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그리고 한국과 일본

꽤 오래전 한국의 검도를 배우러 유학 온 일본인을 인터뷰한 일이 있었다. 그는 국제 대회에서 일본 다음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한국에 대해 흥미가 생겨 유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와서 배운 검도에 대한 소감은 “이것은 검도가 아니라 점수 따는 기술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기술을 정확하게 연마하기보다 시합에 딱 맞게 룰을 활용한 요령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일정한 결과를 단기간에 쉽게 내는 방법이다. 검도도 그렇지만 태권도도 룰에 맞게 점점 점수를 따는 기술이 발달해서 경기가 재미가 없어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는 이와 비슷하게 요령을 잘 찾아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목적으로 삼은 결과를 내기 위한 가장 편한 방법을 찾아 낸다고 할까. 현재는 토플이 CBT 형식으로 바뀌어서 어떤지 잘 모르지만, 과거 S/W 파트에서 한국 학생들은 점수를 벌었다. 몇 가지 요령이 있어서 그 법칙을 알면 문제만 봐도 답이 보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V-1공식. 예문에서 동사를 찾고 그 동사의 개수보다 접속사가 하나 적어야 맞는 문장이라는 것이다. 일일이 문장을 다 읽고 해석하기보다 쓱 보고 동사 찾고 접속사 찾아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이 답이라는 거다. 실제 일본 학생들에게 이 법칙을 설명해주고 답을 스스슥 맞추는 것을 보여주면 모두 경탄을 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은 실제 영어 실력보다 점수가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일본의 경우는 좀 우직하게 진짜 영어 실력을 높이려는 듯,  교재를 봐도 토플 시험이 당장 있는데 한가하게 이런 것을 연습시키는가 싶은 것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일본 기업의 풍토도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디지털 시대로 바뀐 다음부터 빠른 결과를 낼 수 있음에도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반도체 DRAM분야에서도 15년 품질보증 기준이 통과되지 못하면 제품을 출하 안 하는 고집을 부리다가 한국에 밀려버린 경우나 데이터 소실 위협을 없애기 위해 SD카드의 규격을 만들고 수만 번 꽂았다 뺐다가 하는 일을 반복하며 안전성을 점검하는 사이 한국에서는 mp3플레이어와 애플의 아이팟에 의해 휴대용 음악 기기 분야를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 기술자는 아이팟은 하드디스크 방식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어떻게 충격이나 데이터 손실의 위험성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갖추고 그런 가격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나 경악을 했고, 실제 제품을 뜯어 본 후 고무패킹 외에 이렇다 할 안전장치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mp3플레이어의 경우 PC와 연결해서 사용한다는 전제가 있었고 제품 수명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일본 기술자들이 고정관념으로 생각하는 품질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 기업은 가격을 맞추면서도 그 규정을 지키기 위해 도전하는 것에 뭔가 큰 모티베이션이 있었던 것 같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면 팔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이와 비슷한 것이 올림픽 경기에도 나타난다. 북경 올림픽의 체조 분야가 단적인 예였다. 일본은 동경 올림픽 전후하여 꽤 체조 분야의 강국이었다. 고난도 기술에 도전하여 높은 점수를 받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채점 방식으로 바뀌어서 고난도 기술보다 완성도 높은 기술에 점수를 주는 풍토가 되었음에도 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고집스레 고난도 기술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체조의 본래 전통이며 이런 식이면 점점 난도 높은 기술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한탄만 하며 새로운 방식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았다. 결국, 올림픽에서 참담한 결과만 얻었다.

이번 피겨스케이팅도 비슷했다. 김연아는 새로운 채점방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완성도 높은 기술을 선보였고  아사다 마오의 트리플 악셀이란 고난도 기술에 도전했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고 또한 예상했던 불평을 들어야 했다. ‘이래서야 어려운 기술에 도전하는 사람이 안 나온다.’

사실 아사다 마오의 경우 새로 바뀐 룰로 기존 점프들이 다 감점을 받게 되었음에도 그 점프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아서 트리플 악셀 외에는 선택의 폭이 없었다는 점도 있었지만…

이번 피겨를 보면서 일본 기업의 풍토가 겹쳐 보여서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