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절 끽다점 문화를 보면서 묘한 낭만감이 있어서 일제시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바로 가격을 얘기하면서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설명이 있어서 그럼 그렇지 하는 납득을 했다. 가난한 예술인도 외상으로 드나들었기 때문에 외상값때문에 망하게된 끽다점도 많았다고 한다. 이런 문화가 이어졌다면, 어쩌면 커피문화가 발달했을 수도 있는데 태평양전쟁 격화로 인한 물자부족으로 결국 단절이 되고 만다.
보면서 재밌었던 것은 언제나 밥값보다 커피값이 더 비싸다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다. 결국 이런 반발심은 박정희 시절 커피금지라는 극단적인 처방이 나오기도 했고 현재 된장녀 논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조금은 암울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한국의 커피문화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Nyxity 2006-9-22 14:34
'아편처럼 진한 커피'라는 말이 식민지배를 받는 나라의 지식인들의 슬픈 운명을 암시한다. 커피라도 아편 대용으로 간주하지 않았더라면 견뎌내기 어려웠던 건지도 모를 일이다. 커피로 '근대'의 기분을 내면서 그걸 매개로 지식인들끼리 다방에 모여 앉아 은밀하게나마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다변의 향연을 벌이면서 '다방의 푸른꿈'을 꾸었다면, 커피는 '모던 보이', '모던 걸'의 허영이라기보다는 한의 음료였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동서식품, [동서식품 20년사](동서식품주식회사, 1990), 214쪽
- P.58
.... 하도 설탕을 많이 타니까 외국 기자들의 시선이 모두 설탕을 타는 우리 기자들의 손으로 쏠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외신기자들에게 "Well, Your people use sugar for coffee, but we use coffee for sugar(당신들은 커피에 설탕을 타지만 우리들은 설탕 먹는 재미에 커피를 마신다)"고 말해 연신 폭소가 터지기도 하였다.이승만 대통령은 기자들이 돌아간 다음 웃으면서 "커피는 쓴맛 때문에 마신다고들 하지만 나도 우리 기자들처럼 단맛 때문에 마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한갑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내가 아는 이박사 제26화)>, 중앙일보 1972년 8월 28일. <6.25와 이승만 대통령> 1984년 3월30일 3면
- P.72
"ㅇ 커피 한 잔에 7십 환씩 하여 달라고 다방업자들이 요금인상을 요청... ㅇ 우리나라에서 하나도 생산되지 않은 커피 한 잔 값이 우리나라에서 농민의 피땀으로 지어지는 쌀 한 되 값 7십 환씩 하고 맞먹는다는 것은 딱하기 보다 통탄한 실정! ㅇ 쌀 한 되를 시켜 먹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신사 숙녀의 신세가 상팔자라기보다 ㅇ 쌀 한 되를 팔아야만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조건하에 있는 농딤의 신세가 불쌍하고도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일!"<휴지통>, 동아일보, 1954년 2월15일, 2면
P. 84
오영석은 30원짜리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이쑤시개를 손에 든 채 일금 5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는 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일 거라고 말했다.P.118
1964년 서울의 설렁탕은 60원이었고 다방 커피 30원이었다. 1960년 서울에만 1천개 이상의 다방이 있었다. 2014년 서울의 설렁탕은 8천원이고 커피전문점 아메리카노는 4천원 정도다. 갑자기 비싼(?) 커피를 마신게 아니다. 늘 그랬다.
— 김용섭 (@Kimyongsub_) March 11, 2014
아 솔직히 웃긴게 05년부터 이 지랄이 났는데 10년 뒤인 지금도 이 소리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K국에서 가장 심한 조리돌림감 사치는 룸가서 시들시들한 과일안주를 먹는 것도 아니고 형편에 맞지 않는 비싼 차를 사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커피마시는 것
— 김가을 (@kaeul_giants) June 10,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