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 동성애, 여성혐오 그리고 성서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창조과학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 얼마나 말이 안 되는가? 이전에, 성서비평 신학만 공부해도 창조과학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고,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성서비평학을 배우기 때문이다.그래서 교회 분위기상 창조과학에 대해 대놓고 뭐라고 하지 않아도 목사들도 대부분 창조과학에 대해서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통념에서 비롯한 거부감 때문에 반대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차별금지법 제정 때 보인 집단적인 움직임도 있어서 크게 우려해왔다. 그래서 바벨위키에 동성애에 대해 정리해 놓고 SNS 상에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 문제는 뿌리가 같은 문제였다.

웹진 <제3시대> :: [시평] ‘창조과학’의 ‘창조론’에는 없는 여성과 성 소수자들의 권리 (김나미)

?‘창조과학’의 문제는 문자주의적 성서해석과 그 해석에 근거한 신학에서 보여지는 집요한 반지성주의와 여성차별 및 성소수자 차별의 요소들이다. ‘창조과학’의 문제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초석인 성서무오설과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에 바탕을 둔 신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본주의’1 기독교인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서의 무오를 믿는 일반적인 복음주의적 신앙”을 옹호하는 신학은 19세기 중반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2 그런 신학은 19세기 성서의 권위를 둘러싼 논쟁 중에 만들어 졌고, 천년왕국설 운동과 함께 근본주의 기독교의 특징이 되었다. 근본주의 기독교의 토대가 되는 성서의 문자주의적 해석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고, 그런 해석은 일관성 없이 선택적으로 적용되어져 왔다. 이런 성서무오설은 19세기 말부터 미국의 백인 선교사들을 통해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이들에 의해 문자주의적 해석만이 성서를 올바르게 읽는 방법이라는 통념이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가르치지 못할 주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무엇을 왜, 어떤 교육철학과 목적으로,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는냐 일 것이다. 감동을 주는 소설이나 은유 가득한 시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듯이, 다양한 창조설화들도 ‘과학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창조설화를 다양한 이론과 방법을 통해 해석해 내고 설화의 의미들이 사람들의 삶에 미쳐온 영향 (긍정적, 부정적인 것 모두 포함해서)들에 대해 토론을 하고,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 현재의 내 삶과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연관지어 생각하면서 더 많은 질문들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라면 해 볼 만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수업의 목적이 한 종교의 한가지 교리만을 ‘진리’로 가르치려는 ‘교화’ (indoctrination) 또는 ‘주입’이라면 교육의 장에 들어설 수 없고 그래서도 않된다는 것이다. 왜냐면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은 ‘교화 공장’ (indoctrination mill)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은 역시 백해무익이다. ?호모포비아, 여성혐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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