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뉴욕타임스의 팟캐스트 Daily에서는 유럽의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탤리까지 왔고 각 나라의 EU에 대한 감정과 국우 정서의 대두 등을 깊이 있게 취재하는 내용이다.
리포터는 독일 출신인데, 미국으로 왔을 때 여기저기 미국국기가 걸려 있는 모습이 굉장히 어색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국기를 내거는 것을 약간 터부시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계기로 독일 내에서 거리낌 없이 독일 국기를 사람들이 내걸기 시작했다고 한다.
In 2006, Germany hosts the soccer World Cup. Suddenly, you see Germany flags being flown across the country. And it’s a moment.
It’s funny, this was new to me. You know, I don’t actually recall, as somebody growing up in West Germany, seeing German flags, like, ever, because it was kind of a taboo. And I remember traveling to the United States for the first time as a teenager and seeing all these flags. And it kind of shocked me because, to me, it just looked like nationalism, and nationalism was bad. But now, the German flag was back. And it’s kind of fascinating, actually. It’s through all these decades of atoning for its history, through this embrace of a united Europe and liberal values, that Germany has actually come to feel more comfortable again with its own national identity.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올렸던 것을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일본인 기자가 칼럼에서 한국의 월드컵 응원의 분위기를 보고, 솔직하게 낼셔널리즘을 표출하는 것이 부럽다고 쓴 것이다. 일본도 독일 처럼 뭔가 국가를 내세우는데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 기사를 찾으려고 했는데, 해당 기사는 링크가 사라졌다.
그러고보니 일본의 언론사는 참 시대에 맞지 않는다. 그 당시 그 칼럼을 찾으려고 했더니 링크자체가 사라졌다. 일본 언론기사는 시간이 지나면 링크가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은 챈들러를 ‘드라마 프렌드의 챈들러’라는 해설을 덧붙여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기사가 지금도 볼 수 있는데 말이지.
판타지 소설의 혁신 일으킨 걸작(문제의 그 기사)
다행히 Evernote에 해당 칼럼을 저장해 놓았다.
私の苛立ちの根底にあったのは、韓国人に対する「羨望(せんぼう)」であった。ただし誤解していただきたくないのだが、私は彼らがベスト4に進出したことを妬んでいるのではない。私は今でも、日本のベスト16進出を高く評価しているし、誇りにさえ思っている。問題は、そんなささいなことではないのだ。
想像してほしい。仮に日本と韓国が、今大会において逆の立場だったら、どうなっていたか。おそらくその熱気は、今の韓国以上の盛り上がりを見せたことだろう。街中で人々が青いシャツを着て練り歩き、あちこちで日の丸が振られ、夜通し「ニッポン!」コールが叫ばれていたことだろう。若者たちは一様に「日本サイコー!」「日本人に生まれてよかった!」などと、狂ったように絶叫していたかもしれない。少なくとも、これまで日本では考えられなかった未曾有(みぞう)の社会現象が発生していたことは、十分に考えられる。
するとどうなるか。ことはサッカーの話では済まされなくなる。日本に突如発生したファナティックなナショナリズムに対して、韓国を含む周辺アジア各国は眉(まゆ)をひそめ、わが国への嫌悪感をあらわにすることだろう。当然、国内のメディアも「日本の右傾化、ここに極まれり」などという見出しを掲げて、国民に警戒心をあおるはずだ。最悪の場合、サッカーそのものが攻撃対象となる恐れさえある。
結局、そこで一番傷つくのは、素直に日本代表の勝利に酔いしれたい人々である。彼らは、押さえ切れない歓喜と、折からの自粛ムードとの板ばさみに遭って、せっかくの祭典を台無しにされた想いばかりが募ることだろう。とりわけ日本の若者たちは、本来ワールドカップで許されるはずの純粋なナショナリズムの発露を、日本人であるがゆえに味わえない不幸を嘆き、さらには自らの宿命を呪うことだろう。
隣国・韓国に許されて、私たちには許されない、純粋なナショナリズムの発露――これこそが、私の彼ら韓国人に募らせる「羨望」の正体であった。
韓国の人々が今大会で見せた熱狂は、図らずも、私たち日本人が背負わされた「業(ごう)」を見事に顕在化するものであった。もちろん、この国の人々にそうした意図がなかったことは私も理解している。むしろ彼らの喜びは、実に邪気がなく、天真爛漫(てんしんらんまん)にさえ思えた。しかし、それだけに私は、わが祖国の「業」の深さをあらためて思い知らされ、ひとり苛立っていた次第である。以上、告白、終わり。
(번역)
내 짜증의 근저에 한국인에 대한 선망이었다. 다만 오해를 하지 않기를. 나는 그들이 베스트 4에 진출한 것을 질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도 일본의 베스트 16진출을 높이 평가하고 자랑스럽게만 생각한다. 문제는 그런 사소한 게 아니다.
상상했으면 좋겠다. 만일 일본과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반대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 열기는 지금 우리보다 더 달아오른 것 같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파란 셔츠를 입고 행진하고, 여기저기서 일장기가 나부끼고, 밤새 ‘니폰!’ 콜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일본 최고!”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등 미친 듯이 절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미증유의 사회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축구 얘기로는 끝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갑자기 발생한 국가적인 내셔널리즘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주변 아시아 각국은 눈썹을 찌푸려 우리나라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낼 것이다. 당연히 국내 언론도 ‘일본의 우경화, 심하지다’ 제목으로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축구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될 우려마저 있다.
결국 거기서 가장 상처받는 것은 순순히 일본 대표의 승리에 도취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를 수 없는 환희와 때마침 자숙하는 무드에 끼여, 모처럼의 축제를 망쳐버린 느낌만 더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젊은이들은 본래 월드컵에서 허용될 순수한 내셔널리즘의 발로를 일본인이기 때문에 맛볼 수 없는 불행을 한탄하고, 나아가 자신의 숙명을 저주할 것이다.
이웃나라 한국에 허용되었지만,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순수한 내셔널리즘의 발로–이것이야말로 나의 한국인에 대한 선망의 정체였다.
한국인들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열광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일본인이 짊어진 ‘업’을 현저화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의도가 없었던 것은 나도 이해하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기쁨은 정말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기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만큼 나는 우리 조국의 업의 깊이를 새삼 깨닫고 혼자 힘겨워하고 있었다. 이상 고백 끝.
– 宇都宮徹壱/Tetsuichi Utsunomiya
하지만, 한일 월드컵 이후, 일본은 한국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넷우익을 대표로 극우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혐한, 혐중 컨텐츠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다. 아베정권은 그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독일이나 일본이나 월드컵에서 국기를 내걸고 내셔널리즘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원인이 아니지만, 향후 극우적인 모습을 보여도 된다는 분위기 형성에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점점 현재 유럽의 극우 세력의 대두,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의 대두처럼,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링을 계속 보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국가 대항전 성격이 강한 국제 스포츠를 싫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