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사나이, 프로중의 프로라는 수식이 붙는 고르고 13.
그의 대사는 1권을 제외하고는 거의 “용건을 듣지.”, “….”이 대부분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하면 당신과 같은 철저한 프로로써 성공할수 있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한 적이 있다.

10%의 재능과 20%의 노력..
30%의 신중함… 나머지 40%는 운이겠지..
– ゴルゴ13から?ぶプロ論 : 80年代後半~90年代前半を回顧するブログ
신중함이라고 의역한 것은 직역하면 겁쟁이 정도라 할 수 있다. (평소에도 그는 자신이 토끼처럼 겁쟁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소리없이 등 뒤로 다가오는 사람을 조건반사적으로 공격하는 습관이 있다?)
고르고13이 사실 무게잡고 국제분쟁 사건을 테마로 삼는 경우가 많지만, 엄청나게 황당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헌데, 고르고13이 대답한 저 퍼센티지는 상당히 그럴듯하다.
신중함 30% < 운40% 은 당연하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노력+재능 30% < 운40% 로 나와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만한 노력과 재능을 합쳐도 운을 이길 수 없다.
쉽게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은 사실 생각이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어떤 부모밑에 태어나느냐 하나만이라도 인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아내님이 소년사건 맡으신 것들을 들으면서 더욱더 크게 느끼게 되었다. 사실 내가 대학원까지 공부하고, 나름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것도 내 재능과 노력은 10%도 기여 안 했을 것이고 대부분 부모님 잘 만나서일 것이다. 즉, 운이다.
한국에 태어나서 일반적인 가정에 자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운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고르고13같은 프로중의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님 패북에서 인용 (2014.11.20(목요일) 추가)
소년사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던가?
올해 가정법원 국선보조인을 하고 있는데, 소년 사건들을 보면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언론 등에서 청소년이 저지른 가혹범죄를 보면 어떻게 저런 나이에 저런 끔찍한 일을,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저 지경이 되도록 어떻게 어떤 주위 어른과 사회의 보호도 받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무작정 선처해 달라 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이들을 마주보면, 그리고 그 보호자나 보호자의 부재를 보면 선처해 달라 쓰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에서 없는 물건을 팔겠다고 사기나 친 파렴치한 소년”의 뒤에는 IMF로 무너진 가정, 한부모가 변호사를 마주할 힘조차 없을 만큼 몸이 부서지게 일해도 주변 아이들과 비슷한 옷 한 벌 살 수 없는 경제력이 있다. “출석 일수를 절반도 제대로 채우지 않고 학업에 불량하다가 가출하여 사고를 친 학생”의 뒤에는 학교에서의 괴롭힘이 있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도망에 도망을 다니다 사고를 친 아이의 뒤에는 5분만 대화해 보아도 내 생각에도 저 집에 돌려보내면 애가 미쳐버릴 것 같은 부모가 있다.
그리고 가정이 보호하지 못하는 미성년자는 갈 곳이 없다.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또래의 아이들. 소년사건에서는 간단히 말하면 부모님이나 위탁위원에게 맡겨지는 1호처분부터 2년 소년원인 10호 처분까지의 보호처분이 있는데, 크게 보면 어쨌든 집으로 보내는 사회 내 처분과 보호시설로 가는 시설 내 처분으로 나뉜다. 시설에 가도 답이 없다. 그런데 사회 내 처분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도 별 수 없겠다 싶은 경우도 너무나 많다. 사회는 그다지 기회를 주지 않는다. ‘가정 내 결손(보통 부모의 이혼 혹은 별거)’이 있으면 이미 재범가능성에 가점이 붙는다.
물론 아청법 위반이나 작정한 교묘한 절도 같은 중한 사건도 가끔 있다(심지어 그마저도, 전체 맥락을 보면 가해자 소년도 불쌍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태반은 이게 대체 뭔가, 싶은 슬픈 일들이다. 중학생의 특수절도라고 하면 대단히 큰 잘못을 한 것처럼 들린다. 수사기록에 앞으로 계속 특수절도로 기록이 남겠지. 내용을 보면 친구들과 너무 배가 고파 어디 가서 라면을 여섯 개 훔쳐 나눠 먹었는데 CCTV에 잡혀 수사에 들어갔다. 야간에 다수의 인원이 함께 물건을 훔쳤으니 특수절도가 맞긴 맞다. 겨우 중학생이 무면허운전을 했다고 하면 도로교통과 공공안전의 적 같겠지. 공원에서 오토바이 주인 아저씨가 그렇게 타 보고 싶으면 타 보라고 하여 애들끼리 오토바이로 공원 한 바퀴 돌았다. 1.5km. 이제 앞으로 이 소년은 수사기록조회에 무면허운전이 나올 것이다. 밤에 동네를 돌아다니다 남과 시비가 붙어 집단폭행을 했다. 와, 밤에 무서워서 길 다니겠나, 싶을지 모르나 들여다보면 아버지가 밤에 칼 들고 집에 와 어머니와 아이들을 때려댔다. 어디부터 소년의 책임인가. 사건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러니 부모 보고, 아이 보고, 세상을 보고, 세상에 나온다고 무슨 수가 있으랴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선처하여 사회에서 한 번 더 기회를, 같은 상투적인 말을 상투적이지 않은 절실함을 담아 쓰게 되는 것이다.
소년단독 재판부 하나에 일 년에 사건이 만 건 정도 된다고 한다. 서울가정법원에만 소년사건 전담부가 3개 있으니 대충 3만 건이다.
아득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운의 작용은 무시하고 재능과 노력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우리는, 인간은 큰 차이가 없다. 운의 차이가 클 뿐이다. 그리고 그 운에 따른 불평등을 제도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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