오해서, '여성'을 골라서 벌인 '혐오 범죄'라는 틀에 넣기에는 이 질병이 가진 병리적 환청과 망상이 너무 강력하므로, 단순 결부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 이러한 '혐오'의 프레임에 갇힌 시선은 50만 명의 조현병 환우들에게도, 나아가 사회적인 물의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 될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파생된 추모 열기와, '여혐'의 논란 자체를 하나의 현상으로 분석해야 한다. 여성들은 태생적으로 완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생을 약자의 입장에 서 있었고, 불안해왔으며, 범죄의 표적이 되었고, 또 실제로도 당해 왔다. 그 때문에 평생을 공포에 떨고 조심스러워 해온 여성들 사이에서 나온 이번 반응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피해자는 어떠한 죄도 없는 스물셋의 여성이었고, 안전하다고 믿어지는 강남역 한복판에서 유희를 즐겼을 뿐이며,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에 맞서서 들고 나와야 할 피켓은 '남성을 혐오하지 마라'가 아니라 '이해한다'가 되어야 한다.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여성이 불안감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있는 남성으로서 미안하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서로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며, 약간 완력이 강하게 태어난 존재로 너희들을 꼭 지킬 것이다' 가 되어야 한다. '혐오'의 시비와 서로 편을 가르는 일은, 희생자를 위해서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 50만 조현병 환우를 위해서도 옳지 않으며, 세상 둘뿐인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에 있어서도 옳지 않다.
내가 본 이번 #강남역살인남 사건의 끔찍한 전개과정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1. "여자가 나를 무시해서, 신학도 유흥가에서 심야에 여성살해" 라는 타이틀로 여성들에게 경고메시지를 심음.
2. 여성들이 반발하자 "여성혐오 범죄 아닌데 화난 여자들" 이라며 예민함을 부각시킴
3. 여성들이 혐오적인 사회시선에 항의하며 혐오범죄 피해자를 추모하자 "남혐여혐 상대결구도" 로 몰아가며 여혐의 심각함을 희석시킴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4. 넷우익을 포함한 혐오단체들이 양지에 나와서 "이성적으로 평화를 주장하는 중립주의자"로 이미지 변신 성공
5. 고의적인 도발을 해놓고 '평화주의자인 일베회원을 조롱하고 폭력하는 과격한 남혐주의자들' 이란 프레임을 대외적으로 씌우는데 성공함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6. 경찰발표등을 통해 "증오범죄 아닌 조현병탓" 으로 시선을 정신질환자에게 돌리는것도 성공함.
7. "정신질환자가 범죄 저지르기 전 강제입원시킨다"는 형태로 기사를 작성해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의 관심도 여성에서 돌려놓음.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8. "조현병 = 살인" 프레임이 될 것을 걱정하는 기사가 나옴. (현재)
이미 여성혐오 문제는 철지난 화제로 만듬.
이 전개가 무서운 이유는 하나하나 연결되어있는 문제임에도 중간단계를 두어개 생략하면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부분이다.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이게 누군가 계획한 것은 아니겠지만, 무의식적인 흐름들이 모여서 이런 형태로 결론나고 있다면 결국 여성혐오/증오 범죄임은 묻히게 된다.
사실 무의식의 흐름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놓았다는게 이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얼마나 별 것 아닌 취급을 받아왔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시라고도 볼 수 있는데...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결국 이렇게 끝나버리면 이후 #강남역살인남 과 여성혐오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되면 자극적인 것,
'여자가 남자를 무시해서 신학도가 살인을 함'
— 일반인 (@jobsorri00) May 23, 2016
'유흥가에서 심야에 여성이 살해당함'
'여혐 범죄 아닌데도 여자들이 예민하게 들고 일어남'
'남혐을 멈추라고 하자 평화주의 일베를 모욕하고 폭력을 휘두른 과격한 여자들'
따위만 남게 될 거라는거다.
9. 임산부가 담배연기에 노출되면 아이가 조현병환자가 될 수 있다며 여성에게 새로운 '네가 조심하라'는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함. (추가됨)
— 일반인 (@jobsorri00) May 25, 2016
이 프레임이 비겁한건 6,7,8을 통한 조현병 = 살인자 = 엄마가 담배 조심 않은 탓 으로 만들고 있기때문.
◇강력범죄 최다 발생지는 "길·집"=여성에 대한 안전 취약지대 범죄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강력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난 장소는 '길'이었으며, 단독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순이었다. 피해자별로는 2013년 기준 여성이 2만3150건으로 남성(3568건)보다 6배 이상 많았다.
[[그래픽뉴스] 10살 이후 나는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 여성 : 사회 : 뉴스 : 한겨레]
[[재반론] 통계는 장난을 치지 않는다 : 강력.. : 네이버블로그]
이번 사건의 여혐 여부를 떠나, 여성은 상대적으로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 해당 통계를 검토해준 한 경찰은 노인, 어린이, 여자만 죽이다가, 젊은 남성을 죽이려다 반격에 검거된 무차별 살인범 정남규를 언급했다. 여자라면 다들 야밤에 변태 만나 고생한 경험 하나쯤은 있다. 이 역시 기본적으로 여자에게 완력으로 제압당할 일이 없기 때문에 있는 일이다. 무차별 범죄라 하지만, 사실은 무차별이 아니다. 누구나 만만한 상대 앞에서 나쁜 본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여성은 범죄자들에게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대상이다
추모하러 가면서도 혹시나 몰카 찍어 해코지할까 두려워 마스크를 쓰고 가는 여성들에게, 당신들은 여전히 그들의 공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너희가 두렵다는 일은 몇백만 분의 일이라서 너희가 하는 짓은 오버라고, 그런 의심은 곧 모든 남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거라서 기분 나쁘다고 하고 있다.[지하철 성추행을 눈앞에서 보고 나니 | ㅍㅍㅅㅅ]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진심으로 여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껴서 그렇다. 몸으로 겪지 않은 공포는 와 닿지 않는 거 안다. 같은 런던 거리를 걸으면서도 큰 덩치의 남아공 백인 남자들이 당신들보다 훨씬 더 귀를 곤두세우고 조심하는 건, 겁이 더 많아서가 아니고 피해망상 때문이 아니다. 인간은 어쨌든 동물이고, 생존에 대한 위협을 당한 이는 그 학습된 본능을 쉬이 없애지 못한다.
여자들에겐 1,000,000분의 1이 아니다. 그냥 미친놈의 희귀한 범죄가 아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도 수없이 자행되고 있는 여혐 범죄 중 하나이고, 그래서 여혐 범죄가 당신 생각보다 훨씬 더 흔히 일어남을 계속 말하는 것이다. 이제 제발 ‘미친놈이야, 무시해’ 하지 말고,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달라는 부탁이다.
여기까지 읽어도 ‘나보고 어쩌라고!’ 할 듯하지만. 뭐 어쨌든 그래서 그렇다고.
나는, 나를 도와줄 만한 남자가 있는지 객차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객차에 있는 여자들 대부분이 B와 C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자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다들 신문을 읽거나 멍하니 허공을 보거나 졸고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상황을 간파한 남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여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아차린 듯했다. 알게 모르게 서로서로 눈빛도 주고받지 않았을까. 누군가, 이 상황에 물리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자신들의 눈빛을 알아차려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것이 내가 감탄한 두 번째 대목이다.
[[제1113호]아우성 : 독자와함께 : 독자 : 한겨레21]
그런 일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조심한다고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부주의나 잘못 때문에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그 일은 내가 ‘약자’이자 ‘만만한 존재’로서의 여성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약자에게 ‘그래도 된다’라는 공기가 가득한 사회였기 때문에 일어난다.나는 운이 좋았다. 그 새끼가 작심하고 칼부터 들지 않아서, 목청이 좋아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폭력을 저지하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낸다.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다. 차별이 공기처럼 당연한 곳에서 내 말은 별것 아닌 여자의 목소리다. 다른 남성을 설득할 수 있는 연대자로서의 남성의 역할은 중요하다.”
침을 퉤! 뱉었고, 내차는 핸들이 오른쪽이라 코앞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그아저씨가 나한테 문맥상 "욕"이 분명한 단어를 경멸의 눈빛을 담아 지껄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그 단어가 놀랍게도 "여자"
— 기쁨을 까먹은 몸 (@holicatyou) May 26, 2016
내가 여자로 사는게 혐오의 대상이라는걸 너무 오래잊고 살다가 저 "여자" 한마디를 들은 순간 난 완전히 얼어붙었다. 개년샹년했으면 너이새끼개새끼!!!! 하면서 질주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냥 "여자"였다. 그 사람한테는 "여자"자체가 욕이었던 것.
— 기쁨을 까먹은 몸 (@holicatyou) May 26, 2016
어떤 쌍욕보다 충격적이었다. 장면과 그표정이 도저히 잊혀지지않아 곰곰 생각해봤는데, 그개저씨처럼대놓고 "여자"라고 씨부리지 않을뿐, 뒤에서 "여자잖아" "여자네" "여자일줄알았음." 이런 말은 쉽게쓰이는 말이었고, 의미는 그개저씨의 용법과 다름없었다.
— 기쁨을 까먹은 몸 (@holicatyou) May 26, 2016
여자로 평생 살면서, 그 어떤 욕보다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던 "여자"를 면전에서 당하고 내가 그날만 생각하면 화가올라오는데, 문제는... 다시 생각해도, 쫓아가서 그개끼를 잡는다고하더라도 내가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 기쁨을 까먹은 몸 (@holicatyou) May 26, 2016
경찰은 조현병 병력이 있는 무직자인 34세 남성 용의자를 체포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화요일 새벽 한 시경 피해자를 가져온 칼로 찔러 죽이기까지, 용의자가 약 40여 분간 화장실을 맴돌며 여성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피해자를 공격한 이유를 묻자, 그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습니다.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지난 2014년 한국 대검찰청이 발표한 가장 최근 통계를 보면 살인, 강도, 성폭력을 포함한 흉악범죄의 피해자 34,000명 중 85%가 여성이었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취업 및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한 경쟁에서 밀려나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는 남성이 그 좌절감을 여성을 향해 돌리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이 일상 속 폭력과 위협에 더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AP)
["'여성혐오 범죄'란 인식이 사회 변화 계기 됐으면"... 페이스북 '강남역 10번 출구' 운영자 인터뷰 - 경향신문]
이씨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거리로 나오는 것이 ‘경험 공유’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을 그냥 개인의 일탈로 묻어버리는 것은 희생자가 계속 생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추모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팽배한 여성혐오 문제를 증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19일 추모 문화제의 ‘증언 대회’로 이어졌다. 이씨는 “자신의 경험들. 내가 그가 될 수 있었고 그가 나일 수 있었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적 단서와 이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라는 인식을 나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이번 추모 열기를 조롱하거나 여성들의 ‘남성 혐오’로 보는 시각에 우려를 표했다. 이씨는 “당하는 여성의 입장에서는 너무 폭력적인 사회인데 남성들의 입장에선 그게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로 보지 않는 것 같다”며 “가해집단에 소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현재 온라인 상에선 “모든 남성을 가해자로 몰지 말라” “모든 남성이 범죄자는 아니니 일반화하면 안된다” “여성들이 자꾸 이러니 여성혐오를 하게 되는 것”이라는 남성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씨는 “여성혐오적 문화·사회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자성과 성찰, 문제를 받아들이고 변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남성들은 본인이 가해자로 취급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포스트잇]경향신문이 1004건을 모두 기록했습니다 - 경향신문]
현재, 그녀들의 감정을 부인하는 일들이 화를 더 돋운다. 하물며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며 적은 포스트잇에 그녀들이 화를 내는 다양한 이유를 명징한 말들로 기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이마저도 부인한다. 젠더 문제를 ‘명징한 언어’로 기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남성적 지배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추측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데, 그녀들의 그 명징한 언어마저 부인당해야 하는 이유는 ‘여성이 화를 낸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고 싶지 않아서일 테다. ‘화는 미친 가해자에게나 쏟아 부으라’는 회피적인 생각이나, ‘이런 식의 화가 남녀 대결구도를 만든다’는 게으른 인식 등, 그 노력들은 실로 강력하다. 모두 화의 근원은 보지 않겠다는 의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여성들은 어느 개인 남성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이 사건을 가능하게 한, 누적된 젠더 불평등과 문화 전반을 문제시하고 있다. 여성혐오라는 개념까지 불러오지 않았나. 그러므로 그녀들의 외침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려는 시선 속에서 불평등한 젠더 체계의 공범자들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그 논리를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젠더 위계가 어떻게 공고해져 왔는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실제 이 사건에서 받는 충격이라면 살인 행위만큼 치명적인, 공범자들의 강고함이다. 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금 성교육의 절실함을 느낀다.
이것은 명백히 젠더 체계에 대한 고민없음과 성차별 인식의 포화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내가 주목하는 바는 젠더 위계에서 안정성을 얻기 쉬운 자들의 무지와 게으름이다. 그들은 유독 자신들의 공모 자체를 부인하고 싶어 한다. 아마도 남성성의 위치가 주는 안정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는 남성성의 위치에서 그런 안정감을 보상받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현실에 대한 화풀이를 애먼 곳에 하는 것이다.지금, 더는 참지 않겠다며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은 남성성의 논리 안에서만 안정감을 얻으려는 사람들로부터 타자화된 사람들이다. ‘타자화된 경험이 없어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도 슬슬 지겹다. 한국남자라면 군대에서 고생하고 온다고 늘 강조하지 않나. 남성성 논리 한가운데에서 쉬이 인권이 무시되고, 타자화되는 모멸감을 겪었음이 틀림없다. 이러한 경험을 권력을 사유하고 남성성을 의심하며 타자에 대해 공감하는 원초적 경험으로 이용할 법도 하건만, 어째 ‘나는 복종과 모멸을 견뎠으니 너도 견뎌라’는 식의 논리들이 더 많은가.
[일베·소라넷…일상화된 여성·약자혐오, 시민을 깨우다 - 아시아경제]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시민들의 자발적 추모 열풍은 거세다. SNS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 계정(@0517am1)이 18일 강남역 10번 출구에 추모 공간을 조성할 것을 제안한 후 나붙기 시작한 추모 쪽지들은 역 출구 벽면을 가득 채웠고, 이날 오후 8시쯤에는 누구도 제안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추모제까지 열렸다. 특히 쪽지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숨진 여성을 추모하는 한편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20일 오후에는 부산대 앞에서 추모제가 열리는 등 전국적으로 열기가 확산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여성ㆍ약자에 대한 혐오 성향이 강해지는 것에 성평등 의식 고양은 물론 경쟁ㆍ차별 위주의 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따뜻한 공동체 의식을 제고할 수 있는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구축돼야 한다"며 "본인의 문제는 본인이 해결하라는 식의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성혐오가 생기지 않도록 전반적인 제도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혐살인’ 추모 확산 배경]“나도 피해자” 또래 여성들 공감·분노 폭발 - 경향신문]
[‘강남역’ 그 많은 포스트잇은 무엇을 말하는가 - 경향신문]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사건을 분석하는 전문가의 언어도 의미가 있지만 수많은 추모객이 쏟아낸 진심 어린 말들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라며 “평범한 이들의 집단적 성찰이 이뤄지고 있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차별과 인권 등 우리 사회의 윤리를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밤에, 야한 옷을 입고,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성'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경우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식의 여성혐오적 통념을 깨뜨려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이 뭉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대응 방식은 '피해를 예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당하게 권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범죄에 두려움이 아니라 당당함으로 맞서고자 한다"
코끼리’의 신고로 경찰이 폭행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육식동물이 나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겁니다’는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의 교훈을 의미한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집단적 반목과 대립이 특정 세력의 악의적 조장이나 편견 때문이었음을 말하려 한다. 이는 ‘남성이 나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이 나쁜 겁니다’라는 표현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이 말은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때·장소·상황을 고려하면 옳지 않은 말이다. 여성을 향한 폭력성의 문제를 다른 맥락으로 이끈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려 든다. 세월호 집회에 나타나 ‘사회가 병든 것이 아니라 이준석 선장과 유병언 등 일부가 나쁜 겁니다’고 외친 격이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핑크 코끼리는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 모인 여성들이 무엇을 외치고 있는지를 정말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려는 것이었을까. 영혜의 아버지나 남편을 보면 남성들은 정말 폭력성의 문제에 둔감하다. 무지하기까지 하다. 한강은 그것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강남역에 추모하러 갔다가 사진찍히고 악플받은 분들, 여성의전화에서 피해사례 취합&공동대응 하네요. 1차로 26일까지 취합한다니까 서두르시고 주변에도 꼭 알려주세요. https://t.co/ZUbZ67BAur pic.twitter.com/aNl6Kc8KtE
— 오나선 (@lakinan) May 24, 2016
► “2주 전 부산 지하철에 탔는데 키 큰 남자가 따라오더니 번호를 달라고 했어요. 거절했는데 계속 쫓아오고, ‘왜 무시하냐’며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자꾸 이 일이 생각나요. 나도 ‘무시했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할 뻔 했으니까.[“여자들은 강남 가지 말고 조심하자? 싫다!”]강남역 살인사건을 두고 주변 남자들이 굉장히 놀라더라고요. 어떻게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죽냐고. 여자들에게는 이게 일상인데요. 성추행 경험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트라우마를 가질 수가 없어요. 그러면 못 사니까. 발생 장소가 지하철, 버스인데 못 타면 어떻게 살아요. 무덤덤해져 버렸어요. 그런 식으로 폭력이 일상에 스미는 거라고 생각해요.
‘조심히 가고 집에 들어가면 카톡해’ 라는 문자들, 남자들은 안 한다던데요. 택시에서 잠도 잔다면서요? 여자들은 왜 그렇게 못 할까요?”
지금은 제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남들의 시선 때문에 친구들과 늦게까지 노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예쁜 치마, 빨간 입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게 범죄에 대한 허락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피해자로서 동정과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생존자로서 행복해지고 싶어요. 얼마 전 취직도 했고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고 싶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에 쏟아지는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일상적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아직도 많은 피해자가 있어요. 여성혐오에 무심하고 지켜만 보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여성혐오에 동참한 거라고밖에 볼 수 없죠. 제가 인터넷 게시판에 (성폭력 피해 경험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그러니까 왜 어두운 길로 다니셨어요.’ 어두운 길을 걸어도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싶어요.
소라넷 문제를 다룬 TV 프로그램을 같이 보던 오빠가 무섭다며 껐어요. 근데 오빠는 그거 꺼 버리면 그만이잖아. 여성들은 공포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가 없어요.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강남역 살인사건 관련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니까, 남자들은 여자친구를 태그하면서 ‘조심해’, 여자들은 친구들 태그하면서 ‘우리 강남 가지 말자’라고 하더라고요. 왜 여자가 강남 가면 안 돼요? 저 강남 살아요! 저는 여자고요, 강남역에 계속 갈 거예요. 밤늦게 돌아다니고, 택시도 탈 거예요. 저는 제가 하는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범죄자들은 사이코가 아니라 문제를 방관하도록 길러진 사회의 산물이에요. 언제 어디든 있어요.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범죄는 피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공포 때문에 제 말과 행동을 제압당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여자고, 사람이에요.”
“이 자리를 빌려서 우리 청소년들이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고 알리고 싶어요. 며칠 전 수학 여행을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선생님이 여학생들에게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여자애들이 야한 옷차림을 하고 오지 않아야 한다. 남학생들의 성적 욕구를 자극해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남학생들에게는 ‘너희는 여자애들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말씀은 하나도 안 하셨죠.또 50대 남성 선생님이 수업 중 과자를 모두에게 한 번씩 만져보게 하시더니, ‘너네 이거 먹어볼 사람? 다른 애들이 다 만진 거 먹어볼 사람?’ 하고 물어보셨어요. 아무도 손을 안 드니까 ‘다들 봤지? 너네 여자애들 몸을 함부로 굴리면 이렇게 된다.’ 이런 성차별적이고 위압적인 교육이 이어져 온 거예요.”
최근에 그 의사를 고소했습니다. 털어 보니 상습범이었어요. 왜 다들 그동안 조용히 있었을까? 이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그래서 얼마 뒤 지하철에서 비슷한 일을 당해서 신고했는데 가해자가 대학교수더라고요. 부자고 자서전도 쓴 사람들이었어요. 여자가 자기를 무시해서 그랬다? 아니에요. 여자라서, 만만해서 그러는 거예요.[“몰카·음주 강간...이젠 죽이지 말라고 해야하나요?”]이건 내 일이고, 내 친구의 일이고 내 엄마의 일이고, 남성들의 일이기도 해요. 여성들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우리 모두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에서 살아가잖아요.
“경찰관이 그랬어요. ‘아가씨, 이 밤중에 술 적당히 마시고 돌아다니세요’. 너무 화가 났어요. 내가 이 밤에 술을 적당히 마시고 돌아다니는 것과, 성추행을 당하는 건 다른 문제인 거예요. 공권력이 그런 말을 해요.”
“올해 초에는 몰카 찍지 말자고, 그 다음에는 술 마시고 강간하지 말자고 했어요. 이제는 죽이지 말라고 해야 해요.”
여자인 저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1년 전만 해도 저는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잖아‘라며 남자동기들의 술을 따라주었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옷, 남자들이 좋아하는 행동,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이 되도록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여성을 여성으로 규범화·일반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여성혐오입니다.자신만은 무결한 세상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어떠한 차별에도 침묵하지 마십시오. 악에 분노하고 정의를 선택하고, 고통에 공감하십시오. 그것이 인간으로서 지킬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량함이며, 이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여성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지? 일단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개선의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여태까지의 여성혐오 프레임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아요.[“우리 남자들은 ‘잠재적 가해자‘...이제 변해야 합니다”]역사적 변화는 기존의 것이 잘못됐다는 인식 없이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소수자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지 않을 때 기득권자들이 먼저 바뀐 경우는 없습니다. 작은 목소리나마 끊임없이 떠들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자가, 사회가 원하는 여성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한국 여성들은 여성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다’. ‘한국여성은 김치녀’. 남성들은 이런 식으로 여성을 나누고 배제하고 악마로 만들어버립니다. 여성을 사람으로 보기는 합니까? 김치, 구멍, 맛있는 것으로 보입니까?이번 일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남성으로서 부당하게 많은 권력을 갖고, 여성들에게 요구를 하고,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면 이번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술에 취해 차 안에서 졸면서 집에 가다가도 누가 내 몰카를 찍지는 않을까, 만지지 않을까 두려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동성집단에서 여성 혐오와 폭력이 만연하는 순간에도 침묵하곤 했습니다. 배제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남성은 변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기반해 있고 여성을 비인간화했는지, 집단에서 배제되기 싫다고 이 문제를 방치했는지 직시해야 합니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남성이 스스로 변하거나 다른 남성들을 변화시킬 때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남자들이 ‘잠정적 가해자’라는 말을 엄청나게 불쾌해해요. 근데 그게 별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별 게 아닌데도 여성들에게 공포를 조장할 수 있어요. 이걸 모든 남성들이 깨달았으면 해요.우리는 일본에 말하죠. ‘독일은 이렇게 반성하는데 너희는 왜 하지 않느냐’고. 근데 우리는 왜 반성하지 않을까요? 여성을 죽인 건 아니지만 방조해 온 게 아닐까요? 내가 인식하든 못했든 사회에서 권력을 향유해 왔고, 그래서 아무 피해 없이 살아온 게 아닐까요?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침묵을 계속하려 했고, 방조했다는 것에 사과드리고 싶어요.”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여성혐오 범죄가 일어나도, 바로 다음 날부터 ‘그게 왜 여성혐오 범죄냐’ ‘왜 특별한 애도를 표해야 하냐’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게 계속될 것이고, 그 반응의 주기가 점점 짧아질 거라고 봅니다. 아주 위험한 신호죠.정말 기대하고 있는 건, 남자들에 의한 ‘문화를 바꾸겠다’는 선언과 운동입니다. 한국에선 이런 게 일어난 적이 없어요. 중요한 건 ‘왜 나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해?‘가 아니라, 그렇게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 뭔가 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서 ‘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너희들 탓이야’ 라고들 합니다. 남자분들, 그 담론에 휩쓸리지 마세요. 유령사회에 살고 있지 않잖아요. 죽은 여자와 나를 동일시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렵습니까. 남자들에게는 쉽게 동일시하면서, 왜 그 반대는 어렵죠?“
그런 일련의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여성은 식당 봉사와 꽃꽃이 봉사에 동원되는 기능적 존재가 되거나 'OOO 목사(전도사)의 사모'로 호명될 뿐 남성과 동등하고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되지 못 하거나 무시와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일상'을 살아 내고 있다. 이런 사건과 일상이 정말 나와 우리 교회와 무관한 일일까? 그저 개인의 일탈로 생겨나는 '근본 없는 미친놈'이 저지른 일이거나 '일부'의 문제일까? 일부의 문제라면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여성을 향한 교회의 구조적인 불평등, 일상적 차별을 진지하게 직시해야 한다. 적어도 교회는 여성 혐오의 모판이요, 범죄의 방조자 역할을 해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이것이 꼭 교회 남성 그리스도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남성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기이한 무관심이 안타깝다. 여성 그리스도인들은 그동안 너무 교회라는 남성·가부장 중심의 체제와 공간에 길들여 왔다. 차별과 불평등을 내면화하느라 인내하며 순종했고,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으로 살기 위해 잠잠하도록 단속당하거나, 스스로를 단속했다. 그 결과 당사자 문제마저 너무 쉽게 교회 구조에 위탁하고, 남성 목회자나 리더의 권위에 기대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여성들이 침묵의 방과 순종의 울타리로 들어간 사이, 남성은 더더욱 무지의 탑을 쌓는 것이다. 여성이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 한다면 교회와 남성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배워야 한다.
홍 교수는 "차별금지법은 인권과 민주주의 말하는 나라에서 당연한 것이며, 폭력이나 범죄들의 근간에 이루는 것들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필요하고 우선적으로 돼야 한다"며 "이런 법 제정은 실제적인 범죄 예방 효과보다는 국가·공동체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추모 릴레이'와 '여성 혐오 피해 필리버스터' 현상에 주목했다. '페미니즘 역사 속에서 오래 전부터 중요 의제였던 여성 폭력과 여성 살해 이야기가 왜 이제야 새삼스레 이슈화되고 있는가'가 언론의, 그리고 그의 문제 의식이다.
여성 살인, 여성 폭력 문제를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여성 살인 문제가 여성 폭력의 문제로 확대되어가면서 본인의 경험을 자각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며, "여성 혐오에 대한 더욱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범죄자보다 더 위험한 건 '구멍 뚫린' 법 - 오마이뉴스]
여성들이 두려워한 것은 공공장소에서 언제든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이었다. 여성들이 불안해한 것은 범죄자를 '미래가 창창한 청년'이라는 수사로 싸고돌며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한국의 수사 사법체계였다. 그러나 상황은 마치 공용화장실이라는 위험한 공간에 피해자가 가지 않으면 범죄가 예방된다는 식으로 단순화되고 있다.
증오범죄를 '관용 없이 강경처벌'하고, 공공연한 혐오 발언을 촘촘하게 규제할 수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차별금지법은 보수종교계의 이해관계로 인한 방해공작으로 번번이 제정이 가로막혔다. 시민사회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시기상조'로 여겨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의 소수자혐오는 위험수위다. 사회적 소수자를 모욕하고 저주하는 혐오표현이 언론매체 광고를 차지하고 정당 공보물에 버젓이 실리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UN 여성차별철폐·인종차별철폐·사회권규약·아동권리위원회 등이 2007년 이후 수차례 이상 강력히 권고한 사항이기도 하다. 언젠가 만들어야만 할 법, 어서 제대로 만들자.
피해자 ㄱ씨는 지난 5월21일 추모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해 “당시 강남역 인근 현장에서 추모하는 저의 모습은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촬영돼 일베와 SNS 등에 올라갔고, ‘패고싶다’ ‘죽일 것이다’ 등의 사이버 린치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주최 측은 “특히 남초 사이트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추모 참여자들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악의적인 조롱과 비방이 시작됐으며, 추모현장 영상·사진 촬영 및 유포, 신상유포, 외모비하와 성희롱적인 각종 폭언 등이 넘쳐났다”고 전했다.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3개 공동대응 단체는 추모참여자 인권침해 제보창구를 열어 지난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약 10일간 총 53건의 제보를 받았다. 조재연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장은 “제보자는 총 45명이었며, 이들 중 20명은 민변 여성인권위원회가 주축이 된 공동변호인단과 3개 단체와 함께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재연 국장은 “제보자는 전체 피해자 중 극히 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게시물이 확산되는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제보 받은 자료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며 “성차별에 근거한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도, 놀이도, 문화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여성들의 직접행동이 계속될 수 있는 제도적·사회적 토양을 만드는 것이 이번 집단소송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만 현 법률상 성차별에 기반한 ‘혐오표현’을 특별히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모욕과 명예훼손만을 형법에 규정하고 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온라인 기반으로 한 여성혐오와 폭력이 오늘의 문제제기를 통해 다시 환기되고 고려되는 문화가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